'결혼보다 일이 먼저..제가 이기적이라고요?

2014. 11. 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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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 가족

독신주의 손녀와 할머니

▶ 오십년 차이 나는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앉았습니다. 손녀는 피상적으로만 듣던 옛이야기를 꼬치꼬치 따져물으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가족사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할머니 소원대로 살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와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손자손녀와 함께 <슈퍼스타 케이(K)>를 시청하시는 할머니 김병숙(76)씨. 허구한 날 콘서트장에 가는 스물다섯의 손녀와 매일같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손자에게 잔소리 한번 하지 않으시는 할머니. 2년 동안 직장을 네번 옮긴 내게 '진득하게 다녀 봐라' 같은 훈계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지'라고 응원해주시던 할머니. 그렇게 우리 세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하시는 할머니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결혼이다.

손녀결혼 안 하겠다는 젊은이들이이기적이라니 의아했는데할머니 말씀 들으니 이해는 돼요그렇다고 제 생각 바뀌진 않아요할머니난 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갔어나이 먹으면 자식 있어도 외로워결혼을 한다고 다 좋지는 않아그래도 이거저거 다 겪어봐야지

결혼은 꼭 해야 될까요?

할머니

그럼, 해야지.

요즘은 안 한다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나도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왜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거예요?

할머니

한번 세상에 났으면 결혼도 해보고, 아기도 낳아 길러보고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거지.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나중에 늙어서 초라하지 않은 거야. 할머니가 나이 먹어 보니까 자식이 있어도 외로운 생각이 자꾸 들거든. 있어도 그런데 없으면 더하지. 물론 결혼을 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이런 거 저런 거 다 겪어 보며 사는 거지.

어른들은 결혼을 안 하겠다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기적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게 잘 이해가 안 돼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게 없는데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

크게 보면 이기적인 일이지. 나만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이 나라가 없어져.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니 자꾸 인구가 줄지. 나중에는 노인네들만 남고 애들은 하나도 없고. 그럼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겠어? 또 부모님들은 어떻고? 결혼해서 손자손녀 안기는 게 제일 큰 효도야.

그럼 결혼은 하는데 아이를 안 낳겠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편이랑 나랑 둘 다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고 하면?

할머니

그럼 뭐하러 결혼하니?

그냥 둘이 너무 좋은데 아이는 낳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할머니

자식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 처음에는 둘이서 사랑하고 좋아서 살지. 근데 그게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아. 아기가 있으면 그 애가 가정의 끈이 돼서 살게 되고 그런 거야.

그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면 어떡해요? 어른들 말대로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할머니

아유, 못 만나면 어떡하겄어. 요즘 세상에 아무나한테 갈 수는 없지.

할머니 세대의 결혼은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어떻게 결혼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할머니

옛날에는 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갔어.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신랑이랑 선을 봤지. 엄마가 가서 절대로 술김에 허락하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글쎄, 술 한잔 드시고 허허하고 허락하고 온 거야. 아주 시골 촌구석에 있는 가난한 집이었는데 그 집에 시집가서 고생 짤짤 했어. 집은 가난하지만 중학교 선생이라고 해서 갔는데, 그때, 5·16 군사정변 나고 군대 안 갔다 온 사람들이 직장에서 다 잘렸거든. 근데 니 할아버지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학교에서 잘린 거야. 나중에는 조그맣게 가게를 하다가 그마저도 병이 들어서 못하고 죽고….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가서 5년밖에 같이 못 살았어.

그럼 아빠랑 고모는 혼자 어떻게 키우셨어요? 고생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할머니

말도 못하게 고생했지. 친정에서 니 아빠랑 고모를 데리고 살았는데 얹혀사니까 눈치가 보이잖아. 보따리 장사라도 하려고 보따리를 이고 돌아다녔는데, 그때 내 나이가 스물다섯이었어. 지금 너보다 어렸지. 보따리를 이고 길거리에 나가면 동창들을 만나는 거야. 그럼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었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니 아빠를 충남 공주에 있는 큰집에 맡겼어. 큰집에 가서 '초등학교만 졸업을 시켜달라, 내가 그동안 돈을 벌어 오겠다' 하고 나가는데 7살 먹은 네 아빠가 당연히 나랑 안 떨어지려고 하지. 그래서 사촌들이랑 놀러 나간 사이에 도망치듯 막 나왔어. 보고 싶어 도저히 못 살겠어서 3일 있다 또 가고, 또 가고…. 갔다 올 때마다 너무 힘든 거야. 강을 건너와야 되는데 차라리 강에 빠져 죽고 싶었지. 근데 애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어. 내가 여기 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 싶어서 돈 벌러 서울로 올라갔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그때였겠네요.

할머니

그럼. 자식새끼 떼어놓고 돌아서는 어미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서울에 올라와서는 제과점 주방에서도 일하고, 식모 살러 갔다가 다 큰 청년만 둘이 있기에 도로 도망 나오기도 하고, 멸치랑 미역 같은 거 보따리 장사도 하고, 미싱 공장도 다니고, 플라스틱 공장도 다니고…. 할머니 얘기 하려면 책을 열다섯권도 더 써야 돼.

그럼 고모는 할머니랑 같이 서울로 올라간 거예요?

할머니

고모는 계속 친정에 있었어. 만날 울고, 엄마 찾고…. 그때 생각하면 눈물 나. 그래도 니 아빠가 가끔 외갓집 놀러가서 고모도 보고 오고 그랬지.

아빠는 계속 큰집에 있었고요?

할머니

아빠는 큰집에 있었지. 그래도 아빠는 좀 커서 방학 때마다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땐 전화기가 있어, 뭐가 있어. 아빠가 '언제 갈게요' 하고 전보 보내면 온다고 한 날짜에 터미널에 가서 기다려서 데려오고 그랬어. 서울에 와도 엄마랑 있지도 못해. 나는 매일 공장에 나가야 되니까. 혼자 집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여름방학, 겨울방학마다 왔어. 퇴근할 때쯤 되면 마중 나오고…. 가끔 저녁에 야근하게 되면 공장에서 빵을 두어개씩 줬는데, 나는 그걸 안 먹고 니 아빠한테 줬어. 그럼 아빠는 그걸 갖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그렇게 살았어.

그럼 언제부터 다시 같이 살게 된 거예요?

할머니

마포에서 플라스틱 공장에 다닐 땐데 니 아빠 중학교를 보내려고 적금을 넣어서 시골로 돈을 보냈어. 애 학교를 보내달라고. 그랬는데 니 아빠가 나한테 편지를 썼어. '큰아빠가 학교 못 보내준대요' 하고. 돈 한번 보내주고 안 보내줄까봐, 내가 도망갈까봐 학교에 못 보낸다는 거야. 돈도 다시 돌려보내고. 그길로 시골로 내려가서 내가 등록하고 다시 올라왔는데, 그걸 어떻게 찾아가지고 다시 돈을 보냈더라고. 중학교는 거기서 절대 못 보낸대. 이제 어쩌나 생각하다가 그 돈으로 한복 학원을 다녔어. 그걸 몇 달 배워서 시골로 내려갔지. 그래서 니 아빠는 중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갔어. 그렇게 겨우겨우 들어가니까 학교가 너무 좋은 거야.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3번 연속으로 전교 1등을 하면 주는 트로피가 있는데 그걸 몇 개를 받아 왔지. 니 아빠도 나도 아침마다 교복을 입으면 그게 그렇게 좋아서 학교 가는 뒷모습을 안 보일 때까지 맨날 보고 서 있었어.

스물다섯에 혼자가 되셨는데, 재혼할 생각은 한번도 안 해보셨어요?

할머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재혼하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막 울었어. 애들을 떼놓고 갈 수도 없고, 애들을 데리고 가면 눈칫밥 먹고 그럴까봐 못했어.

그래도 신랑이랑 사는 친구들이나 드라마, 영화 보면서 부럽거나,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

할머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 열아홉에 결혼해서 사랑이니, 그런 걸 뭘 알겠어. 그냥 애들이랑 먹고사느라 정신없었지.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다시 태어나면 요즘 애들처럼 예쁘게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싶다고. 평생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 가잖아.

지금 하세요.

할머니

아이고, 여태 니들 밥해주고 살았는데 앞으로 또 영감탱이 밥해주고 살라고? 됐어, 안 혀.

마지막으로 우리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할머니

결혼이 소원이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아기도 낳고. 아빠도 고생 많이 했으니까 아빠한테 잘하고. 늙어서 외롭지 않게. 그런 게 부탁이지 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혼자 살겠다는 내게 이기적이라던 할머니의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할머니 세대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아직 핏덩이인 두 아이를, 남편도 없이 공장 일과 바느질로 키워낸 할머니에겐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더 중요했다. 죽고 싶었던 순간마저 자식을 생각하며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할머니를 생각하니, 할머니에겐 내 선택이 이기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물론, 이해를 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 아니지만.

이고운 래몽래인 기획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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