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철 1200만원 손해" 고스란히 메워야.. 아이스크림 골라 담기에 가려진 영업사원의 눈물

황인호 기자 입력 2014. 11. 21. 03:37 수정 2014. 11. 21.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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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소장 회유에 마지못해 판촉행사.. 영업소장 말바꿔 결국 'N분의 1로'

"골라 담기는 절대 하지 마."

알쏭달쏭했다. 2011년 11월 롯데제과 목포영업소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최모(30)씨에게 전임자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건넸다. '골라 담기'는 대형마트에서 4990원에 아이스크림 10개를 종류와 상관없이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판촉 이벤트다. 여름이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왜 하지 말라는 걸까.

전임자는 '납품 쇼트(부족분)'를 조심하라고도 했다. 재고 없이 제품을 다 팔았는데 마이너스 매출로 기록되는 상황을 뜻하는 영업사원들의 은어다. 제품이 중간에 망가지거나 도둑맞았을 때 주로 발생한다. 그럴 때 생긴 손해는 영업사원이 갚아야 한다. 그는 "회사는 마이너스 금액의 1%만 보상해줘. 잘 생각해 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퇴사했다.

최씨가 전임자의 말을 다시 떠올린 것은 여름을 앞두고 본사의 골라 담기 행사 요구가 떨어진 2012년 4월이었다. 전임자에게 들은 얘기가 마음에 걸려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내 돈 들여가면서 행사할 이유를 못 느껴서다. 하지만 영업소 상사는 "대형 거래처를 갖고 있어야 판매수당도 받는다"며 설득했다. 최씨가 "고작 20여만원인 수당 안 받고 행사도 안 하겠다"며 버티자 그는 납품 쇼트를 메워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최씨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불과 4개월 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여름 한철 이 영업소에서만 무려 1200만원 납품 쇼트가 났다. 예상보다 액수가 크자 소장은 약속과 달리 영업사원들에게 마이너스 부분을 메우라고 지시했다. 최씨의 손해는 800만원 정도. 이 중 600여만원이 골라 담기 행사 때문이었다.

대형마트의 골라 담기 행사는 계산대에서 판매된 분량만 매출로 인정하기 때문에 매장 안에 진열했다가 사라진 아이스크림은 고스란히 '쇼트'로 잡힌다. 고객들이 아이스크림 10개만 담아야 할 봉지에 11개, 12개씩 담아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최씨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빼돌린 것도,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이걸 이제 와서 메우라고 하느냐"며 반발했다. 격렬히 저항하자 소장은 375만원만 내라고 협상안을 제시했다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손해액이 적은 다른 직원들은 다 알아서 내는 분위기였다. 업계 관행인 탓이다. 왜 발생했는지도 모른 채 '쇼트' 통보를 받으면 영업사원들이 전체 금액을 머릿수로 나눠 메운다. '을'(乙)보다 못한 '병'(丙) 신세 영업사원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입사 초기에 썼던 보증보험도 마음에 걸렸다. 회사 물건을 갖고 판매하는 영업사원 특성상 보증보험을 쓴다. 최씨는 아버지가 보증을 선 탓에 책임이 아버지에게 돌아갈까 걱정됐다. 결국 매달 100여만원을 대출받아 그해 말에 손해액을 모두 채웠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본사로부터 다시 골라 담기 행사 요구가 떨어졌다. 여름 대목을 지나칠 수 없어서다. 최씨는 사색이 됐다. "지난해 한 번 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왔다. 전임자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들어 온 후임자에게 "골라 담기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서.

롯데제과 측은 최씨 사례를 '특이 케이스'라고 했다. 회사 차원에서 손해액을 지원하지만 최씨는 금액이 워낙 커 변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20일 "최씨의 경우 통상적인 마이너스 금액보다 훨씬 액수가 많았다"며 "보전해줄 수 있는 금액을 넘어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최씨의 영업 관리 미숙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롯데제과의 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상 골라 담기 행사의 손해는 영업사원 1인당 70만∼80만원이다. 영업소장이 마이너스를 메워주겠다고 말한 이유도 이를 감안해 100만원 정도 지원할 의사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영업사원만 350명 정도 된다. 전부 제 돈 내고 회사를 다니면 남아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최씨는 여전히 대출금 400만원을 갚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좋지 않아 지금껏 이자만 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뻔히 손해가 날 것을 알면서도 강요하고 막상 손해가 커지면 영업사원에게 관리 부실 책임을 전가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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