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세이]② 아픔에서 자부심으로..유광점퍼의 치명적 매력

김은진 기자 2014. 10. 23.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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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문을 연 지난 19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경기를 위해 마산으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러 서울역에 도착했다. 아침 7시. 남들 모두 자고 있을 시각에 출장 떠나는 마음이 괴로워지려던 그때 번쩍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유광점퍼'였다.

푹 자도 될 일요일 아침에 야구보러 마산까지 가는 그들을 구경하고 있던 순간, 유광점퍼를 입은 다른 사람들이 또 눈에 띄었다. 10분 사이에 무려 6팀의 유광점퍼 그룹을 봤다.

빨간색과 검은색의 조합. 번쩍거리는 재질. 유광점퍼는 야구장을 벗어난 일상생활에서 입고 다니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동계복의 가격은 10만원을 넘어가니 저렴하지도 않다. 그러나 어느덧 이 유광점퍼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LG 팬이라고 명함을 내밀지도 못할 것 같은 세상이 됐다.

LG에서 유광점퍼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2002년 입단 이후 한 번도 LG를 떠나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온 박용택이 2011년 개막 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올해는 반드시 가을에 야구할테니 모두들 유광점퍼를 준비하시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이후 유광점퍼는 LG의 희망이자 목표가 됐다. 한국에서 구단 상품이 이렇게 고유명사가 돼 유명해진 것은 LG의 유광점퍼가 유일하다. 옷 하나에 LG 선수단과 팬들이 서로 겹겹이 쌓아온 기나긴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봉중근은 유광점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빨강과 검정의 조합이 강렬하기도 하지만 예전 이상훈 선배님 있을 때 가을야구하면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이라 팬들의 애착이 더욱 강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이 점퍼가 그저 일상 속의 옷일뿐이지만, 팬들에게는 우리가 가을야구를 해야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 분위기가 그대로 우리 선수들에게도 왔다. 나는 유광점퍼를 팬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전달해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광점퍼를 다른 옷들과 달리 아껴입는다. 잘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LG 선수들과 팬들에게 유광점퍼는 아픔이었다. 박용택의 발언으로 세상에 나온 유광점퍼의 다짐은 다른 구단 팬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LG 팬들은 '속는 셈 치고 믿어보겠다'며 유광점퍼를 사서 어루만졌지만 장농 속의 유광점퍼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2012년까지 두 번이나 더 4강 탈락의 아픔을 겪은 LG 선수들은 '괜히 비싼 돈 주고 사서 입지도 못했다'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유광점퍼를 히트시킨 주인공 박용택의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 유광점퍼는 LG 팬들의 자부심이다. '완판' 돼서 구하기도 어려웠다던 지난해 가을, 박용택은 LG 팬들에게 '우리만의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준 최고의 선수가 됐다.

LG가 암흑기로 가기 전 마지막 가을야구였던 2002년 가을의 멤버 이동현은 유광점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당연해진 것. 한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이제 더 이상은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다."

창단 후 1군리그에 발을 디딘 지 불과 2년차에 가을야구를 하고 있는 NC 구단의 한 관계자가 1차전을 마치고 한 이야기가 유광점퍼의 위력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

"우리도 첫 포스트시즌을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조직된 LG 팬들의 응원은 정말로 대단해 보였다."

올해 LG 팬들은 당연해진 유광점퍼를 자랑스럽게 걸쳐입고 가을야구가 열리는 마산구장의 3루와 외야 한 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제 LG가 홈으로 NC를 불러들이는 잠실구장에서 그들의 파티가 시작된다. 드레스 코드는 유광점퍼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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