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시신 수습해 줄 사람 위해..마지막 배려 '국밥값' 남기고

양민철 기자 2014. 11. 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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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처럼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 끊은 독거노인

생활고에 시달리며 전셋집에 살던 60대 독거노인이 퇴거 요청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월 밀린 공과금을 봉투에 담아놓고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처럼 자신의 장례비와 전기·수도요금, 시신을 수습해줄 사람을 위한 '국밥값' 봉투를 남겼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장안동의 한 주택에 살던 최모(68)씨가 29일 오전 10시쯤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31일 밝혔다. 최씨는 LH공사의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 5700만원을 받아 49.5㎡(15평) 남짓한 이 집에 전세금 6000만원을 주고 살고 있었다.

최근 집주인이 바뀌고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자 지난 28일 LH공사에 전화를 걸어 "내일 퇴거하겠다"고 밝혔다. 퇴거 당일 공사 직원이 최씨의 집을 찾아갔지만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직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최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최씨 집의 탁자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고 적힌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빳빳한 신권으로 1만원짜리 10장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식사나 하라며 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집안 곳곳에서 다른 봉투들도 나왔다. 경찰은 책상서랍 속에서 장례비로 추정되는 돈 100여만원이 든 봉투를 발견했다. 현관문 바닥에는 전기요금 고지서와 전기요금이, 싱크대 위에는 수도요금 고지서와 수도요금이 담긴 봉투가 놓여 있었다. 각 봉투에 담긴 돈은 모두 176만원. 경찰은 이 돈을 최씨의 조카에게 전달했다. 별도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최씨는 결혼하지 않은 채 노모를 모시고 살아 왔다. 그동안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다 지난 3월 노모가 세상을 뜬 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은 최씨가 예의 바르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현장에 범죄 혐의점이 없어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로 보고 검찰의 지휘를 받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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