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풍구에 빼앗긴 '보도'..폭 1.5m면 '설치 가능'

세종 입력 2014. 10. 23. 05:16 수정 2014. 10. 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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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환풍구']보행자 편의 무시한 허술한 규칙이 원인

[머니투데이 세종=김지산기자][[위험한 '환풍구']보행자 편의 무시한 허술한 규칙이 원인]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3시30분 덕수궁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이 열릴 때면 비좁은 인도에서 밀려난 구경꾼들은 스스럼없이 지하철 환풍구에 올라선다. 구경꾼 사이엔 외국인도 있다.

지하철 환풍구 시설은 규정상 1㎡당 500㎏까지 견딜 수 있도록 규정됐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든다고 생각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곳이다.

◇보행자 생각 안하는 '설치기준'

그렇다면 어쩌다 보행자 몫인 인도를 환풍구에 빼앗기게 됐을까. 보행자에 인색한 현행 규칙 때문이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도로의 구조·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상 인도(보도) 폭은 2m, 지형 여건상 불가피한 경우 1.5m 이상 확보해야 한다.

환풍구가 인도 면적의 상당 부분을 잠식해도 폭이 최소 1.5m 이상이면 상관없다는 말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이나 경복궁역 주변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환풍구는 인도와 다름없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도 건장한 성인 남자 2∼3명이 교차해 걷다보면 폭 1.5m짜리 인도는 빼곡히 들어찬다. 많은 보행자가 환풍구 위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시민들의 눈에는 다 같은 환풍구이지만 정부 내에선 판교사고 현장처럼 건물(지하주차장) 환풍구와 도심 내 인도에 걸친 환풍구(지하철)를 규제하고 관리하는 곳이 제각각이다. 국토부 내에서도 건물은 건축 관련 부서가 지하철은 철도 관련 부서가 각각 기준을 정한다.

그렇다보니 지붕으로 간주되는 건물 환풍구는 하중기준이 1㎡당 100㎏인 반면 지하철 환풍구는 차량이 지나갈 수 있다고 보고 500㎏까지 높였다. 인도를 침범한 환풍구는 도로 관련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도로분야 공무원들의 유권해석도 있어야 한다.

환풍구 안전에 관한 종합적 대책이 마련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함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선 사고원인을 살펴본 뒤 환풍기 형태별로 기준을 강화할 부분이 있으면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기능·경관 감안한 설치 절실

서울시의 경우 환풍구 접근을 막을 벽 등의 시설물 설치에 자체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서울9호선운영(주) 등 지하철 운영사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반면 환풍구 높이를 보행로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는 사업에는 시예산을 직접 투입했다.

전문가들은 안전과 함께 기능이나 경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환풍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교수는 "선진국에선 애초에 사람이 올라갈 수 없도록 구부러진 파이프 형태나 도시미관을 고려한 조형물 등으로 환풍구를 만들고 있다"며 "평면으로 만든 환풍구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철재 빔을 추가로 설치하거나 하중분산을 위해 큰 하나의 구멍이 아닌 여러 구멍으로 콘크리트 구획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도쿄 지하철 환풍구의 경우 통상 높이가 2~3m에 달하며 주변에 차단벽을 설치, 접근조차 못하는 곳도 있다"며 "환풍구를 조형물로 디자인해 도심 내 상징물로 만든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원철 연세대학교 교수는 "단순히 안전규정을 강화하기 위해 높이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조형물로서의 가치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환풍구 접근을 아예 차단하는 시설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안전과 미관 등을 고려해 유리벽을 설치, 접근 등을 차단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예산부족으로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행로를 제외한 다른 위치에 환풍구를 설치하려면 보상부터 시작해 추가비용이 많이 들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세종=김지산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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