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은 '최동원상' 권위에 만족할까요

2014. 10. 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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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국판 사와무라상인 '최동원상'

1회 수상자는 기아 양현종 선수

선정기준에 외국인 선수 제외 아쉬워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바야흐로 감독 교체의 시절입니다. 프로야구판 얘깁니다. 한쪽에선 가을잔치인 포스트시즌이 열리고 있지만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팀들은 감독 교체와 선임에 바쁜 요즘입니다. 기아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은 '588'(5위·8위·8위)에도 불구하고 2년 재계약을 맺어 기아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중입니다. 감독이 물러난 한화와 롯데 팬들은 오매불망 '야신'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롯데의 차기 감독 1순위로 거론됐을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3년 전 가을 세상을 떠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입니다. 최동원 감독, 최동원 코치라는 말보다는 투수 최동원, 그냥 최동원이 더 익숙한 바로 그 무쇠팔 최동원입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상대적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열세이던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고 4승(1패)을 혼자 거둔 투수. 선동열 선수와 희대의 맞대결을 펼치며 투수전이 어떤 묘미가 있는지 알려준 투수. 불 같은 강속구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로 한 시절을 휘어잡은 투수 최동원은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입니다.

짧고 굵은 선수 생활로 한국 프로야구에 큰 족적을 남긴 최동원을 기리기 위해 최동원기념사업회는 올해부터 '최동원상'을 만들어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 일본의 사와무라상과 같은 영예와 권위를 가진 상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21일 사업회는 1회 수상자로 기아 양현종 선수를 뽑았습니다.

양현종의 올 시즌 기록 중에 눈에 띄는 수치가 보입니다. 평균자책(점) 4.25. 야구를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3점대도 아니고 어떻게 4점대 선수를 최고 투수상에…'라는 반응이 나올 겁니다. 올 시즌 국내 프로야구를 열심히 지켜보신 팬이라면 '그래 올해 타고투저가 심하긴 했지'라고도 하실 테지요. 물론 올 시즌 프로야구는 '타고투저'를 넘어 '타고투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투수들이 '병×'이 될 만큼 많이 얻어맞았다는 뜻입니다. 이 부문 1위인 삼성 벤델헐크의 평균자책점은 3.18입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평균자책 1위입니다. 과거 3점대 평균자책으로 1위를 차지한 경우는 2003년 현대의 쉐인 바워스(3.01)가 유일했습니다.

이쯤 되면 최동원상의 선정 기준이 궁금해집니다. 지난 8월 꾸려진 선정위원회는 △한국인 투수 △국제대회 성적 반영 △매년 (무조건) 1명 선정이라는 큰 원칙을 세웠습니다. 상금은 2000만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세부 기준도 정했습니다. 등판 횟수(30경기 이상), 이닝(180이닝 이상), 퀄리티스타트(15회 이상), 다승(15승 이상), 탈삼진(150개 이상)과 함께 평균자책(2.50 이하)을 고려해 선정위원회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고려'한다는 말은 이 모든 숫자들이 절대적인 커트라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양현종의 올 시즌 기록을 이 기준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올해 양현종은 29경기(모두 선발 출전), 171⅓이닝, 17퀄리티스타트, 16승, 165탈삼진, 평균자책 4.25를 기록했습니다. 6개 기준 중 3개(퀄리티스타트, 다승, 탈삼진)를 '통과'했습니다. 6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진 못했지만 '매년 한 명씩 수상한다'는 원칙에 따라 비교우위에 있는 양현종을 첫 수상자로 정했다는 게 최동원기념사업회 쪽의 설명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첫 수상자의 '스펙'치고는 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양현종도 그런 상황을 의식했는지 수상 소감으로 "올해는 (최동원) 선배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으로 상을 받게 됐다. 내년엔 부끄럽지 않은 활약으로 팬 앞에 서겠다"고 말했습니다. 하필 첫 수상자가 나오는 올해 프로야구가 '타고투저'가 극심했던 시즌이라는 이유가 우선은 클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팬들은 '굳이 수상 대상자를 한국인으로 제한했어야 했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만약 외국인 선수까지 대상자에 포함됐더라면 6년 만에 20승 고지에 오른 넥센의 밴 헤켄(31경기 187이닝 20승 178탈삼진 18퀄리티스타트 평균자책 3.51)이 최동원상 수상자로 가장 유력했을 겁니다. 넥센 전력이 강하긴 했지만, 여하튼 20승이라는 기록은 에이스 투수의 상징과 같은 기록이니까요. 강진수 최동원기념사업회 사무총장도 "(수상자를 한국인으로 제한한 데 대한) 비판이 많다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최동원 선수를 기리는 최동원상의 권위를 생각한다면, 굳이 외국인 투수를 제외해 더욱 아쉽습니다. 대상 자격은 '열려' 있되 기준이 엄격해야 상의 권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진정한 최고의 투수를 선정한다는 엄격함이 있어야 상의 권위가 높아지고, 받는 선수도 흔쾌히 훌륭한 선배의 이름을 단 상을 가슴에 안고 싶어 할 겁니다.

수상의 권위가 살지 않았는지 최동원상 수상 소식은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했고, 야구팬들은 선동열 감독 소식 혹은 김성근 전 감독 부임 뉴스, 준플레이오프 경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 최동원 투수를 생각해서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동원상은 일본 '사와무라상'을 모델로 삼고 있는데요. 1930년대 일본 프로야구에서 전설적인 공을 뿌렸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기 위해 1947년에 제정된 사와무라상 역시 최동원상과 비슷한 7개 선정 기준이 있지만 내· 외국인 제한을 두진 않습니다. 7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해도 상을 주는 반면 수상 자격에 걸맞은 선수가 없을 땐 시상하지 않기도 합니다. 1971년과 1980년, 1984년과 2000년 수상자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려 50년 전인 1964년 한신 타이거즈 소속의 진 바크 선수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진 바크의 기록은 시즌 29승(24완투), 353.1이닝 투구, 200탈삼진, 평균자책 1.89점이었습니다.

야구 잘하는 세계의 모든 국적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외국인 개념이 무의미한 메이저리그 '사이영상'은 자격도 기준도 없습니다. 팀당 두 명씩 선정된 야구전문기자단 투표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선수들은 골든글러브 등 기자 투표로 선정되는 시상식에서도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2009년 기아 투수 로페즈 이후 4년 동안 골든글러브를 받은 외국인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강진수 사무총장은 "국내 선수들을 양성한다는 취지에 따라 (국내 선수로 제한하자는 데) 7명 선정위원이 모두 동감했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선수들에게 동기를 준다는 의미겠지만, 내·외국인 제한을 두지 않고 수상자를 결정한다면 더욱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향후 선정 기준은 바뀔 수도 있다고 하네요. 이왕이면 그 변화가 최동원상의 권위와 수상자의 영예를 높이는 쪽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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