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종말..청약의 꿈도 함께 사라져간다

김유미 2014. 11. 22.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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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 김유미 기자 ] 전세가 귀해졌다. 집값은 안 오르고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보니 집주인은 전세보다 월세를 놓으려 한다. '전세 제도의 종말' 이야기는 무주택자들에게 달갑지 않다.

전세의 기원에 대한 학계 연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논밭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던 '전당(典當)' 제도가 있었는데 조선시대엔 주택에도 적용됐다. 20세기 경성(옛 서울) 지역에서는 임차인(세입자)이 집값의 50~70%를 집주인에게 위탁해서 주거하는 제도로 자리잡았다(박신영, 2010). 사는 동안 별도로 임차료를 내지 않고 계약이 끝날 때는 맡긴 돈을 돌려받았다.

관습이 법으로 녹아든 것은 미군정 때인 1949년. 당시 법률자문관이었던 찰스 로빈기어가 한국민법전 초안에서 전세권을 인정하면서다.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가 서구의 모기지 제도와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1959년 제정된 민법 303조를 통해 전세권이 제도화했다.

전세 제도가 성행한 것은 모두에게 이득이 됐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전세금으로 한꺼번에 목돈을 장만한다. 은행 대출이나 값비싼 사채를 쓸 필요가 없다. 또 월세와 달리 세입자가 미납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입자도 집값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다. 전세보증금이라는 목돈을 묶어 놓으니 '강제 저축'의 의미도 크다.

정부엔 어떨까.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전세는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의 사적인 주택금융"이라며 "덕분에 국내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선진국보다 크게 낮게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전세라는 사적 금융이 사라지면 제도권 금융이 이를 대신하게 된다. 주택대출 통계의 숫자가 훨씬 커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세입자들이 집을 사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지금의 집주인들이 월세 등 임대사업자로 바뀌면 이들의 부채도 커진다. 전세보증금을 기존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는 2010년 인구센서스에 나온 지역별 평균 전셋값에 전세가구 수를 곱해서 약 290조원으로 추산했다. 전셋값이 뛴 것을 감안하면 430조~490조원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지난달 말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394조8000억원)보다 크다.

전문가들은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근본 원인을 집값에서 찾는다. 집값이 꾸준히 뛸 때는 집을 일단 사는 게 '남는 장사'였다. 모자라는 돈은 전세로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지면 그럴 유인이 없다. 초저금리까지 겹치다 보니 보증금에 붙는 이자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주택가격 흐름에 따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대신 전세 공급도 늘거나, 집값은 안정적이지만 전세가 줄어들거나다. 무주택자 입장에선 언뜻 후자가 나을 것 같다. '월급만 모아선 평생 자기집 갖기 어렵다'는 게 서민들의 불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연구자들은 이사비용이나 세금 등 주거비용 전체를 계산해봐도 전세가 월세, 심지어 자가주택보다 유리하다고 분석한다. 임 실장은 "과거 아파트 값이 급등할 때도 세입자들의 좌절감이 사회 갈등으로 나타나진 않았다"며 "언젠가는 청약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아 한순간에 중산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급등하는 이상 청약만 받아도 이득인 때가 있었다. 어떤 주택시장이 더 좋은 것일까.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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