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덧칠하고.. 사찰 도난 문화재 48점 숨겨 온 박물관장

김지은 박소영 2014. 10. 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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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관음보살좌상 등 모두 회수

충북 유형문화재 제206호인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맨 오른쪽) 등 전국 20개 사찰에서 도난 당했다가 경찰 수사로 회수된 불교문화재 48점이 2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의 '다시 찾은 성보'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한 사립박물관장이 도난품인 줄 알면서도 구입해 몰래 보관하던 조선시대 불교문화재 48점이 경찰 수사로 회수됐다. 조계종이 이번에 되찾은 도난 문화재는 감정가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진귀한 작품들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88~2004년 전국 20개 사찰에서 도난 당한 불교문화재 48점을 사들여 보관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서울의 한 사립박물관장 권모(7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은 또 권씨에게 도난 문화재 매매를 알선한 A경매업체 대표 이모(53)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해외 도피한 문화재 매매업자 정모(66)씨를 쫓고 있다.

경찰과 조계종에 따르면 경북 청도 용천사에서 2000년에 도둑 맞은 영산회상도는 옥션감정가가 5억~6억원, 1993년 도난 당한 강원 삼척 영은사의 영산회상도는 옥션감정가 4억~5억원이었다. 보물급 문화재도 10여점에 달한다. 충북 제천 정방사에서 2004년 도난 당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작품이다. 심주완 조계종 총무원 문화재팀장은 "현존하는 삼장보살도 형식으로는 유일본인 경북 예천 보문사의 지장보살도를 비롯해 도난됐던 유물들은 값을 매기기 어려운 가치를 갖고 있다"며 "굳이 감정가를 추정하면 모두 합해 50억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권씨가 이들 문화재를 매입하는 데 들인 비용은 4억4,0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권씨는 이들 문화재를 타인 명의의 수장고에 숨겨둬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왔다. 그러나 문화재 31점을 담보로 사채를 쓰다가 이자를 내지 못하게 돼 일부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경찰 수사망에 걸렸다.

조사결과 권씨 등 피의자들은 도난품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불화 하단의 제작자와 봉안장소 등이 기록된 부분을 오려내거나 작품을 변형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전남 순천 선암사 53불도에 그려진 불상 모습을 하나씩 잘라 판매했고, 1695년 제작된 전북 전주 서고사 나한상의 노승 불상에 책을 칠해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의자 13명 중 6명이 장물 취득ㆍ알선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7년)가 완성돼 처벌을 받지 않아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피의자 4명은 이미 숨졌다. 또한 장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문화재를 취득한 경우 처벌을 면해주는 것도 문화재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찰은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도난여부 심사 등을 거쳐 문화재를 매매하도록 하고 도난품은 매매를 무효로 하는 문화재 매매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이날 문화재청, 대한불교 조계종 등과 '불교문화재 도난 예방 및 회수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도난 불교문화재 796점 가운데 회수된 작품은 181점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계종은 22, 23일 양일간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이번에 회수한 도난문화재 48점을 전시한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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