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울리는 '10분 계약서' 아시나요

양진하 2014. 10. 24. 2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출근시간 10분 늦춰서 계약 '꼼수'

실제 근무시간은 주 15시간 훌쩍, 고용보험·초과수당 등 못 챙기고 밥값 보조는커녕 돈 내고 먹어야

올해 3월부터 경기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전담사로 일해 온 A씨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아이들 출석 체크를 위해 1시간 더 일찍 나오라는 학교 측 요구에 따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근무했다. 이렇게 하루 4시간씩 주당 20시간을 일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노동시간은 주당 10시간여에 불과했다. 그나마 학교 돌봄교사와 방과후 특기적성 강사가 수업을 하는 시간은 A씨가 일한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일한 시간의 절반 정도 임금만 받아온 A씨는 지난 6월에야 교육지원청에서 정정 처분을 받았다.

비정규직 학교 노동자 중에서도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근로시간을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조정하려는 꼼수도 횡행한다. 출근 시간을 10분 늦춰 하루 노동시간을 2시간 50분으로 맞추는, 이른바 '10분 계약서'가 대표적이다. 주중 하루만 1시간을 줄이는 계약도 있다. 주당 14시간을 근무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B씨는 "학교 측에서 금요일 하루만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계약서를 제시해 놓고, 금요일에도 일찍 나와서 일을 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근무시간은 준비ㆍ정리 시간까지 포함해 주당 15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이들은 고용보험, 유급 병가 등의 혜택은 물론 초과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공동으로 발간한 정책자료집 '복합 비정규직 종합백화점 학교, 그 실태를 고발한다'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전체 학교회계직(강사와 기간제 교사를 제외한 돌봄교사 영양사 등)의 7.5%인 1만709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36%(7,619명)가 증가했다. 학교 비정규직은 전체 교직원의 43%(37만 6,000명)를 차지한다.

복지혜택에서의 차별도 심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에게 지급되는 월 13만원의 정액급식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월 7만원의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지만 정규직은 급식비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비정규직 교무보조로 근무하는 C씨는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조리사, 조리원에게는 급식비를 면제해주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나머지 비정규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학교 비정규직의 최종 사용자는 교육감"이라고 판결했고,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차별을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렸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다음 해 계약을 위해 학교 측에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11월 20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학비노조 민태호 사무처장은 "정부가 차별금지 정책을 발표하고 광고까지 했는데도 교육부, 교육청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