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추억] 박철순 "허리가 끊어져도 던지려 했다"

2014. 10. 23. 06: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사조' 박철순은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심한 허리 통증 속에서도 진통제를 맞고 출전을 감행하는 의지를 보여 OB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스포츠동아DB

3. 박철순이 말하는 1982년 OB 우승후기리그 최종전서 수비 중 허리부상김영덕 감독은 "선수생명 위험" 반대3·4·6차전 마운드 오르며 우승 공신

박철순(58).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를 논하자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원년인 1982년 OB(현 두산) 에이스로서 22연승 신화를 썼다. 정규시즌 24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의 성적을 올리며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그러나 그는 후기리그 최종전인 9월 2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했지만 8회 오대석의 희생번트 타구를 처리하다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확보한 OB는 이날 패배로 삼성에 후기리그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삼성은 정규시즌 15승으로 다승 공동 2위에 오른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 트리오가 있었다. OB로선 박철순이 허리 부상으로 한국시리즈에 나서지 못한다면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OB 구단은 일단 언론에 "박철순은 단순 요통"이라며 연막작전을 폈다. 그러나 상태는 심각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과 2차전에 박철순은 없었다. 박철순은 32년 전 상황에 대해 다시 묻자 "그때가 언제 적 얘기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도 이젠 환갑을 눈앞에 둘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세월을 박제해 놓은 듯 또렷했다.

"2차전까지 나는 병원에 있었다. 야구장에 나가려고 했지만 김영덕 감독님이 '올해 우승하지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된다. 아직 젊은데 무리하면 안 된다. 야구장에 얼씬도 하지 마라'고 말리셨다. 항간에는 감독님이 우승을 위해 허리가 아픈 나를 혹사시켰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내가 야구장에 나타나면 때려죽이겠다고 할 정도였다."

OB는 1차전(10월 5일 대전구장)에서 연장 15회까지 3-3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2차전(10월 6일 대구구장)에서 0-9로 완패했다. 박철순은 결국 10월 8일 3차전이 열리는 서울운동장으로 향했다.

"지더라도 한번 해보고 져야 후회가 안 될 것 같았다. 허리가 끊어져도 던지려 했다. 그런데 덕아웃에 들어갔더니 감독님이 '당장 나가라'며 노발대발하셨다. 감독님한테 '차라리 여기서 절 때려죽이십시오. 일단 마운드에 올라 던져보고 정 안 될 것 같으면 제가 사인을 내겠습니다'라고 사정했다. 감독님이 결국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3차전에서 OB가 3-1로 앞선 6회초 1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박철순이 마침내 한국시리즈 첫 등판에 나서 5-3 승리를 마무리했다. 4차전에서도 7-3으로 앞선 7회 무사 1·2루서 구원등판해 7-6까지 쫓겼지만 1점차로 승리했다. 그는 "구속이 평소보다 5∼10km는 떨어졌다. 다행히 승리를 지켜냈다"고 회상했다.

OB는 5차전에서 박철순 없이 5-4로 승리했다. 그리고 6차전에 마침내 박철순이 선발등판했다. 삼성 선발 이선희와 8회까지 3-3 팽팽한 투수전. 승부는 9회초에 갈라졌다. 2사만루서 4번타자 신경식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4-3 리드를 잡고, 김유동이 허탈해진 이선희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려내 8-3으로 달아났다. 9회말 박철순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완투승으로 원년 우승신화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지막 타자(배대웅) 타구는 내가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만큼 큰 바운드를 일으키며 머리 위로 넘어갔다. 요즘도 하이라이트를 보면 내가 점프를 하다 마운드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내가 날아서라도 그 공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격수 유지훤 선수가 그걸 잡아서 아웃시켰다. 그 순간 그냥 '아,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밖에 없더라."

'불사조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박철순은 "불사조 신화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치더니 "그나저나 매년 이맘 때 포스트시즌 경기를 하던 두산이 없으니까 속상하네. 두산팬들도 많이 허전할 것 같아"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Copyright © 스포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