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환자밥이 학교급식보다 부실" 지하식당가에 몰리는 환자들

임솔 기자 2014. 11.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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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은 하루 평균 환자만 1만명, 이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2700명에 이른다. 과연 이렇게 많은 환자들은 하루종일 어떤 밥을 먹고 있을까. 이 병원에 최근 입원한 한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병원밥이 너무 부실해 환자가 오히려 기력이 쇠했다"는 제보를 받고 서울시내 대형 종합병원에서 환자식 실태를 파악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점심 메뉴로 환자에게 일반식 2가지와 치료식을 제공한다. 환자들에겐 미리 자신의 기호와 상태에 맞게 고른 환자식이 병실로 배달된다. 최근 점심에는 밥과 국외에 메뉴A의 경우 밥과 해물찌개, 완자조림, 생취나물, 늙은 호박채전,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선택식인 메뉴B는 반찬 한 가지가 더 추가돼 매운돈갈비찜, 콩나물국, 도라지들깨볶음, 늙은호박채전, 김치 등이 나왔다. 음식을 소화하기 어렵거나 삼키는 것이 힘든 환자에겐 죽과 고등어찜으로 구성한 치료식이 제공됐다.

하지만 식판에 나온 이들 병원밥은 언뜻한 봐도 허술해 보인다. 병원 측은 이런 불만을 의식한 듯 '환자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간 질환으로 이 병원에 입원한 이모씨 (79)는 '식사가 불만족스럽다'에 표시를 했다. 이씨는 "병원밥이 맛이 없다"고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입원한 김모 씨(68)는 "식기는 깨끗하고 배달 직원도 친절하지만 밥은 맛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들은 반찬의 양이 너무 적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병원에서 충분히 칼로리 계산을 해서 주고는 있지만 환자들의 식습관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병실에서는 집에서 반찬을 가져다 먹는 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점심과 저녁식사 사이에 배가 몹시 허전하다는 환자들도 꽤 많았다.

몇몇 환자들은 오후 3~4시 무렵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환자들을 따라가 보니 병원 지하 1층의 푸드코트가 나왔다. 또 한쪽에는 현대백화점 계열사가 운영하는 한식당과 중식당을 비롯해 양식당, 편의점, 빵집 등도 간식거리를 찾으러 온 환자들을 맞았다.

식당입구에는 '입원 중인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의료기기나 환자복을 착용한 고객의 입장을 제한한다'고 붙어 있었다. 얼핏 보면 식당 안에는 환자로 보이는 손님은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자 겉옷으로 환자복을 감추거나 사복으로 갈아입고 온 환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을 찾은 환자들은 주로 돈까스와 비빔밥, 만두국 등 병원에서 주지 않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식당 한편에선 대기석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몇몇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원칙적으로는 식당 안에서 식사를 금지하지만 포장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김모씨 (25)는 "병원에서 주는 밥이 너무 맛이 없고 특히 젊은층 입맛에는 더 맞지 않다"며 "심심함을 달랠 겸 지하에 내려와 매일 다른 메뉴를 골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병원비보다 식비를 더 쓰는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식당가에는 링거를 3~4개씩 달고 있는 중증 환자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 환자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음식물을 제외하면 영양상담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별다른 제지없이 과일주스를 마시거나 빵을 대량 포장해 가기도 했다. 환자 보호자들은 "입맛과 기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병원밥을 먹지 않다보니 제대로 영양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며 "포장해 간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대학병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병원과 고대안암병원들도 밥과 국 외에 소량의 반찬 4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환자들도 병원밥이 허술하다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현대중공업(009540)그룹 관계사인 서울아산병원은 급식을 전문으로 하는 현대그린푸드에 위탁운영을 맡겼다. 하지만 한끼에 3110원으로 예산이 책정된 초등학교 무상급식보다 못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들은 건강보험에 적용된 환자식 식대가 8년째 동결되면서 부실해졌다고 말한다. 병원들은 현재 입원환자 한끼 식사로 3390원을 기본식대로 받는다. 직영 식당을 운영하고 영양사와 조리사를 고용하면 가산금을 합쳐 최대 5060원을 받는다. 하지만 식대는 2006년 이후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맛없는 병원밥은 결국 환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운다. 서울아산병원만 해도 병원 지하 식당가의 밥값은 메뉴에 따라 6000원~1만 5000원 정도. 환자식보다 최대 5배, 환자 본인 부담금인 식대의 50%로 계산하면 9배까지 비싼 금액이다. 물론 환자식에 신경쓰는 일부 병원이 있긴 하지만 적자를 감수한 투자였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환자식은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고 소금조차 줄여 더 맛이 없게 느낄 수 있다"며 "환자식도 하나의 치료 과정이지만, 부족한 예산으로 하루 1000명 이상에 달하는 입원 환자들을 일일이 신경쓰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아우성에 병원업계의 지속적인 건의로 보건복지부는 최근 식대비의 수가 인상에 대한 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인 인상까지 상당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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