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트랙 날다

2014. 10. 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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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휠체어육상 남자 200m 정종대, 개인 최고기록으로 '동메달'

이를 악물고 휠체어를 미는 그 손으로 정종대(30)는 14년 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친구 아버지 차를 몰래 끌고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연히 면허는 없었다. 술도 적당히 취해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좀 후련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이 돼야 할지 알 수 없는 방황의 나날이었다. 날도 선선하고 기분도 좋았던 2000년 6월의 어느 날 밤 그는 친구들과 무면허 음주운전을 했다.

결국 큰 사고가 났다. 정종대는 처음에 '그냥 병원에서 몇달 놀다 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던 터였다. 하지만 얼마 뒤 자신이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정종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경추 손상으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고 두 손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체온조절도 잘 되지 않았다. 3년 동안 11번의 수술을 받았다. 몸무게가 36㎏까지 빠졌다. 수술과 치료, 재활을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가뜩이나 반항적인 성격은 상처받은 짐승처럼 공격적으로 변했다. 휠체어를 타고 길을 가다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다.

고교 때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하반신 마비뒤 더 공격적 성격"항상 네곁에 있겠다" 엄마 말에휠체어농구·럭비…운동의 길로2012년부터 육상서 새로운 도전"사고 전보다 지금 인생에 만족"

어느 날 정종대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 앞으로 평생 못 걸으면 어떡해?" 자신의 몸 상태를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언제나 항상 네 곁에 있겠다"고 말하며 아들의 손을 꼭 잡아줬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엄마가 언제나 자신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정종대는 운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입원한 병원이 있던 천안에 휠체어농구팀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 뒤 무작정 찾아갔다. 휠체어농구를 하기에는 정종대의 장애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팀에서는 반대했지만 정종대는 출전시켜주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운동을 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다. 1년 뒤 정종대는 휠체어럭비를 시작했다. 농구팀에서 쌓아왔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휠체어럭비 스타가 됐다. 2010년에는 한국 휠체어럭비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실업팀인 불도그스에 입단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해 북일본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정종대는 포기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나사렛대학교 특수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정종대는 "주변 사람들이 내게 '네가 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사고나 치고 다니지 않았겠냐'고 말한다. 나도 인정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는 모든 게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사고 나기 전의 인생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휠체어럭비에서 육상으로 종목을 변경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출전했다. 세상을 향한 분노로 가득했던 눈빛은 이제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미소를 담고 있다. 22일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휠체어육상 남자 200m T52에 출전한 정종대는 34초35의 기록으로 자신의 개인기록을 깨며 동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렸다.

인천/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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