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원 쳐다보다 피말린 세월.. 사법불신 쌓인다

조원일 입력 2014. 10. 23. 04:46 수정 2014. 10. 2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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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평균 처리기간 3~4개월인데 장기미제 사건 가파르게 증가

확정 판결 7,8년씩 기다리다 소송 당사자들 추방되거나 불이익

경기 부천 상동신도시 아파트 입주자들은 주변 고속도로의 심각한 소음 때문에 2004년 소송을 냈다. 2008년 항소심에서 법원은 한국도로공사와 한국토지공사에 3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라고 판결했고, 주민들은 희망에 찼다. 하지만 그 해 도공과 토공은 상고를 했고 7년째 대법원 판결은 나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한 외국인 노동자 노조 사건은 대법원에서 8년째 계류 중이다. 2007년 항소심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이 포함됐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며 임금ㆍ급료 등의 수입으로 생활한다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고용노동부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감감무소식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7,8년이나 늦어지며 소송 당사자들의 권리 침해가 심각하다. 대법원은 "판결이 늦어지는 이유는 사건마다 다르다"며 장기 미제 사건내역 등의 공개조차 꺼리고 있다.

기약 없는 확정판결, 고통은 소송 당사자들의 몫

3,317명의 아파트 주민을 대표해 소음 소송을 냈던 윤용호 상동신도시연합회장은 "수 천만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을 회비와 입주자 기금 등으로 해결했는데 시간이 길어지며 '이기지도 못할 싸움 왜 해서 공금을 날렸냐'는 비난이 쏟아졌고 주민들 사이에 불신이 가득 찼다"며 "지역 의원에게 등 떠밀린 도공과 토공이 2009년 방음벽을 설치했지만 상당수는 기다리다 지쳐 이사를 갔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 가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우리는 해도 안 된다는 생각만 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방음벽 설치 전 아파트 소음은 최대 75㏈. 일반적으로 60㏈가 넘으면 수면장애가, 70㏈이 넘으면 말초혈관 수축반응이, 80㏈이 넘으면 청력장애가 시작된다.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 사건을 담당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판결이 늦어지는 사이 1~4대 노조위원장, 사무국장 등 핵심인물들은 대부분 표적 단속으로 추방됐다"며 "노조가 있지만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해 단체교섭 한번 한 적 없다"고 말했다.

화물운송업체 A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운임비와 관련한 소송전을 벌여 2008년 대법원에 접수됐지만 역시 7년째 판결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A사 대표는 1심 패소 후 가압류 걱정에 시달리다 폐업신고를 냈다"며 "새로 회사를 설립했지만 소송을 벌인다는 소문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거래를 꺼려 영업에 타격을 입었고 선고를 기다리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YTN 해직 사태 또한 대법원 판결이 3년 동안 나지 않으면서 소송을 낸 기자들은 6년째 해직상태에 있다.

권리 구제 제약 받지만 이유 설명도 없어

지난해 대법원이 판결이나 결정을 내린 처리사건의 심리기간은 형사합의부 사건의 경우 3.5개월, 형사단독사건 3.4개월, 민사본안 4.6개월로 결코 길지 않다.

이런데도 장기미제 사건은 급증하는 추세다. 즉 밀리는 사건은 계속 밀린다는 뜻이다. 민사본안 사건 중 지난해 2년 이상 장기미제 사건은 325건으로 2012년 183건보다 대폭 늘었다. 2년 이상 대법원에서 심리를 받고 있는 형사공판 피고인도 2012년 209명에서 지난해 267명으로 늘었다. 2009년에는 111명이었다. 대법원 본안 접수사건 대비 처리사건 비율은 2012년 101.3%에서 지난해 97.3%로 떨어졌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의원에 따르면 이 중 최장기 미제 사건은 민사의 경우 2008년에 접수된 3건, 2009년에 접수된 18건이었으며 형사의 경우 2008년 3건, 2009년 2건, 2010년 7건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어떤 사건이 미제인지 공개를 막기 위해, 국회에도 사건번호 중 마지막 2,3자리를 공란 처리해서 넘겨준다.

법원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사건이 많은 가운데 (법리 해석이) 충돌하거나 결론을 짓기 어려운 사건들이 미제로 남는다"며 "최종 판결인 만큼 어설픈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 준비하느라 길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법조계 속담 중에 '권리의 지연은 권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며 "시기를 놓치면 구제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고 비판했다. 서 의원은 "사건이 장기미제가 될 경우 그 이유를 당사자와 국민에게 설명해 주도록 예규 개정 등을 통해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서울 서초구의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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