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한국인은 왜 토크콘서트에 열광할까

2014. 11. 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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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나는 친구와 '협약'을 맺었다. 한 달 동안 페이스북을 안 하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자 한 가지가 자명해졌다. 남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행동이 인간적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비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애용자는 이렇게 묻는다. "사진 올렸는데 왜 댓글이 안 달리는 거지?" 더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걸까."

 한국인은 페이스북만큼이나 '토크콘서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5월 1일 페이스북에 복귀하고 새삼스레 보니, 뉴스피드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유명 한국인들의 강연이었다. 강연 광고, 강연 사진이나 강연에 대한 반응이 올라와 있었다.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하거나(제목이 예컨대 '청년! 힘내라!' 식의 것들임) 일에 찌들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힐링'이 필요한 어른들을 위한 강연도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은 모두 한국말로 돼 있다. 왜일까. 토크콘서트는 한국적인 현상이다. 내 친구들의 본국에서는 토크콘서트가 한국만큼 인기가 없다. 내 고향인 영국의 경우에도 "저명 비즈니스 분야 작가인 아무개 씨의 리더십 강연을 듣고 왔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본 기억이 없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공공 강연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사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모범을 보이는 영웅도 필요하다. 그런 인물들을 보러 강연장에 가서 영감을 얻고 또 뭔가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국과는 반대로 영국은 롤모델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영국인은 모든 것에 대해, 또 모든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다. 반대로 한국의 대중은 전문가나 지도자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한국에서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고 토크콘서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런 신뢰를 반영한다.

 한국에는 왜 이런 '전문가 컬트(cult)'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 내 생각에는 권위에 대한 존중과 관련 있다. 특히 한국에 강한 경향이다. 상투적으로 표현한다면, 따지면 안 되는 '정답'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육 체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교육 체제에서 해답이란, 내가 스스로 해보는 탐구와 발견의 산물이 아니다.

 토크콘서트는 콘서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이다. (나는 콘서트 산업을 선호한다. 우리를 춤추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기를 부여하는 강연자 덕분에 기분이 고무된다면, 티켓 값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행복·재물·사랑을 쟁취하는 '비결'을 판매하는 사람은, 사실 우리가 더 행복하게도, 돈을 더 잘 벌게도,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해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저녁 한때라도 우리를 기분 좋게 해준다.

 정치 주제에 대한 강연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한국 친구들 중 정치 콘서트에 가는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좌편향'(유럽 기준으론 좌편향이 아니지만···)이며 권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지적인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강단에서 내려오는 의견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토크콘서트는 하향식·일방통행식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크콘서트가 사실은 매우 비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나도 몇 번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청중 숫자는 적었다. 내가 쓴 책들은 아주 인기 있는 책들은 아니다.) 강연할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항상 "제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항상 있다. 진실된 대답은 이거다. "저는 아무런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했네요. 답을 제가 안다면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요." 그렇게 대답하면 질문자는 실망하는 눈치다.

 내가 꿈꾸는 정치 토크콘서트에선 강연자가 청중이 스스로의 의견에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한다. 강연자가 "제 말은 듣지 마시고 다른 분들과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하세요"라고 말하는 토크콘서트다. 유명인 중에 누군가 나서서 토론모임이나 토론카페를 조직하고, 모임이 정착한 후에 뒤로 물러선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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