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는 군대'가 악마를 양성한다

2014. 11.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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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종대가 본 윤 일병 사건 재판

윤 일병 사건의 선고 법정에서

군사전문가 김종대는 말한다

다섯 명의 사병들이 그들이 건설한 소왕국에서 젊은 군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를 감독해야 할 하사관은 수수방관했다. 간섭, 통제, 교화, 처벌 등 지배의 규율만 통하는 한국 군대는 외부와 단절된 '사병들의 소왕국'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10월30일 군 법원은 이른바 '윤 일병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윤 일병 재판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말끔히 씻기지 않은 사건 은폐 의혹, 폭력을 조장하는 군대문화 등을 뒤돌아봤다.

▶ 재판은 휴정되기 일쑤였습니다. 윤 일병의 영정이 나뒹굴고 헌병의 모자가 벗겨져 날아갔습니다. '나쁜 놈'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군대, 윤 일병은 그 대열에 들지 못해 세상을 떴습니다. 제14, 15, 16대 국회에서 국방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낸 군사전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윤 일병 사건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지배하는 군대'가 악마를 양성한다

10월30일. 긴장이 감도는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정의 선고공판은 개정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2시34분에야 시작되었다. 법정의 자리 배치도 평소와 달랐다. 헌병 10여명이 방청객을 제지할 요량으로 방청객을 향해 줄지어 앉아 있고, 바깥 주차장에는 경찰 상당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재판장의 개정 선언에 이어 주심 판사가 양형기준을 낭독하였다.

"폭행 정도가 가히 충격적일 만큼 잔혹했다…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피해자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상태로 몰아갔다… (범행) 이후에도 자신들의 범행을 숨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피고인들의 행적들은 피해자의 죽음 이후 피해자의 죽음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고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군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던 건장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전혀 용서받지 못하고 유족들이 피고인들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이렇게 양형의 이유가 열거되었다.

30일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정

범행의 잔혹성과 범행 이후 은폐·조작 시도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범죄의 본질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무엇이냐다. 그런데 여기서 재판부는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최대 관심사는 살인죄 적용 여부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애매하고 난해한 말을 내놓았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난해한 용어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고, 방청객들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이어 "피고인들에게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모호한 말로 마무리된 주심판사의 결론은 "살인은 아니지만 살인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마땅히 그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죄목을 밝히지 않은 재판장은 주범 이 병장에 대해 징역 45년에 이어 이 상병 25년, 하 병장 30년, 지 상병 25년, 유 하사 15년, 이 일병 3월(집행유예 6월)을 선고했다. 상해치사죄가 적용된 사건 중 역대 최고의 형량이다. 이어 필설로 묘사하기 어려운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유족들이 고함쳤다.

"재판 똑바로 해. 살인이야 살인!"

막 재판부를 향해 가려던 고 윤 일병의 매형을 헌병이 제지했다. 방청객들이 술렁거렸다. 그가 재판부를 향해 흙을 뿌리며 고함을 치자, 헌병 여러 명이 번쩍 들어 재판정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남은 유족들로부터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오열하던 유족이 퇴정하는 피고인들을 향해 "이 살인자"라고 고함을 치며 다가가려 하자, 헌병들이 에워쌌다. 윤 일병의 영정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고 헌병의 모자는 벗겨져 날아갔다.

무언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을 때 우리는 가슴속에 담긴 치명적인 상처가 치유될 수 없다는 불길함을 느끼게 되며, 이것이 더욱더 깊은 절망과 아픔으로 구체화된다. 치유의 불가능성이 명확히 인식되는 순간 유족을 말리던 헌병 장교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어쩌면 유족의 항변은 "우리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사정처럼 들렸다. 이것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후벼파는 사금파리가 되는 듯했다.

이날 3군사령부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법정 바깥에 구급차를 대기시켰는데, 바로 여섯달 전 윤 일병이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탔던 것과 같은 차량이었다. 그 앞에서 윤 일병의 어머니는 다시 오열했다. "자기 자식이라면 이렇게 처참히 짓밟을 수 있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야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 되풀이한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범죄의 잔혹성 나열한 재판부문제는 본질이 무엇인가다여기서부터 말이 꼬였다애매하고 난해한 말뿐이었다방청객들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무언가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살인죄 아닌 상해치사죄 선고유족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나유족을 말리던 헌병장교의눈에도 순간 이슬이 맺혔다

아직도 은폐는 계속된다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나간 과거를 수없이 되새긴다. 위로받을 수 있는 희망의 한 조각을 건지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알고 싶어한다. 윤 일병 사망사건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바는 "이 죽음의 진정한 배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군이 사건 직후부터 말을 하기를 꺼리는 은폐된 진실은 무엇이며, 왜 이 거대한 조직은 아직도 그 은폐를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군은 28사단 한 포대의 의무대에 있던 여섯명의 피고인들이 살인의 의도가 없이, 어쩌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나약한 한 동료를 잔혹하게 때려서 숨지게 했다는 사실 외에는 특별히 더 말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마저도 은폐하려고 음식을 먹다가 생긴 질식사라고 주도면밀하게 짜맞춰놓고 유족에게는 수사자료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목격자인 김 일병과의 접촉도 차단했다. 그러다가 7월 말 군인권센터가 잔혹한 폭행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야 마지못해서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관할 법원을 이관하고 공소장을 살인죄로 변경했다. 그러나 3군사령부에서 열린 여덟 차례의 공판에서도 검찰은 28사단에서의 재판과 다른 법률적 판단만 했을 뿐 적극적인 사실 규명을 하지 못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국방부는 윤 일병이 숨진 4월7일 오후에 윤 일병 사망 원인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손상을 일으킨 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이미 발표한 상황이었다. 시신에 대한 부검도 하기 전에 사인을 먼저 발표하는 이상한 행태였다.

여기서 아직도 풀지 못한 의혹이 있다. 질식사로 사건이 발표된 뒤 윤 일병을 부검한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계약직 법의관인 윤아무개 과장이 어떤 근거로 '질식사'라고 추정하는 감정서를 5월12일이 되어서야 작성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 쪽은 "떡 먹다가 기도에 걸렸다는 말을 윤 일병이 안치된 병원에서 들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사망 당일로부터 윤 일병이 거쳐 간 3개 병원 중 어떤 기록물에도 음식물에 대한 기록이 없고 조사본부에 그렇게 말한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윤 일병이 쓰러졌을 때 입안에서 음식물을 꺼냈다는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게 의무대를 관할하는 포대장의 진술에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사실을 주목하며 9월1일 그 경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초기 수사에서 바로 이런 방향으로 대부분의 증거가 맞춰지고 일부 부검자료 등이 조작된 의혹마저 있다고 보도했다.

부검의는 시신에 골절, 피하출혈과 같은 숱한 상처가 있어 외관상 폭행의 흔적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어째서 이를 간과하고 질식사로 몰고 갔을까? 이 소견서와 "음식을 먹다가 질식했다고 들었다"는 포대장 진술 때문에 헌병 수사는 처음부터 갈피를 잡지 못했으며, 군검찰 역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정하려는 의지 없이 질식사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아마도 7월 말 군인권센터가 실상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8월4일 28사단 법정에서는 상해치사죄로 징역형을 선고했을 것이다.

결심 공판을 닷새 앞두고 이루어진 폭로는 사건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는 "국방부로부터 28사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작·은폐의 배후가 존재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만들지만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 점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지나갔다. 이 역시 검찰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박약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 유족과 시민단체가 가장 반발하는 대목이다.

사라진 의료기록, 부실수사 비호하는 국방부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던 8월11일 육군 법무병과장 김흥석 준장은 육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윤 일병 사건 담당) 검찰관은 한 달여에 걸친 폭행, 가혹행위와 사망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가능한 범위에서 완벽하게 특정하여 공소를 제기했다"며 28사단 검찰관을 비호하기에 바빴다. 8월28일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 역시 "이번 수사와 관련하여 가해자를 일벌백계해야 할 군 사법기관이 사고 은폐를 시도하거나 은폐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또다시 비호하는 등 국방부와 육군까지 엉터리 수사와 기소에 대한 변호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헌병에서 핵심 증인인 당시 입실환자 김 일병이 진술한 내용이 군 검찰 공소장에서 빠진 사실, 군 검찰관이 재판부에 제출했던 자료에 대한 위·변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재판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국방부와 육군의 고위 관계자가 왜 이를 비호하였는지는 풀어야 할 의혹이다.

3군사령부에서 재판이 진행되던 9월19일에야 3군사령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윤 일병 사망에 대한 감정을 촉탁했다. 그 결과 잦은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속발성 쇼크를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회신이 도착한 10월19일에야 비로소 정확한 사인을 논할 수 있는 최초의 객관적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신에서조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신은) 망인에 대한 부검을 직접 시행하지 않은 사건이, 의무기록 정보가 제한적이며 담당 의료진의 의견이 제시되지 않아 후송 당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료 검토만으로 속발성 쇼크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의식이 저하된 상황에서 기도폐쇄성 질식이 초래되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질식사 가능성을 다소 열어두고 있다. 이 회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10월에만 범행의 구체적인 일시, 시간을 특정하지 못하고 몇 차례 공소장이 변경되는 등 재판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혼란과 부실함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군의 석연치 않은 수사에 대해 윤 일병의 유가족과 군인권센터는 9월25일 28사단 헌병대장, 28사단 헌병수사관, 28사단 의무대의 의무지원관 유 하사, 국방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28사단 검찰관을 직무유기로 고소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특히 법무병과가 수사 축소·은폐 정황에 대한 수사를 명확히 해 책임자를 가려내야 할 명백한 책무를 방기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수사, 부검, 기소 부분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엄정한 수사와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만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군의 폐쇄적인 사법체계 안에서 자행되는 부실 수사와 말바꾸기, 증거 조작과 같은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려면 윤 일병 사건은 처음부터 다시 수사할 필요가 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건의 배후에서 사건의 축소·은폐에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면 재판부가 살인죄로 판결을 하는 데 아직도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살인죄 적용이 이제 와서 두려운 이유가 뭘까? 이제껏 사건을 은폐·축소했던 세력에게 새로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윤 일병 죽음의 진정한 배후일지도 모른다.

분노가 폭발한 의무대, 운명의 4월6일

9~10월의 재판에서는 증인과 피고인 신문을 통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28사단 의무대의 처참했던 실상이 드러났다. 의무병인 이아무개 상병은 열흘째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에서는 아는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어젯밤에는 나타난 친구는 이빨이 빠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제껏 자신도 후임을 때렸다. 그렇게 안 하면 이 병장이 자신을 때릴 것이 뻔했다. 재판에서 이 상병과 지 상병은 윤 일병을 폭행한 것이 "우리들의 의지가 아니라 이 병장의 지시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나 구타가 이미 소통의 언어가 된 이 의무대에서는 자신이 누군가를 지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무능력하다고 무시받게 되는 징벌의 서열과 문화가 완전히 체질화되어 있었다. 그런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초에 이 상병은 의무지원관인 유 하사에게 "이제 구타는 그만하자"고 말했다고 진술하며 살인의 고의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 하사는 4월4일 이 병장에게 "이제 더 이상 애들을 때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고 증언하면서 자신은 특별히 심각한 구타를 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

10월23일 열린 공판에서 일부 피의자는 이런 점을 부각하려고 했다. 유 하사가 이런 내용으로 계속 변명을 하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윤 일병의 매형이 재판정 안으로 뛰어들어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가 헌병에게 제지당했다. 재판은 엉망이 되었고 휴정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특히 간부인 유 하사의 책임 회피는 재판부에도 정상참작의 여지마저 잠식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30일의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0년보다 더 강력한 15년형을 선고했다.

원래 의무병이 아니라 수송대 소속인 운전병인 이 병장은 7명 정원인 의무대에 대한 지휘권이 없었다. 분대장은 두 달 후임인 다른 하 병장이었고 의무지원관은 유 하사였다. 그런데도 이 병장은 '제왕'이었다. 다부진 체격에 매서운 눈빛, 조금이라도 무시당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까지 모든 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최고참이 되고 난 이후부터 의무대는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윤 일병에 대한 이 병장의 폭행은 거의 매일 상습적으로 이루어졌다. 3월10일에는 말하는 중에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관물대에 60분간 들어가 있게 했다. 그 며칠 후에는 저녁에 유류창고로 윤 일병을 부른 다음 지 상병에게 2m 정도의 마대걸레 자루를 가져오게 하여 24대를 때렸다. 이로 인해 윤 일병은 다리를 절뚝거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뛰지 못한다는 이유로 7회에 걸쳐 기마 자세를 취하게 한 뒤 발로 복부를 때리고 옆구리를 걷어차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렸다. 3월30일에는 "대답을 못한다"고 4회에 걸쳐 기마 자세를 취하게 한 다음 지 상병에게 "윤 일병 잠을 자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이후로 매일 잠을 자지 못했다. 4월5일 이 병장은 윤 일병을 불렀다. "이제껏 내가 말한 것 중 가장 감명을 받은 것 다섯 개만 말하라"고 했다. 윤 일병이 "외국 햄버거가 맛이 없다고 한 것"이라고 하자 "감동적인 이야기와 웃긴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며 때리며 재차 물었다. 이에 "아버님이 조폭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윤 일병이 대답했다. 이제껏 "군 생활 잘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기대하던 답변이 나오지 않자 여전히 윤 일병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 병장은 격분했다. 윤 일병의 러닝셔츠를 찢고 가슴을 때렸다. 윤 일병에게 잠을 자지 못하도록 지시했는데 어젯밤에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 병장은 더 격분했다.

4월6일에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가장 가혹한 폭력이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다리를 절뚝거려 아침 구보 시간에 뒤처졌다는 점도 폭행의 이유가 되었다. 워낙 많이 때리던 이 병장이 지쳐서인지 지 상병에게 "네가 때리라"고 하자 이번엔 지 상병이 윤 일병을 엎드려뻗치게 하고 복부를 20회 발로 찼다. 이제부터는 때리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아침 10시에 이 병장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고 윤 일병이 그것을 핥아먹게 했다. 재차 이 병장이 발을 들어 윤 일병을 걷어차려고 하자 이 상병이 "형 그만해요"라며 이 병장의 허리를 감싸고 만류했다. "쟤, 온몸에 멍이 들어 상태가 안 좋다"고 하자 "무슨 일이 있었다면 벌써 있었다"며 이 병장은 일축했다. 윤 일병을 침상으로 불러 상의를 벗어보라고 했다. 지름 5㎝ 정도의 멍이 가슴 전체에 번져 있었다. 이 상병이 만져보니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한쪽 뼈가 부서져 함몰된 것 같았다. 이 병장이 가슴에 안티프라민을 발라주다가 손을 내밀게 하여 안티프라민을 짜고 그것을 성기에 바르도록 했다. 오후 2시에 윤 일병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수액주사를 놓아주도록 했다. 그런 뒤 냉동만두를 사오도록 해서 윤 일병을 오른쪽에 앉히고 그것을 먹도록 했다. 그런데 윤 일병은 젓가락질이 시원치 않은데다 만두를 먹으면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게 또 빌미가 되어 앉은 상태에서 윤 일병의 옆구리를 다섯번 걷어차고 얼굴을 때려 음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물통을 가져오게 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켰는데 또 동작이 늦다고 또 배를 다섯번 찼다. 그러다 지친 이 병장이 재차 지 상병에게 때릴 것을 지시하여 배와 옆구리를 계속 걷어찼다. 지친 윤 일병이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자 "마시고 오라"고 했으나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물을 못 먹게 하고 기마 자세를 취하게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세가 흐트러졌다. 이를 본 이 병장이 다가가자 윤 일병이 다시 자세를 고치자 이것이 또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생각한 이 병장이 "꾀병 부리지 마라"며 손바닥으로 머리를 쳤다. 이때 지 상병은 생활관 밖을 향해 망을 보고 있었다. 상황은 심각해졌다. 윤 일병의 눈이 뒤집히고 소변이 나왔으며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가 시작되었다. 이 병장 지시로 산소포화도 측정이 시작되었고 심폐소생술도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꾀병으로 인식하고 또 폭행이 이어졌다. 잠시 후 구급차에 유 하사와 이 병장이 의식을 잃은 윤 일병을 싣고 연천의료원을 향했다. 그리고 윤 일병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재판에서 이 병장과 하 병장, 유 하사의 변호사는 이 당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병원까지 동행했다는 등의 정황을 들면서 이들의 살인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가해자들이 의료 지식이 있고, 이미 윤 일병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고도 폭행을 하였기 때문에 살인죄에 해당된다고 반박했다.

이런 진술이 이어지는 동안 유족들은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반복해서 자식의 죽음의 내막을 들어야 하는 유족들에게는 참혹한 고문이 장시간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고, 거짓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오열하는 유족과 항의 때문에 재판부는 수시로 휴정을 선언해야만 했다.

살인죄 적용을 왜 두려워하나사건을 은폐·축소했던 세력에게새로운 책임 물어야 해서인가그것이 바로 윤 일병 죽음의진정한 배후일지도 모른다한국군의 '지배하는 군대' 문화구성원을 불완전 인격체로 보고간섭·통제·교화·처벌을 위한개인 통제장치들 범람하고권위 복종의 의무만 부과돼

무시당하지 않고 생존하는 방법

4월7일에는 의무대원들에 의한 조직적인 사건 조작·은폐가 자행되었다. 윤 일병의 노트와 찢어진 러닝셔츠, 유 하사가 윤 일병에게 내리쳐 부서진 스탠드가 분리수거되었다. 특이한 것은 약 50장에 이르는 중간고사 문제지가 소각되었다는 점이다. 중간고사란 이 병장의 음식 취향과 여자친구, 좋아하는 축구팀, 선임 연명부, 의약품 명칭이 적힌 것으로 이 병장이 전능한 통치자로 후임을 통치하는 데 매우 요긴한 수단이다. 재판에서 이 내용이 이 상병에 의해 폭로되는 순간 이 병장은 좌절한 듯 고개를 떨궜다. 이제까지 후임을 폭행한 자신을 '나쁜 놈'(bad guy)이라고 해도 참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질서는 "나쁜 놈이 되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이 병장에게는 자신을 방어하는 핑계, 즉 공적인 논리였다.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세계다"라면서 그의 내면은 여전히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쁜 놈이 아닌 '더러운 놈'(dirty guy)이 되면 이건 무시당해도 무방한 일종의 '지질이'가 된다. 그렇게 더러운 놈이 되면 이 질서의 추악성과 허구성이 드러나게 되며 여기에는 어떤 자기방어의 논리가 없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피해자인 윤 일병은 의무대 대원들에게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그들의 감정노예다. 지배자들이 괴롭히면 고통스러워함으로써 그들의 전능함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그런데 사소한 명령이라도 위반하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해주지 않고 약간의 불쾌감이라도 준다면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분노했다. 이 과정에서 때리는 건 일종의 놀이로 전환되었다. 지 상병이 윤 일병의 부은 다리를 웃으면서 "×나 신기하다. 무릎이 없어졌다"며 20여회 찌르는 가혹행위를 한 것은 유희라고 할 수 있다. 이 증언이 나올 때 유족의 분노는 또 폭발했다.

둘째는 지배자의 '확장된 육신'이다. 이 병장은 하 병장을 자신의 좌뇌, 지 상병을 자신의 우뇌, 이 상병을 자신의 칼자루라고 했다. 통치 질서라는 것은 이 왕국이 통치자의 확장된 육신이라는 의미인 것이고, 이 왕국의 신민들은 그걸 믿고 복종해야 한다. 셋째는 그들의 노동력이다. 끝없는 잡역과 그들의 사적인 심부름을 수행해야 하는 후임의 처지다. 이 의무대에서는 누구나 이 병장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의무지원관(하사), 분대장(병장)까지 운전병인 이 병장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절차가 있었다. 먼저 '군대는 원래 이런 곳'이라는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어야 한다. 의무지원관인 유 하사는 "군대는 구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터넷 글을 휴대폰으로 의무대원에게 보여주면서 이 병장의 가혹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이들에게 군대는 때리는 곳이고, 원래 그런 곳이었다. 그다음으로 때리기를 실제로 실행해보는 '강요된 학습과정'이 따라온다. 병사들은 이 병장을 두려워하며 윤 일병에 대한 폭행에 전원 가담하였다. 이들은 예전에도 폭력을 감수하는 체계적인 질서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하면 그것은 언젠가 자신이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으로 학습되기 시작했다.

셋째는 폭력의 강화 과정이다. 폭행이 구성원 전체에 의해 합의되고 나면 조직의 가장 힘없는 자에게 그 폭력이 몽땅 집중되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책임이 사람 수만큼으로 등분되는 순간 죄책감은 사라지게 되며 더 이상 도덕적 명령이나 규범으로부터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이때 조직은 그러한 구타와 폭행을 감수함으로써 스스로 강해진다고 믿는다.

넷째는 폭발 과정이다. 이런 통치 질서가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후임의 사소한 말실수는 이 전체 질서에 대한 배신이자 신성모독이다. 이것은 가장 엄중한 처벌을 불러온다.

그런데 이들 신상을 보면 하나같이 사회와 가정에서는 잘 교육받은 정상적인 청년들로서 범죄에 가담할 사람들이라고 선뜻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한결같이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할 것으로 사료된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며 리더십이 뛰어나다", "자대 적응에 별문제가 없다"는 기록이 태반이다. 이들은 원래부터 짐승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번 잘못 조성된 의무대 질서는 그들을 끔찍한 상태로 내밀었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면 질서에 복종해야 하고 누군가를 가혹하게 폭행해야 내가 살아남는다. 이 과정에서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맙소사. 이들은 어떤 양심의 소리, 도덕적 명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이미 배워버렸다. 그러므로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하는 데 놀랄 정도로 성공한 이 통치 질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작동되었다. 간부들로부터 묵인되거나 방치된 일종의 전체주의 체제였다. 그것도 매우 성과와 효율이 뛰어난 우수한 조직이었다.

이 병장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군대에 왔다.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할 때를 기다려 자신이 군대 간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고 뒤늦게 군대를 온 후임 시절에 선임의 구타 사실을 상급기관의 설문조사에서 밝혔다가 "고자질한 놈"으로 낙인찍혀 그 부대에서 견디지 못하고 이 의무대로 전출되어 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후임 시절에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선임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면 대부분 자신보다 어린 동료들을 장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어떻게든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원래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는 그는 원소속인 수송대에 거의 가지 않고 의무대에 눌러앉아 버렸다. 이것은 의무대 전체에 매우 심각한 재앙이었다.

지 상병은 어릴 때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살았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어머니가 아들 돌을 챙기지 못해 이모들이 대신 차려주었다고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비만으로 놀림감이 되었고, 이를 악물고 살을 빼 대학에 다니던 중 군대에 왔다. 군 생활 도중에 어머니는 단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군대에 와서 누군가가 가혹행위를 당한 걸 외부에 발설하고 제보했다가 정작 그 자신이 영창에 가는 걸 보았다. 그런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폭력을 학습하게 했다. 폭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오직 폭력을 망설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게 생존 방식이라고 믿을 뿐이었다. 지 상병에게는 이 병장은 모든 두려움의 원천이자 제왕이었다.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날인 4월7일 중대 지휘통제실의 김아무개 일병을 만난 지 상병은 윤 일병이 폭행으로 숨진 사실을 털어놓으며 "내가 이걸 발설한 걸 이 병장이 알면 나 맞아죽는다"고 했다.

지 상병은 윤 일병이 구급차에 실려 간 직후부터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한다. 계속 유 하사에게 전화를 하여 "어떡하면 좋으냐"고 물어보았지만 유 하사는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런데 이 병장이 유 하사 휴대폰으로 지 상병에게 전화하여 "윤 일병은 음식 먹다가 질식으로 죽은 거다"라고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는 입실 환자였던 김 일병이었다. 이상하게도 윤 일병을 때릴 때마다 망을 보던 이 의무대 병사들은 정작 입원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일한 외부인인 김 일병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 상병은 이 병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김 일병에게 "김 일병은 자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으로 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의무대에 돌아온 이 병장은 지 상병을 비롯한 의무대원을 불러들여 입을 맞췄다. 이 당시에도 이 병장과 지 상병은 상황이 심각해진 걸 의식하고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인멸해 나갔지만 정작 자신들이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미 마비된 도덕의식은 자신들에게 가해질 엄청난 분노와 형벌까지도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 막상 재판정에서는 주범인 이 병장과 하 병장, 지 상병은 거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거나 울었다.

하 병장은 분대장 교육을 받은 의무대의 형식적 선임에 불과했다. 그는 항상 이 병장에게 장악되었고 무시를 당했다. 이 병장은 "우리 의무대의 분대장감은 이 상병"이라며 이 상병을 '군기 담당'으로 임명해버렸다. 공적인 계급과 역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직 이 병장이 정한 헌법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병장이 하 병장에게는 그에 알맞은 대우를 해줌으로써 이 왕국이 전복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마련되었다. 이 병장과 하 병장, 그리고 유 하사는 같이 휴가를 나가 피시방에도 들르고 노래방도 갔다가 성매매도 함께 했다. 이들은 형과 아우로 서로를 불렀다.

사람을 '지배하는' 한국 군대

이런 모든 지배질서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한국 군대의 문화였다. 선진국 군대가 '조작하는(manipulate) 군대'라면 한국군은 '지배하는(rule) 군대'였다. 지배하는 군대는 구성원을 불완전한 인격체로 간주하고 간섭, 통제, 교화, 처벌, 교정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아서 구성원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고, 어떤 실수나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채 조직이라는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의무만이 부과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개인에 대한 통제장치들이 범람하게 되는데, 먹고 자고 입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공적·사적 통제의 대상이 되며, 이를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규율이 강조된다. 예컨대 복장, 태도, 예절과 같은 외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규율이 범람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양록, 반성문, 암기사항 점검을 통해 내적 질서 유지 상태도 점검된다. 또한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각종 통신수단도 제한되고 부대의 울타리가 높게 형성되며 과도하게 보안이 강조된다. 특히 병사 개인에게는 간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임무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작하는 군대'는 구성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가정하고 구성원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성을 요구하며 적절한 보상과 처벌로 협력을 유도한다. 구성원은 비록 집단에 복종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이며, 공동체에 소속된 것도 바로 자신의 선택이다. 이런 조작적 집단은 개인의 인격을 통제하는 규율과 통제 장치를 남발하지 않으며 단지 집단의 정체성, 단체성, 책임성,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을 유지할 뿐이다. 새뮤얼 헌팅턴에 의하면 근대의 파시스트 군대는 19세기의 유산을 계승한 '지배하는 군대'이고 현대 민주사회에 부합하는 군대는 전문성, 직업성에 기초한 '조작하는 군대'다. 지배하는 군대는 개인에 대해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인간관을 전제로 한다. 국가와 군대라는 신성한 집단에 비해 개인은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취약한 존재이다. 그러한 개인은 국가와 조직에 소속됨으로써 비로소 숭고한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 국가의 표상으로서 군대는 신성하고 국민에 대한 우월한 가치의 전파자이자 통제 권력이다.

여기서 군대는 단지 전투를 하는 조직으로서의 본연의 의미를 초월하여 불완전한 개인을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개조하고 변형하는 수준까지 통제력을 발휘하는 전능한 권위체가 된다. 본래 군 조직의 특성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함께 지휘관을 중심으로 조직적·체계적 전투행동을 통해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대는 사회집단에 비해 더 많은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군대의 통제 방식이 전인격적인 범위로 확대되어 개인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전면적인 통제로 개인의 자존감까지 위축되면 지배하는 군대가 된다. 이것이 '군대는 원래 그런 곳', '구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때 28사단 의무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인간을 양분하는 질서를 창조해 냈다. 이런 의무대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과 동일한 세계이다. 이 소설에서 섬에 불시착한 소년들은 그들만의 전체주의적 질서를 만든다.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인 '원시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군대는 불시착해버린 고립된 섬이었다. <파리 대왕> 소설과 동일하다. 그 <진짜 사나이> 내무반에서는 자기 상관이 좋아하는 축구팀, 좋아하는 음식까지 시험을 봐야 했다. 폐쇄된 공간, 고립된 인간관계, 서열과 형님문화, 좌표 상실. 이곳에서는 죽거나 저항하거나 비굴하거나, 세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윌리엄 골딩은 인간 본성이 이타적이지 않다고 믿는다. 침팬지와 인간은 차이가 없다. 조카 침팬지가 힘이 세면 삼촌 침팬지를 돌로 쳐서 머리를 박살낸다. 자기 바나나 먹었다고 해서. 여기에 나오는 어린아이들이 잔혹하게 자기 또래 아이들을 죽이고 배제해버린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주목하는 동물이고, 자기와 남을 비춰보는 거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울을 닦지 못하게 구조적으로 규정되고, 압박을 받으면, 그 마음의 거울에는 때가 낀다. 반성능력은 사라진다. 내 바나나 먹었다고 삼촌 침팬지 대가리를 부수는 힘과 에너지만 남게 된다… 이 청년들에게 평화와 인권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중요하다. 입시로 차별받고, 군대 가서 차별하고 학대하는 법을 배우고, 또 사회에 나와서 그 차별과 폭력을 실천한다. 저 감옥의 문을 터버려야 한다. 청년들의 군사노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왜 어떤 이유로 국방의무인가? 최소한 직장, 노동 개념, 노동권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클레이 제작 김태권, 사진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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