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팩트] 슈틸리케의 작은 혁명, 코너킥 지역방어

풋볼리스트 2014. 10. 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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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11%.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코너킥 득점의 비율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월드컵 기술보고서는 코너킥에 대해 "11%는 대단히 높은 수치다. 경기 결과를 바꿀만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코너킥에서 0득점 1실점으로 부진했고,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한국 대표팀의 세트피스, 특히 코너킥이 변화를 맞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도입한 지역방어가 변화의 시작이다. "페널티 지역 안에서는 사람을 봐야 한다", "마크맨을 놓치지 마라" 등 축구계의 상식이었던 대인방어를 버리고 새로운 수비법을 들여왔다. 왜 지역방어인가전통적으로 세트플레이 수비는 대인방어가 상식이다. "골을 넣는 건 선수지 지역이 아니다"라는 옛 격언대로 변수가 많고 복잡한 문전에서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막는 것이 당연시됐다. 맨투맨은 자기가 막을 선수를 따라다니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하다.반면 지역방어는 자기 지역에 온 공을 막는 방식이다. 대인방어의 경우 상대 선수와 공을 동시에 주시해야 하기 때문에 둘중 하나를 놓치기 쉽다. 반면 지역방어는 공만 보면 되므로 정확한 낙하지점을 찾아 헤딩으로 걷어낼 확률이 높다. 대인방어에 비해 복잡하고 숙지하는데 오래 걸리지만, 일단 조직력이 갖춰지면 이론상 대인방어보다 높은 확률로 수비할 수 있다. 스크린 플레이 등 대인방어를 무력화하기 위한 상대 공격 전술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다만 수비수가 제자리 점프를 하게 되므로 멀리서 달려오는 공격수의 '러닝 점프'보다 타점의 높이에서 밀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선수가 상대 공격수와 경합하며 자유로운 헤딩을 방해하는 '세미 존 디펜스'가 최근 추세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지역방어에 대인방어를 일부 섞은 팀이 대세였다.국내에 세트플레이 지역방어(이하 지역방어)의 개념이 퍼진 건 2008년이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P급 지도자 연수 강사로 한국을 찾은 리차드 베이트 국제축구연맹(FIFA) 강사가 코너킥 수비에서 맨투맨이 아닌 지역방어가 각광받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베이트 강사가 제시한 자료는 획기적이었다.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에 지역방어를 도입해 3년 이상 연구한 결과 세트플레이 실점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세트플레이 실점이 33%인 것에 비하면 절반 정도로 떨어진 수치다.당시 P급 자격증을 취득한 지도자들이 모인 제주유나이티드는 2012~2013년 동안 지역방어를 도입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이도영 제주 수석코치는 "실수도 잦고,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서 올해부터 다시 대인방어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도 경기 상대에 따라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용한다. 최 감독은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축구계에선 아직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K리그에서 지역방어로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 김호곤 전 울산현대 감독이다. 울산은 김호곤 감독 재임 기간(2009~2013) 동안 꾸준히 지역방어를 단련했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세트피스 수비에 가담시켜 제공권의 우위를 확보한 가운데, 문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울산이 승점 1점차로 준우승한 2013년, 37실점 중 코너킥으로 바로 내준 골은 5골에 불과했다.

아직 낯선 수비 방식, 불안한 선수들

지역방어의 도입은 반발에 부딪치기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역방어가 생소했던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가 그랬다. 라파 베니테스 감독의 리버풀(2004~2010)이 코너킥 수비에 지역방어를 도입하자 실점할 때마다 논란이 일어났다. "대인방어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판론이 우세했지만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리버풀 수비수 출신 앨런 핸슨은 "내가 유러피언컵에서 우승(1978, 1981, 1984)했을 당시 리버풀도 지역방어를 했다"며 옹호에 지역방어 옹호에 앞장섰다.슈틸리케 감독이 10월 A매치 2연전을 위해 모인 선수들에게 대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를 주문했을 때도 선수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일부 선수들은 "지역방어로는 상대가 멀리에서 날아 들어올 경우 막기 힘들다"는 의견을 슈틸리케 감독에게 전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역적으로 섰다가 공을 찾아가서 막으면 된다. 이게 더 안전하다"며 지역방어를 고집했다.한국이 10일 파라과이전과 14일 코스타리카전에서 쓴 코너킥 수비는 일종의 '세미 존 디펜스'였다. 골문 안에 1명이 서고 4~5명은 골에어리어 안에 자리 잡고 수비한다. 그 앞에서 2~3명이 멀리 흐르는 공을 클리어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다.이 수비법은 대체로 잘 먹혔다. 코스타리카전, 한국 수비수들은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현혹되지 않고 공만 주시하다 잘 걷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세트피스 공격과 수비에서 제공권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기성용도 지역방어에 큰 기여를 했다.한국은 코스타리카전 후반 32분 코너킥 상황에서 실점했다. 오스카 두아르테가 동료와 함께 문전으로 뛰어들 때 김영권 등 수비수들이 미처 접근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점프한 두아르테는 김승규 골키퍼의 손보다 높이 뛰어 헤딩골을 넣었다.이 장면이 지역방어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냐는 질문에 한 대표 선수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아직 맞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수비가 뒤로 좀 당겨서 헤딩하면 됐을 텐데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에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다." 하재훈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은 "코스타리카는 한 지점에 2명이 달려들며 제공권을 장악하는 부분 전술을 썼다. 골키퍼의 반응 속도가 아쉬웠다"고 분석했다. 과도기 겪을 수도코스타리카전 실점이 지역방어의 약점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아직 다듬어야 할 곳이 많다는 뜻으로는 볼 수 있다. 지역방어는 일반적으로 조련이 어렵다. 어려서부터 대인방어 위주로 훈련해 온 한국 선수들에겐 특히 낯설다. 제주가 지역방어를 시도할 때도 선수들이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았다.상당수 대표 수비수들은 소속팀에서 대인방어 위주로 코너킥 수비를 연습하다 대표팀에 소집됐을 때만 지역방어를 해야 한다. 클럽에 비해 훈련 시간이 짧은 대표팀이 지역방어를 도입하려면 앞으로도 진통을 겪을 위험이 있다. 대인방어보다 낫다는 근거가 확실하다면 리그 전체에 지역방어를 권장해 전체적인 수준 향상을 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 조수정 '인:팩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 표면이 아닌 이면에 대한 취재기록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건 혹은 사실에 대한 성실한 발걸음을 약속한다. <편집자주>풋볼리스트 주요 기사첼시, 마리보르전서 얻은 것과 잃은 것로마, 선수 기용과 전략 모두 '잘못된 선택'[맨유오피셜]맨유, 한국 SNS 진출...'팬들과 밀착''리그용' 맨시티, 4시즌 연속 UCL 실패?[인:팩트] 슈틸리케의 작은 혁명, 코너킥 지역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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