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회사가 내 트위터까지 뒤졌다"

2014. 11. 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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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건 이후에도 머리 쓰다듬고, 악수하고…속으로 울고 겉으로 웃었다"

[미디어오늘 조수경 기자]

직장 내 성폭력과 군대 폭력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권력 관계에 따른 폭력이라는 점이다. 강한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집단 속에선 폭력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폭력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도 당사자에게 고통이다.

출판사 쌤앤파커스에서 규정에도 없는 '수습 17개월'을 보낸 피해자 A씨는 정사원 전환을 결정하는 면접날, 이아무개 상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이 상무를 A씨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리고 가 옷을 벗으라고 했고, 키스를 했다.

20일 홍대 근처에서 만난 A씨는 "인사권자의 기분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상무의 오피스텔에 갔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은 상무와 그의 관계에는 성추행이 일어나는 것과 무관하게 이미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A씨는 괴로웠지만 "이제 정사원이 된 내가 싸워봤자 내가 잘리면 잘렸지, 상무가 잘릴 것 같진" 않아 참았다. 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내 회사에 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회사의 2차 가해였다. 강제로 휴가를 보내거나, 이 상무의 방을 청소시켰다.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 사건 초기에는 "피해자에게 사죄드린다"라고 했지만 A씨가 이 상무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에서는 이 상무를 옹호하는 진술서를 썼다. 쌤앤파커스는 이 상무를 사직시켰지감 검찰이 불기소하자 복직시키기도 했다. 현재는 논란이 일자 다시 사직처리했다. (관련기사 <수습 17개월에 오피스텔 성폭력…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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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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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회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까지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재정 신청과정에서 알게 됐다. 익명계정으로만 말한 내 개인 신상을 언급하며 날 공격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시형 대표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이 2개인지도 몰랐고, 트위터 내용을 뒤지거나 그 내용을 따로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 대표는 과거 다른 사원의 트위터를 뒤졌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 사원이 이 상무를 비롯한 직원들과 필자들에 대한 험담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사원을 직접 불러 이야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이 상무에게 경고를 줬다 "고 말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사건이 일어난 당일 소주를 1병 마셨다. 원래는 3잔밖에 먹지 못한다는 들었는데 왜 무리했나."예전에는 (정사원 전환)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이 상무는 소주를 마셨지만 난 맥주를 마셨다. 쌤앤파커스가 원하는 인재상에 적합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했다. 그날 상무가 소주를 마셔도 말실수 할까봐 난 맥주를 마셨다. 근데 그 다음날, 마케팅팀 상사가 면접 이야기를 듣더니 '왜 소주를 마시지 않았나'라고 면박을 주더라. 이곳은 윗사람이 하자면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군대식 문화가 퍼져 있다."

-상무의 오피스텔에 따라간 사실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이 부분을 고소장에서 설명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어머니조차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이제 월요일이면 정사원이 된다는데 인사권자의 기분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쌤앤파커스의 비상식적인 군대문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경제적 압박 속에서 서글픈 '을'이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 상황을 대체로 이해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으로 자립이 급하거나 아예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이들, 등록금 버느라 휴학을 밥 먹듯이 해야 하거나 졸업 후 긴 시간 학자금 대출금을 갚는 이들이 그랬다. 남자 지인들은 군대에서 당한 성추행이나 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 상황을 이해했다."

▲ 피해자 A씨는 쌤앤파커스에서 수습을 17개월이나 했다.

-상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을 그 당시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옷을 벗으라고 했을 때 멍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고, 댕강댕강 하루아침에 잘려나간 입사 동기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때 난 월요일에 정사원 발표가 있다는 사실과, 이 상무가 마음만 먹으면 이 결정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인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박시형 대표는 이 상무가 인사권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이건 위증이다. 이 상무에게 인사권이 있다는 건 출판사 직원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입사했을 때 이 상무가 축하한다고 전화한 통화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면접에서도 이 상무가 제일 말을 많이 했다."

-10개월 동안 회사에 성추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동안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사건이 일어난 날(금요일) 이후 주말동안 상무에게서 전화 2통이 왔다. '연락해 달라'는 문자도 와 있었다. 회사를 다닌 2년4개월 동안 전화든 문자든 상무가 내게 직접 연락을 취한 건 그때가 유일했지만 연락할 자신이 없었다."

"정사원 발표가 난 월요일, 반차를 내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지만 약을 먹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상무가 취해서 한 행동이라고 믿기로 했다. 이제 정사원이 된 내가 싸워봤자 내가 잘리면 잘렸지, 상무가 잘릴 것 같진 않았다."

-이 상무가 그 이후에도 성추행하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했나."처음에는 내 눈도 잘 바라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술자리에서 자신의 옆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고, 아무렇지 않고 악수를 청했다. 나와 상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남자 상사는 회식 때 상무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난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야 했다. 속으로 울고, 겉으로 웃었다. 수습기간 때는 회식 후 상무가 '한 번 안아보자'라고 하면 나는 안겨야 했지만 정사원이 되고는 화장실에 가는 등 요령껏 피했다."(쌤앤파커스는 이에 대해 사내에 '프리허그' 문화가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 사실을 알고 회사가 일릴 것을 결심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알게 됐나."여름휴가 마지막 날 새벽,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켜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제발 연락해 달라'는 문자도 와 있었다. 그 피해자는 상무에게 당한 일로 주말동안 거의 혼이 나가 있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긴 건 상무 뿐 아니라 내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면 일개 사원이라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일이 알려진 후 사내 직원들의 2차 가해도 논란이 됐다. 쌤앤파커스에 또 다른 성추행 사건은 없었나."형사고소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상무가 취한 채 연락해 '당신이 사는 오피스텔이 몇 동 몇 호인지 아니, 술 마시러 내려오지 않으면 내가 올라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때 너무 무서워서 트위터에 이런 내용을 올렸다고 했다."

-그 뒤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어느 날 박 대표가 그 피해자를 대표실로 불러 두꺼운 종이뭉치를 내밀었다고 했다. 피해자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서른 건의 트윗 내용이 담겨 있었다. 종이 첫 페이지에는 그날 일을 올린 트윗이 있었고,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져 있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그 피해자에게 '그게 왜 성추행이야', '너만 그걸 왜 삐딱하게 보는 건데', '(이 상무는)널 여자로 보지도 않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성추행 사실을 공론화시킨 후 비슷한 일을 겪진 않았나."남들에게 잘 알려진 트위터 계정과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쓰던 일기장 같은 계정, 2개가 있다. 그들은 내 익명계정까지 사찰했다는 걸 재정 신청과정에서 알게 됐다. 익명계정으로만 말한 내 개인 신상을 언급하며 날 공격했더라. 내 사건을 맡은 판사가 재정신청을 기각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출판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파주 쌤앤파커스 사옥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2차 가해를 한 부적절한 업무를 시킨 동료들로 인한 상처도 깊을 것 같다. 한 직원은 쌤앤파커스를 규탄하는 출판노조와 시민단체에 '당신이 봤느냐'란 말도 했다."직원들은 세 부류였다. 괴롭히는 직원, 가만히 있는 직원, 몰래 힘내라고 챙겨주는 직원. 몰래 챙겨주는 건 왕따랑 놀면 왕따라 되니까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눈물 나게 고마웠다. '당신이 봤느냐'는 그 편집자의 말은 그 집단의 수준과 인권의식 수준을 보여준다.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돼 심각한 치매가 걸리지 않는 한 그 말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지었다."'증거불충분'의 'ㅈ'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더 이상 어떤 증거가 나와야 내 증거가 충분하다고 말할 건가. CCTV나 목격자가 없다는 건데, 만약 그 피해 장면과 현장을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했다면 내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자살하지 않았을까."

"나는 회사로부터 이런 일을 당하고도 싸웠고, 또 조용히 싸워서 기소의견 송치로 경찰에서 검찰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불기소로 끝냈고 법원도 재정신청을 기각했지만 결국 여론을 이만큼 이끌어내었으니, 진정으로 진 쪽은 내가 아니라 쌤앤파커스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싸울 건가.="출판계의 '을'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이미 차고 넘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출판사 사장들, '갑'들이 낼 차례다. 그들이 책을 만드는 회사의 '갑' 답게 멋있게 이번 사태를 정면돌파하고, 샘앤파커스와 선을 그었으면 한다. '갑'들이 가만히 있어도 나는 마저 싸울 것이다. 가만히 있는 한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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