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각장애학생 따돌림, 방관하고 면박 준 교사들

양진하 2014. 10. 31.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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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못 불면 반 전체 점수 없다"

음악교사 무신경 탓 따돌림 심해져

담임은 소극적 대처…학폭위, 가해학생들만 징계 착수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비장애인 학생들과 한 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던 청각장애 학생이 교사들의 관심과 이해 부족으로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언어 폭력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들이 따돌림을 방관하고, 오히려 아이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며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30일 서울 A중과 이 학교에 다니는 청각장애 학생 B(13)군의 부모 등에 따르면 이달 20일 B군은 음악 수업의 리코더 연주 수행평가 도중 교사로부터 "23일 음악시간까지 제대로 불지 못하면 학급 전체에 수행평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4세 때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B군은 청각장애 2급으로 학교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 곳에서는 모든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

음감이 비장애 학생들보다 떨어져 연습을 해도 리코더 연주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인데 반 친구들은 "장애인 때문에 우리가 점수를 못 받는다"며 비난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B군의 부모는 학년 초 담임교사에게 "음악 실기 평가 등 청력을 사용해야 하는 시험이나 과제 등의 평가는 필답시험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올해 1월 시행된 교육부의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의 '청각장애 학생은 청력을 사용해야 하는 시험을 필답시험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B군은 반 친구들에게 리코더를 불지 못하는 '공공의 적'이 돼 버렸고, 문제가 커지자 담임 교사는 특수교사에게 B군의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결과 B군은 1학기 때부터 같은 반 학생 5~6명으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놀림, 언어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몇몇 학생들은 B군의 어깨를 쳐 넘어뜨리는 등의 폭력도 휘두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 친구 C군은 B군에게 수시로 "넌 리코더도 못 부는 장애인이냐"는 말을 했고, 지난달에는 발로 밟은 과자를 먹으라고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B군의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담임 교사에게 호소했으나 교사는 가해학생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아이를 도와주는 봉사자로 가해학생 C군을 지정해 괴롭힘을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B군의 부모는 관할 경찰서에 학교폭력을 신고하고 학교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학교는 29일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고 가해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B군의 아버지(45)는 "사건을 방치하고 키운 교사들과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한 학교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해당 교사들이 사과하는 입장을 밝혔고 학교도 조정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각장애 학생에게 실기 평가는 어려운 과제지만 음악 교사가 학생에게 평가 기회를 두 번이나 줬다"며 "평가를 완료하기 전에는 다른 학생들의 점수도 공개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B군의 아버지는 "음악 실기 수행평가 점수를 포기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는데도 교사가 듣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교사들이 만나달라는 말만 할 뿐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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