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수들 전전긍긍".. 참담한 선수촌

입력 2014. 10. 22. 16:33 수정 2014. 10.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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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양궁선수단을 수송하는 45번 저상 시내버스가 기다리던 선수들을 태우고 있다

ⓒ 심재철

이틀째 내리던 비가 거의 그쳐가던 지난 21일 오후 6시 30분께. 양궁 종목이 끝난 인천 계양구 아시아드 양궁장에 45번 시내버스와 2번 시내버스가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아서 버스를 30여 분 이상 기다리던 양궁 선수들이 그제야 하나 둘씩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씩 기다려 버스 탑승... 열악한 대회 환경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21일 양궁 일정 중 가장 늦게 끝난 종목은 여자 개인 리커브 8강 경기였다. 대회 공식 누리집을 살펴보니 경기 시작 시간이 모두 오후 4시 45분으로 나와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를 끝내고도 1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야 선수촌(인천 남동구)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양궁 경기장 운영 본부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바로 옆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배트민턴 종목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선수 수송 버스에 배드민턴 선수단이 몰렸고, 추가 배차를 요청하느라 탑승 시간이 지연됐다고 했다.

좀 이상했다. 배드민턴 경기는 종목 특성상 종료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지만, 양궁 종목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끝나는 시간을 예측하는 것이 비교적 가능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날 배드민턴 경기의 마지막 시간을 누리집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오후 2시 40분에 경기가 배정돼 있었다. 그렇다면 원래 두 종목의 일정 차이를 사전에 고려해서 휠체어를 싣고 내릴 수 있는 저상 버스를 미리 적절히 배차했어야 하지 않을까?

일반인들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일반 수송 버스 두 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양궁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단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양궁 선수들과 경기 운영 임원들만이 찬바람을 맞아가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던 선수들은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 옆에서는 조직위 직원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결국 양궁 선수 중 한 명이 큰 소리를 냈다.

"저기 흡연 구역에 가서 피우시라고요. 좀!"

이번 인천장애인아시안경기대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일반 수송 버스는 대기하고 있었지만 휠체어 양궁 선수들은 탑승할 수 없었다.

ⓒ 심재철

열악한 화장실... "북한 선수들,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

기자는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에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 A씨로부터 경기 운영과 관련한 제보를 받았다. 장애인 선수들을 위한 시설이 너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 선수들의 화장실 문제였다. 양 손이 없는 선수를 고려해 선수촌 시설팀에 비데 설치를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었다. 수도 꼭지에 고무 호스라도 연결해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선수들이 사비로 구입한 주전자에 물을 담아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A씨는 전했다.

또 선수촌 지하에 마련돼 있는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는 일도 벅차다고 했다. 선수들이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려면 휠체어를 운전해야 하는데, 이동로가 지그재그로 돼있어서 먼 길을 힘겹게 돌아가야 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당연히 설치해 놓았어야 할 엘리베이터도 없다.

선수촌 복도에 설치된 음료용 냉장고와 제빙기도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설치된 장소와 전원 공급원이 멀다 보니 생긴 문제다. 통로 바닥에 이어 붙어 있는 전원 연결선을 휠체어 등의 이동 장치가 넘어가는 데 문제가 있다고 아예 전원 연결선을 빼 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제빙기의 얼음이 녹아 바닥에 물이 고이고, 선수들이 냉음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얼음 만드는 기계의 전원 연결선을 뺀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 현장

ⓒ 자원봉사자 A씨 제공

휠체어 이동로 경사가 약간 급하게 설치된 선수 서비스 센터 입구

ⓒ 자원봉사자 A씨 제공

선수 서비스 센터 입구에 설치된 휠체어 이동로 경사도 문제라고 지적됐다. 경사도가 급해서 실제 선수들이 휠체어를 끌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동료나 임원,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이 짧은 거리를 올라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 셈이다.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선수단 규모는 직전에 끝난 인천아시아경기대회보다 적기 때문에 선수촌 세 개의 단지 중 두 군데만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선수들의 엘리베이터 대기줄이 길어져 각종 편의 시설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자원봉사자 A씨는 "이게 과연 장애인을 위한 대회인지 모르겠다, 인천시가 이 경기를 마치 떠안다시피 유치한 것처럼 느껴졌다. 얼른 이 대회를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북한 선수들은 경기 운영진들에게 따로 말을 걸면 안 되는 분위기라 이 불편을 혼자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안타깝다"고 전했다.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 관계자는 "비장애인 대회인 인천 아시안게임 선수촌을 그대로 인계 받아 시설을 쓰다 보니 화장실도 그 상태로 그대로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인천아시안게임이 지난 4일 폐막한 후 15일부터 장애인 선수들의 선수촌 입촌이 바로 시작돼 관련 정비를 하는 데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대회를 치르기까지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완벽하게 장애인 선수들의 편의 시설을 불편 없이 다 갖추지 못한 면에 대해선 선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인천장애인아시안경기대회 목표 중 하나는 '장애인 복지 환경 개선을 선도하는 삶의 질 향상에 기여'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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