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 난민을 아십니까

2014. 11. 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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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미국의 대마초 합법화 투표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마약은 성매매와 더불어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로 불리기도 합니다. 마약은 스스로에게 해가 될 뿐, 다른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대마초 합법화가 이슈입니다. 예술가의 논리가 아니라 이윤이 합법화의 근거로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마리화나 논쟁에서 우리가 영감을 얻을 게 있을까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로 말하지 않는다. 이제 미국의 대마초 합법화론자들은 작가의 자기파괴적인 어법이 아니라 경제학자의 논리로 말한다. 대마초, 칸나비스, 마리화나, 해시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대마초가 몇년 전부터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오락용(recreational) 대마초 합법화를 두고 잇달아 투표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서북부 오리건주에서도 그랬다. 오리건주에서 남동쪽으로 아이다호주와 유타주를 지나면 '마리화나 난민'들의 성지가 된 콜로라도주가 있다. 콜로라도주와 워싱턴주는 2012년 투표를 통해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오리건주는 11월4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중간선거일에 마리화나 합법화 여부를 다루는 '마리화나의 통제·규제·과세에 관한 법률'(The Control, Regulation, and Taxation of Marijuana and Industrial Hemp Act)에 대한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긴 법을 '입법제안 91호'(Measure 91)라고 불렀다.

콜로라도와 워싱턴주의 선택

지난 10월22일(현지시각) 오후 6시 반부터 포틀랜드 주립대학(PSU)과 오리건 지역 방송사 <케이투>(KATU)가 공동주최한 '오리건주 대마초 대토론회'가 열렸다. 오락용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하는 2명과 반대하는 2명이 무대에 섰다.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공동 패널로 함께했다. 오후 6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격론이 벌어졌다. 리처드 해리스 전 오리건 주정부 약물중독·정신건강 감독관, 잉게 프리클런드 전 연방검사가 찬성편에 앉았다. 조슈아 마키 클랫섭 카운티 검사, 론 슈워츨러 '평온의 길' 치료센터(Serenity Lane Medical Services) 감독관이 반대편에 자리했다. 찬반 양쪽의 모두(첫머리) 발언 뒤 패널, 청중들과 자유토론이 있었다. 양쪽 차이가 도드라진 장면들이 있었다.

#1. 토론 15분께 남성 청중 질문

-청중: 저는 밀워키에서 온 로이입니다. 저는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죠? 왜 우리는 잠시 멈춰서 콜로라도와 워싱턴주가 몇달 전 통과시킨 그 법으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면 안 되는 겁니까? 왜 허겁지겁하는 겁니까? 우리는 뭘 위해서 이걸(대마초 합법화) 하는 거죠? 왜 (콜로라도의)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멈춰서 지켜보면 안 되는 거죠?

-잉게 프리클런드 전 연방검사: 마리화나는 1935년부터 불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리화나와의 전쟁은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의 정치 캠페인 중 하나였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특히 마리화나와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이제 79년이 됐어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마리화나는 매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되었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마리화나를 얻을 수 있고 제 직장 동료의 손자나 다른 고등학생들은 정말 쉽게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구한 대마초는 순도도 알 수 없고 약효도 불분명한데다 농약에 오염되었고, 공급망은 아마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연관되어 있을 범죄자들의 수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대마초로 얻는 이익은 전부 그들에게 가죠. 우리 공동체의 어른들은 본질적으로 눈을 감고 있어요. 우리는 어떤 결정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걸 범죄자들의 손에 맡겨놓고 있어요. 70여년간 이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게 두는 건 부도덕한(unconscionable)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른 접근이 필요한 때가 왔어요. 그게 바로 우리 공동체의 어른들이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하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 그게 바로 대마초 규제입니다.

11월4일 오리건 주민들이 투표할 '입법제안 91호'는 △21살 이상 성인의 마리화나 소지·흡연·재배 처벌 철폐 △개인 소지·재배·구매 한도 △마리화나 유통체계 △과세 기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허용 연령, 처벌 조항, 과세 기준 등도 담겨 있다. 대마초 '관리'에 가깝다. 마약 중독자였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치안판사에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오락용 대마 옹호론자들은 외려 자신들의 입장을 '규제'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1968년의 히피라면 '해방'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을 요구를 2014년의 민주당은 '규제'라고 부른다.

대마초 합법화는 '자유주의'를 가르는 정치적 쟁점이 됐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 3월 논쟁 끝에 오락용 대마초 규제 철폐를 당론으로 정했다. 반면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잇달아 오락용 대마초 합법화를 비난했다. 프리클런드가 언급한 1972년 닉슨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무책임한 부자 리버럴' 이미지를 씌워왔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그 이미지 뒤에서 68혁명 때 마리화나와 엘에스디(LSD·1938년 발명된 환각제의 일종)를 들이마시던 히피를 떠올릴 것이며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던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미지도 떠올릴 게다. 10월22일 저녁 대마초에 관해 토론하는 미국인들을 둘러싼 정치적 공기는 이런 것으로 추측된다.

청중 대부분은 40대 이하였다. 찬성 쪽의 주장에는 박수가 나왔지만, 반대하는 주장에는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토론회 35분께 반대론자인 론 슈워츨러 '평온의 길' 치료센터 감독관이 대마초로 영아가 숨진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자 흥분한 청중들이 "사실이 아냐!"라고 소리지르는 일도 벌어졌다. 스스로를 대마 사용자라고 밝힌 한 40대 남성은 반대 패널과 논쟁을 벌였다.

2012년 콜로라도·워싱턴에 이어지난 11월4일 중간선거에서오리건주가 대마초 합법화대마초를 찾아 정착하는'마리화나 난민'도 생겼다지난해 세계 최초로우루과이서 대마초 합법화미국의 연쇄적 선택 잇따르자유엔은 깊은 우려 표시한국에선 대마초 처벌 합헌

"지금 제게 알코올을 권하시는 건가요?"

#2. 토론 45분께 청중이 반대론자에게 질문

-청중: 46년간 오리건주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1990년부터 대마초를 피우고 있습니다. 저를 죽이는 알코올보다 대마초가 더 낫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저는 재택근무를 하니 (대마초 흡연으로) 직장에 영향을 줄 일 없습니다. 저는 애가 없으니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일도 없습니다. 저는 승용차도 없고 어디든 대중교통으로 가기 때문에 교통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겁니다. 만약 '입법제안 91호'가 통과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제게 범죄자들한테서 계속해서 구매하라고 권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내게 범죄자가 되라고 권하는 것이고, 술집에서 대마를 구해 가지고 와서 그럼으로써 범죄자가 되라고 권하는 것이며, 의료용 마리화나 제도를 악용하라고 권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청중들 박수)

-슈워츨러 감독관: 의료용 마리화나를 악용하는 것은… 의료용 마리화나는, 제가 알기에, (허가받으면) 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어떤 질환이 있다면… 그런데 당신의 질환이 뭔지는 제가 알 수 없죠… 그런데 당신은 왜 대마초를 필요로 하나요?

-청중: 왜냐면 술보다 대마초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감독관: 오케이, 당신은 권리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청중: 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저는 제가 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감독관: 그래서 지금도 대마초를 하고 있나요? 아마도 당신은 중독된 것 같진 않군요, 미국 인구 10%를 차지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말이지요… 분명 당신은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고 저는 그들을 옹호할 수도 있지만… 제가 지금 변호하고자 하는 건 의학적, 환경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청중: 99%의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금의 범죄적 암시장을 지탱하고 있죠.

-감독관: 저는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청중: 그게 선생님이 제게 남긴 유일한 선택지인데요.

-감독관: 당신은 왜 약을 하나요? 기분 좋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우리 삶의 정상적인 것들(normal things in life)로 스트레스를 풀면 안 됩니까?

-청중: 당신은 지금 제게 알코올을 권하시는 건가요?

청중과의 설전은 사회자의 제지로 여기서 끝났다. 연방법상 불법인 대마초를 피워왔다고 청중이 토론회에서 공개하는 일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대마초는 불법이되 '일상화된 불법'이며 '기준이 모호한 불법'으로 보인다. 의료용 대마초도 주마다 다르다.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미국 시민단체 '마약정책연합'(Drug Policy Alliance)의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 50개 주와 1개 특별구인 수도 워싱턴 디시(DC) 가운데 23개 주와 워싱턴 디시 등 24곳에서만 의료용 대마초가 허용된다. 캘리포니아주가 1996년 의료용 대마초를 최초로 합법화했다. 합법화론자들은 대마초가 담배나 술보다 중독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과학적 근거'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이외에 합법화론자들은 마리화나 처벌 고비용을 합법화 근거로 제시한다. <허핑턴 포스트>의 2012년 보도를 보면, 미국 연방 교도소 수감자의 50.1%인 9만8554명이 마약사범인데 이 중 27%는 마리화나 사범이다. 마리화나 형사처벌에 아까운 세금이 낭비된다는 논리다. 반대론자들은 청소년에게 해롭고, 마리화나 사용이 다른 심각한 마약류 사용으로 이어진다고 반박한다.

옹호론자들은 2개 주에서 승리했다. 콜로라도주 선거인단은 2012년 11월6일 투표에서 오락용 대마초 허용을 담은 '주법 수정안 64조'(Amendment 64)를 찬성 138만3139표(55.32%), 반대 111만6894표(44.68%)로 통과시켰다. 워싱턴주 선거인단은 같은 날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을 찬성 172만4209표(55.7%), 반대 137만1235표(44.3%)로 가결했다.

젊은이들은 대마초를 찾아 콜로라도로 몰려갔다. 언론은 이들을 '마리화나 난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엔비시 뉴스>는 올 2월6일 '마리화나 난민들: 대마초가 합법화된 주에서 정착하려는 사람들' 기사를 보도했다. "그들은 마리화나 난민으로 알려져 있다. 대마초가 합법화된 몇몇 주에서 새로 정착하거나 이주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보도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올해 초 콜로라도로 이주한 한 부부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콜로라도를 대마초 흡연이 합법인 네덜란드의 수도에 빗대 '뉴 암스테르담'이라 부른다. 괴짜 저널리스트·논픽션 작가 헌터 톰슨이 1960년대 마약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보안관 선거에 나섰던 애스펀이 콜로라도주에 있었음을 기억하는 논픽션 팬에게도 콜로라도의 최근 논쟁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난민들의 '망명지'에 오리건주가 추가됐다. <오리고니언>을 보면, 오리건 선거인단은 지난 11월4일 찬성표 76만1689표(56.0%), 반대 59만7901표(44.0%)로 입법제안 91호를 가결했다. 법은 오는 12월3일부터 시행된다. 반면 플로리다에서는 같은 날 의료용 마리화나 허용 법안이 부결됐다. 이날 미국 상·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다.

우루과이 국회는 이미 지난해 세계 최초로 대마초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선택을 뒤따르는 나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유엔은 엄연히 대마를 마약으로 규정한다.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International Narcotics Control Board)는 올 3월 펴낸 '2013년 정례보고서'에서 미국과 우루과이 정부에 우려를 표시하며 "국제마약통제협약의 완전한 실천을 계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은 여러차례 대마 처벌 합헌 결정

한국에서 대마초는 예술과 결부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잊을 만하면 대마초를 피운 음악인이나 배우들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검찰 보도자료로 발표됐다. 환각 체험에 매혹된 건 한국의 예술인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이미 19세기 말에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문호들과 대마초 환각 체험을 기록한 <해시시 클럽>을 썼다. "발명의 시대에 아직 아무도 새로운 쾌락을 발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썼던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처럼 환각 체험이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한 예술가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 마약이 '피해자 없는 범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동서양 모두 오랫동안 국가는 환각 체험을 형사처벌해왔다. 지금 미국의 대마초 논쟁은 과거 예술가들의 해방의 논리와 다른 어법으로 벌어진다. 19세기에는 보들레르가 대마초를 논했지만 21세기에는 <뉴욕 타임스> 사설이 대마초 합법화를 논한다.

대마초가 미국처럼 일상화된 사물이 아닌 한국에서 당장 대마초 합법화 논쟁이 다시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대마초 합법화를 요구하는 위헌신청이 2005년에 있었고 헌법재판소는 대마초 흡연을 처벌하도록 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2005년 이후 여러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검찰청 김후균 마약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마초는 유엔에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다"며 "미국과 우루과이의 정책에 대해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은 호응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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