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그 많던 공격수는 어디로 사라졌나

2014. 11. 21. 1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가 전대미문의 '킬러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팀의 최전방을 믿고 맡길 공격자원이 사실상 전멸했다.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 등으로 이어지는 특급 공격수의 계보를 이어왔다. 안정환, 최용수, 김도훈, 이천수, 조재진 등 저마다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골잡이들도 넘쳐났다. 한국의 역대 공격수들은 아시아권에서는 이론의 여지없는 최정상급이었고, 세계무대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발휘했다.

공격수 가뭄, 무분별한 유행 편승이 자초했다

한국축구가 공격수 가뭄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K리그가 당장의 성적을 위하여 국내 유망주를 키우기보다,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여 최전방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국내 공격수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현대축구에서 미드필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고전적인 정통 공격수보다, 2선 공격수나 제로톱을 활용한 패싱게임과 템포축구가 유행했다. 이 역시 공격수 인기가 줄어든 원인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이제 공격수를 한 명만 기용하는 원톱 시스템을 선호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또한 공격수들에게도 득점보다 수비가담, 연계플레이 등 많은 활동량과 전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추세가 되면서 활동량이 적은 타깃맨이나 센터 포워드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유형으로 취급받았다.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유망주들은 경쟁의 문이 좁고 실수에 대한 압박감이 큰 공격수 포지션보다, 미드필더나 수비수를 선호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무분별한 유행 편승과, 전문 공격수 육성에 대한 국내 축구계의 무지가 맞물려 빚어진 현상이다.

K리그의 공격수 기근 현상은 자연히 대표팀에도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축구가 보유한 국가대표급 스트라이커 자원은 사실상 이동국, 박주영, 김신욱 세 명 뿐이었다. 이근호와 손흥민도 있지만 그들은 사실상 2선 공격수에 더 가깝다. 허정무-조광래-최강희-홍명보로 이어지는 역대 국내파 감독들도 경중의 차이는 있었지만 사실상 이 3명으로 대표팀 공격진을 '돌려막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표팀은 이 세 선수를 뽑아도 욕을 먹고, 뽑지 않아도 욕을 먹는 상황에 놓였다. 근본적으로는 이들을 탓하기 전에, 한국축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았던 게 더 큰 문제였다. 이동국은 30대 중반의 노장이 됐고, 박주영은 3년간 소속팀에서 제대로 출전한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였다. 김신욱은 대표팀에만 오면 '뻥 축구'만을 위한 헤딩 '노예'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들의 단점을 거론하기 전에 이들보다 더 나은 공격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한국축구의 현실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대형 공격수 육성에 소홀한 모든 국내 축구인이 분담해야할 업보였다.

위기의 슈틸리케호, 공격진 대안을 찾아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슈틸리케호의 최대 고민도 공격진 구성이다. 타깃맨 자원으로 분류된 이동국과 김신욱이 모두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장이 사실상 불투명하다. 한때 차세대 공격수로 주목받았던 유럽파지동원 역시 부상으로 장기 결장중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중동 2연전에서는 이근호와 박주영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하여 점검해봤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내년 아시안컵 전까지 대표팀에서 새로운 선수를 실험할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지난 이란전 패배를 끝으로 12월 A매치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 이번 중동 2연전이 아시안컵 엔트리 확정 전까지 마지막 평가전이 됐다. 올 시즌 K리그 일정도 모두 막을 내려며 국내에서 새로운 선수들을 찾아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은 주어진 범위 내에서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한다. 첫 번째는 이근호-박주영에 대한 재신임이다. 이동국-김신욱을 전력 외로 분류했을때, 그나마 대표팀에서 경험이 있는 공격수는 이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근호는 이란전에서 부진했지만 한 경기만으로 평가하기 아까운 선수다.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는 아니지만 풍부한 활동량과 공간침투 능력을 갖춰 2선까지 두루 활용가능하고, 선발과 조커로서 두루 쓰임새가 넓다. 아시아 무대와 중동팀을 상대로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박주영은 좀 더 지켜봐야한다. 중동 2연전에서 공격수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경기감각이나 움직임 면에서 아쉬웠다. 예비 엔트리에는 일단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소속팀에서 출전 경기 숫자도 아직 부족하다.

두 번째 대안은 전술적인 해법이다. 전문 공격수를 따로 두지 않는 제로톱을 실험해볼만하다.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강점이 있는 포지션은 2선 공격진이다. 손흥민, 이청용, 남태희 등이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한교원, 구자철, 조영철, 이명주, 김민우 등 대체자원도 두텁다.

최전방 공격수 경험이 있는 손흥민이나 조영철, 혹은 공격 성향이 강한 기성용을 전진배치하는 변칙적인 '포지션 파괴' 역시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난 2011 아시안컵에서 조광래 감독이 중앙 미드필더로 분류되던 구자철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깜짝 기용하며 득점왕까지 만든 것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마지막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확률이 가장 낮다. 슈틸리케 감독은 귀국 인터뷰에서 "평가전에서 기용하지 않은 새로운 선수를 아시안컵에 깜짝 발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다만 소속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무래도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해외파들에게 좀 더 유리하다.

유병수(러시아 로스토프)나 석현준(CD 나시오날)같은 선수들은 그동안 대표팀에서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대표팀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공격수 포지션의 선수들이다. 언론으로부터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보니 국내 팬들은 이 선수들이 그동안 기량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제로 베이스'에서의 무한 경쟁을 선언한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아시안컵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선수들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