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세 번의 이별 / 김영희

2014. 11. 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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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세인생, 호모 헌드레드…멋진 실버 인생을 꿈꾸라는 담론과 기사가 넘쳐나지만, 나이 듦은 두려운 일이다. 죽음이 동반할 육체적 고통의 공포 탓은 아니다. 끝내 스스로 세상을 뜬 홀로코스트의 증언 작가 장 아메리가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말했듯, 점점 세계와 공간에서 제거되어가는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지 두렵기 때문일 게다.

이 가을, 세 번의 이별을 했다.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글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준, 세상과 늘 연결되어 있던 세 사람. 그들의 '살아낸 시간'을 여기 기억하고 싶다.

지난달 일본의 국제정치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사카모토 요시카즈 선생이 숨졌다. 직접 딱 한 번 만났고 이메일과 편지를 주고받은 게 고작이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우연히 접한 그의 책과 논문들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사회엔 현실 대안에 약한 이상주의밖에 없다는 내 선입견을 깨부쉈고 논문의 주제가 됐다. 그는 1950년대부터 중립국 일본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70년대 일찍이 동서냉전에 숨은 남북의 불균등 발전을 국제정치의 근본적 모순으로 봤다. 일본의 평화주의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절대화해 자국 중심이 되는 것을 그는 끊임없이 경계했다. 몇년 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지식인에겐 두 가지 축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현상에 대한 비판력, 또 하나는 잘못된 현상을 넘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구상하는 구상력"이라고 말했다.

그 며칠 뒤 성유보 선생이 떠났다. 동아투위 출신이자 <한겨레>의 초대 편집국장이지만 무엇보다 내겐 22살 때 첫 정규월급을 준 직장의 사장님이다. 당시 대중지로 변신하던 <사회평론>의 편집국엔 의욕 넘치는 문학평론가, 영화평론가, 운동가 등이 모여들었지만 언론의 프로들은 아니었다. 그 몫은 오로지 성유보 선생의 몫이었다. 작은 팩트를 확인하는 선생이 처음엔 답답했지만, 사회에 대한 열정을 늘 갖되 그 열정만으로 기사가 되지 않음을 그로부터 배웠다. 1년이 채 안 돼 떠나던 선생과 함께 그만두며 "제도권 언론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어디든 상관없다 싶었는데 이젠 달라요. 한겨레에 가고 싶어요"라 말했던 것 같다. 내 입사를 기뻐해주셨던 선생은 마지막까지 언론계의 궂은일, 힘든 일의 현장에 함께했다.

그리고 지난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들려온 구본준 기자의 소식. 같은 또래의 그는 지난 19년간 입사 후배라기보단 친구 같았다. 불같은 성격이라 툭닥거린 적도 있지만 일본 만화, 추리소설 같은 취향을 공유했던 우리는 부서가 다를 때도 가끔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떨었다. 무엇보다 그는 '문화'를 사랑했고, 그 문화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즐겼다. 한때 블로그 개설 붐이 일었지만, 그처럼 꾸준히 블로그나 에스엔에스를 통해 전문가와 대중을 이어준 기자는 드물다. 스스로 늘 "난 칼럼니스트 스타일은 아니야"라 말했지만 친절한 그의 글엔 메시지와 정보와 지식이 꽉 차 있었다. 한 건축가는 "사실 건축계가 폐쇄적이었다. 그가 떠나니 세상과 링크가 끊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여년 만에 문화부에 온 내게 그는 "다른 건 필요없다. 그게 뭐든 만들고 싶은 문화부와 문화기사 그것만 확실히 하나 있으면 된다"고 격려했다.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사란, 기자란 어떠해야 할까라는 그의 질문을 난 계속 끌어안고 살 것 같다. '마감'이 숙명인 글쟁이였던 그이기에, 자신의 장례 기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본다면 너그러이 이해하며 평소처럼 한마디 하리라. "김 선배, 고생 많어~."

20일 오늘, 구본준 기자의 발인이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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