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뿐인 대기업 근무복

손은혜 2014. 11. 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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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터넷을 새로 설치하거나 가전 제품이 고장났을때 대기업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면 설치 수리기사들이 출동합니다.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 로고가 찍혀있는 옷을 입고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입니다.

대기업의 이름을 걸고 소비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며 만나고 있지만 간접고용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처우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은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슬아슬하게 사다리 위를 올라가는 김향욱씨.

비오는 날 전신주 위를 오르는 일은 매번 긴장됩니다.

한참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전선 작업을 한 뒤에야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인터넷과 텔레비젼을 연결하는 설치기사일을 시작한지 벌써 4년째.

전문 기술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해가 갈수록 근무환경은 나빠졌습니다.

<녹취> "10점 만점에 매우 만족입니다. "

고객에게 서비스 점수를 잘 평가해 달라고 단단히 부탁해야 마음 편히 문을 나설 수 있습니다.

단 한 항목이라도 최고 점수를 못받았을 경우 월급에서 5만원에서 20만원까지 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에는 전신주 위에 올라가 일을 하다 옆에 있는 나무 가지에 눈을 찔리는 사고까지 당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향욱(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 : "병원을 급하게 갔더니. 그 때 벌써 이쪽 눈이 각막이 찢어졌다고 하더라구요. 보수나 이 모든 것들을 나중에 보면 저희들이 받아야 하는데 저희들이 받아지고 못하고 위에서 다 이렇게 야금 야금 뺏어먹잖아요."

업체 측은 근로자들의 작은 부상까지 일일이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녹취> SK브로드밴드 하청업체 관계자 : "저희가 워낙에 중대사고나 이런 경우엔 당연히 처리를 했겠죠./ 정직원이어도 경미한 사고는 산재처리 안하잖아요."

9년째 인터넷 설치기사 일을 해온 박정훈씨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주에 70시간은 기본, 많을 때는 90시간까지 밤낮없이 일하지만, 손에 쥐는 돈이 2백만원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게다가 이런 저런 부대비용까지 대부분 본인이 부담합니다.

영업실적이 저조하면 한달에 15만원 차감, 고객만족도가 좋지 못해도 건당 천원에서 이천원씩 차감, 신규고객유치건수가 적어도 불이익을 받습니다.

<인터뷰> 박정훈(LGU+ 설치기사) : "최소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까지 차감이 되요. 이십 얼마 정도 저번에 차감이 됐었구요. 한 달 이내에 (가입고객이) 취소를 한다고 하게 되면 다시 이제 제가 영업비 받은 거를 회사에 도로 내야 되요."

전국에 있는 SK 브로드밴드 행복센터와 LG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는 모두 7500여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은 대기업 소속이 아니라, 일부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이고, 나머지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 신분입니다.

하청업체는 원청인 대기업과 해마다 실적에 따라 재계약을 합니다.

과도한 실적 압박이 고스란히 근로자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국 180여개 서비스센터 가운데 직영센터가 7곳에 불과합니다.

4년동안 삼성 서비스센터의 수리기사로 일했던 고 최종범씨.

열악한 근무환경에 힘들어하던 최씨는 상황을 바꿔보겠다며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인터뷰> 故 최종범 씨 유가족 : "핸드폰 요금 밥값 그리고 또 유니폼값 뭐 이런거 등등 자재비 같은 거를 본인들이 다 내고 다니니까. 이런거를 차떼고 포뗀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남는 것도 없고. (노조 가입 이후) 감사대상자로 처음으로 자기가 올라와가지고 3년치 일을 소명하라고 하니까. 그 때 너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최씨는 '겉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다.... 배고파서 못살겠다' 는 유서와 문자 메지시를 남긴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리 기사 1000여명은 지난해 7월부터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라두식(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부지회장) : "저희는 근로기준법 자체도 우리 동료들이 모르고 살았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3분의1 수준 밖에 급여를 받지 못했어요. 반면에 노동시간의 강도는 원청직원들에 비해 약 2배 이상의 노동강도가 있었구요. 이렇게 가서는 안되겠다."

삼성 측은 이들 설치 수리기사들은 삼성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가 아니라 하청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의 직원들이기 때문에 인사나 관리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삼성 서비스 센터 관계자 :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채용부터 인사권 등 모든 것은 협력업체 사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휘 명령 다 협력업체 사장이 하고 있는 상태구요"

그러나 소속만 하청업체 일뿐 실제로는 대기업의 통제하에 모든 업무를 진행해 왔다고 설치 수리기사들은 주장합니다.

<인터뷰> 류하경(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지않고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형식만 도급계약을 맺어놓고 실질적으로는 자기들 직원인 것처럼 직접지휘하고. 명령하고."

자신들의 업무를 관할하는 실제 고용주를 가리는 것이 어렵다보니 간접 고용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간접고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근로자들이 고용의 안전성을 보장받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해고를 당해도 누구에게 문제제기를 해야할지 그 대상조차 애매해지기 때문입니다.

한 케이블업체에서 설치기사로 일했던 이정민씨는 지난 8월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원래 일했던 하청업체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근로자 100여명이 함께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정민(씨앤엠 해고 노동자) : "업체 자체가 날아가면은 뭐 저희는 갈 곳이 없는거죠. 그래서 업체가 바뀌더라도 저희는 고용승계 이런 것들이 잘 되어야 되는데 . 안정이 되어야지. 저희가 뭐 어떻게 생활을 하는데 해마다 이렇게 업체가 바뀌면 같이 날아갈까봐 조마조마해야 되고."

비노조원이었던 근로자들은 모두 새로운 하청 업체에 고용 승계가 되었지만 노조 활동을 했던 이들은 모두 해고됐습니다.

지난 7월말,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김지수씨는 한 달 넘게 원청인 대기업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하청업체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 신분으로 일해왔습니다.

대기업은 구체적인 업무를 통제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업자 신분으로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김지수(LGU+ 해고자) : "니네는 우리 직원이다. 뭐 니네 우리 근로자다. 이렇게 했었죠. 그런데 저희는 아무 상관이 없다가 지금와서 우리가 이제 자영업자니까 퇴직금도 없다. 뭐도 없다. 이렇게 우기는 거죠."

회사 측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일어난 일은 원칙적으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주식(LGU+ 부사장) : "협력사 사장은 소기업인으로서 개인의 책임경영을 하는 겁니다. 저희들은 아웃소싱을 하는 거구요. 그래서 협력사 사장과 노조 간의 관계에 의해서 일어난 일은 저희 원청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실제로 원청인 대기업의 지시에 따라 근무를 해왔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어떤 구제도 받기 어려운 겁니다.

<인터뷰> 임승순(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장) : "근로자들이 하청 사업주와 고용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법률상으로는 하청근로자인게 맞는 거죠. 불법파견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증명이 된다면, 그 부분을 원청 직접 고용 근로자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구요."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간접 고용 근로자 수는 모두 87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3백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에서는 다섯명 가운데 한 명을 간접고용 근로자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대기업의 이름을 건 업무 공간에서 일한다하더라도 대기업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기업들의 상당수는 간접고용의 형태를 포기했을 경우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명분으로 간접 고용을 택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진수(노무사) : "(간접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고 한다면 사실은 법령상에서 사용자 책임으로 부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것 밖에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죠."

올해 4월 대규모 구조 조정을 실시한 KT.

김석씨는 명예퇴직을 신청한 뒤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왔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석(KT 하청업체 소속 설치기사) : "어처구니가 없었죠. 회사에서 일 자체를 안준다니까... 집사람하고 애들 볼 낯이 없다니까요."

명예 퇴직금을 받기는 했지만 연봉은 3분의1 가량으로 줄었습니다.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 된 지금, 안정된 고용이나 복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회사 측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입장입니다.

<녹취> KT 관계자 : "회사가 엄청난 경영 위기에 처하고 직원들 인력도 타사대비 저희가 3배 4배 수준이에요. 그래서 노사가 합의를 해서 내린 그런 사항이구요."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

최소한도의 기준을 충족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강성태(한국노동법학회 이사) : "소속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올려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은 하청기업들이 아니라 원청인 대기업들의 책임이다..적어도 견딜만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어느 수준이다.그 정도 수준까지 파견근로자나 아니면 간접 고용 근로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끌어올리자"

자신이 언제까지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할 대상조차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들은 오늘도 근로 기준법에 맞는 노동환경은 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간접 고용 근로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누가 진짜 사장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계속 증가하다보면, 사회는 더욱 더 침체될 것입니다.

대기업 근무복을 입게 했다면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권리도 보장해줘야겠죠.

취재파일 K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손은혜기자 (unhasu121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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