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가 김동주를 보내던 날
[OSEN=조인식 기자] 지난 20일 있었던 일이다.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고도 남았을 오후 11시.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는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안 그래도 지금 술을 마시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산 베어스 관계자였다. 이날 오후 두산은 보류선수 명단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김동주(38)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김동주는 20일 낮에 김태룡 단장, 김승호 운영팀장과 면담을 갖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두산은 은퇴와 함께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김동주가 선택한 것은 현역 신분 연장이었다.
이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시원섭섭하겠다고 하는데, 시원한 건 없고 섭섭하기만 하다. 우리한테 김동주는 절대 앓던 이가 아니다. 단장님도 오늘 보내고 난 뒤 많이 허탈해하셨다"고 전했다. 김 단장과 김 운영팀장은 김동주를 신인 시절부터 봐왔던 인물이다.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김 단장은 지난 7월 김동주가 자신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을 때부터 줄곧 김동주의 의사대로 해주겠다는 뜻을 나타내왔다. kt의 특별지명을 앞두고 20인 보호선수 명단 작성을 위해 운영팀장과 함께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다녀온 김 단장은 19일 귀국했고, 곧바로 20일 낮에 김동주를 만났다. 최우선순위에 있던 업무가 끝나자마자 김동주와 같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것 역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였다면 예우다.
두산이 마지막까지 김동주를 품지 않고 내보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시각이 아니다.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했을 때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프로세계의 당연한 이치다. 팀에 꼭 필요한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김동주를 비롯한 각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유니폼을 벗게 했을지 떠올려보면 쉽다. 지금은 같은 방식에 의해 후배들이 김동주와의 경쟁에서 앞섰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어쨌든 세 사람의 만남을 끝으로 김동주는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선수로서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성대한 은퇴식과 코치직까지 마다한 결정이었다. OB 시절이던 1998년부터 베어스에서만 활동했던 김동주는 17년간 생활했던 정든 팀에 이별을 고했다. 김동주가 남긴 1710개의 안타와 페어지역 담장을 넘긴 273개의 타구, 1097타점은 모두 프랜차이즈 최고 기록이다.
기록보다 더 많은 기억을 남긴 선수, 이승엽이 있던 국가대표 타선에서도 4번타자 자리를 놓치지 않고 꼭 차지했던 선수, 잠실구장의 우타석을 꽉 채운 동시에 누구보다 잠실구장 좌중간으로 공을 자주 보냈던 선수, 동시에 17년간 한 팀의 유니폼만 입었던 선수가 짧은 만남을 끝으로 떠났다. 두산은 2014년 11월 20일을 김동주가 떠난 날로 기억할 것이다. 김동주 같은 선수는 다시 나올지 몰라도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김동주는 이제 다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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