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국판 '추격자'..연쇄 살인범 '의문의 실토'

박병일 기자 2014. 10. 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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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엽기적이고도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9살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43살 남성이 이 여성 말고도 다른 실종 여성 시신 6구를 숨긴 곳을 자백한 겁니다. 이 남성이 자백한 곳을 경찰이 뒤진 결과 정말로 여성 시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남성이 아직 연쇄 살인범이라고 특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고 또 공범이 있는 것도 아닌 단독 범행인데도 그를 살인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잡혔고 다른 시신의 위치를 왜 실토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까지의 상황으로 이런 의문점을 남겨둔 채로 아침 리포트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2014년 10월 21일 모닝와이드

확인된 시신만 7구…여성만 골라 끔찍 연쇄살인

그런 의문은 온종일 기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 말입니다. 계속 속보를 챙겨보던 기자는 이 의문을 풀 기사와 실마리들을 찾았습니다. 살해 용의자의 체포와 또 다른 살인 사건에 대한 실토, 이 모든 과정은 우리 영화 '추격자' (2007년) 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의문의 사건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보겠습니다.

● 미국 판 '추격자'? …첫 단추는 이렇게 풀렸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금요일. 성 매매를 알선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한 남성이 성 매매 거래를 신청했습니다. 경찰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길거리 성 매매 대신 온라인 성 매매는 은밀하게 성행하고 있습니다. 길거리 성 매매와 달리 성 매수자가 경찰의 암행 단속에 걸릴 확률이 적기 때문일 겁니다. 여하튼 이 남성은 금요일 저녁, 해몬드 시에 있는 한 모텔에서 19살 하디라는 여성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디를 모텔에 보낸 성 매매 알선자는 밤 늦도록 하디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디에게 전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이상했습니다. 왠지 하디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투였습니다. 이 알선자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그 모텔로 갔습니다. 이 상황 역시 영화 '추격자'를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여하튼 모텔에 들어선 이 알선자는 모텔 욕조에 숨진 채 누워있는 하디를 발견하게 됐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경찰의 추적과 체포

신고를 받은 경찰은 처음 성 매매 사이트에 접속할 때 남겼던 전화 번호부터 추적했습니다. 전화 번호의 주인공은 43살 밴이라는 흑인 남성이었습니다. 경찰은 영장을 받아 그의 집을 수색했습니다. 동시에 모텔에 설치된 CCTV 녹화 테이프를 보면서 그 방에서 나오는 남성을 확인했습니다.

워낙 CCTV가 낡아 얼굴 윤곽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입고 있던 옷은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밴의 집에서 그 옷이 발견됐습니다. 게다가 밴이 입고 있던 셔츠에서 단추 하나가 없었는데 그 단추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밴을 찾아 체포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번호를 남긴 어수룩함, 그리고 모텔의 CCTV와 단추까지 단서로 남긴 어리석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전에 6건의 연쇄 살인을 하고서도 잡히지 않았던 것일까? 이 또한 의문입니다.

● 다른 사건은 왜 실토했을까?

경찰에 붙잡혀 온 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빨리 잡힐 줄은 몰랐다. 게리 시에서는 몇 십 년 동안 잡히지 않았는데 해먼드 시 경찰은 반나절 만에 나를 잡았다"라고 말이죠. 처음에는 해먼드 시 경찰 당국의 이 브리핑을 듣고 저는 '옆 동네 경찰을 깎아 내리면서 자기네 치적을 자랑하는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빠른 체포가 밴의 실토를 이끌어 낸 주요한 동기가 됐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경찰 브리핑 내용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경찰서에 붙잡혀 온 밴은 모텔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순순히 자백했습니다. 그리고는 게리 시에 시신이 있는 장소를 하나씩 실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영화 '추격자'를 보면, 성 매매 알선자(김윤석 분)에게 우연히 붙잡히게 된 살해 용의자 (하정우 분)는 경찰서에서 '그거 말고 또 있는데…'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마치 경찰이 자신의 과거 범죄까지 모두 밝혀달라는 투로 말입니다. 아마도 밴도 그런 심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밴은 또 경찰에서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messed up")고 주장했습니다. 영화 '추격자'의 살해 용의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죠.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밴이 지목한 장소에서 진짜로 시신들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게리 시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불에 탄 가옥에서 각각 3구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하디를 비롯해 여성 시신 7구 가운데 하디를 포함해 4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10대 1명, 20대 1명, 그리고 30대 2명입니다. 나머지 시신 3구는 오래돼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7구 시신 모두 실종 신고된 여성들이었는데 1990년대에 실종 신고됐던 여성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밴은 20대때부터 20여년에 걸쳐 여성들을 살해해 왔다는 얘기가 될 겁니다.

● 경찰은 왜 밴을 연쇄 살인 용의자로 확인하지 않을까?

밴이 느닷없이 다른 시신들의 위치를 실토한 이유는 뭘까? 시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또 일부 시신은 직접 동행까지 해가며 알려준 이유가 뭘까? 게다가, 경찰은 왜 밴을 오로지 하디의 살해 혐의만 적용하고 연쇄 살인 용의자로 특정할 만한 고리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경찰 브리핑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가 그렇게 (실토)하고 싶었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It was just something he wanted to do. That's all I can say)" 분명, 뭔가 있어 보이는데 경찰도 함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경찰의 브리핑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He wanted to cut a deal with prosecutors." 즉, 밴이 검사와 거래하고 싶어했다는 겁니다. 밴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검사와 거래하고 싶다고 했다면, 스스로 다른 사건에 대해 협조하면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러나, 오히려 처벌 수위를 높일 뿐입니다. 아니면 경찰이나 검찰의 회유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많은 연쇄 살인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연쇄 살인 행각을 누군가 끊어주길 바랐던 걸까요? 만일 그것 또한 아니라면 자신이 정신적으로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걸까요?

여기까지가 경찰의 브리핑 그리고 밴의 진술서를 토대로 정리한 상황입니다. 밴은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고 1993년에는 노스케롤라이나 주에서도 체포된 전력이 있습니다.

또 2008년에는 텍사스 주 트래비스 카운티에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형을 받아 복역한 뒤 지난해 7월 출감했습니다. 분명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성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 밴이 왜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 살인 사건까지도 실토했는지의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경찰은 밴이 이 7명의 살인 사건 이외에 여죄가 있는지 계속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것이고 밴의 자백과 관련된 의문도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살해 용의자가 풀려나 우여곡절 끝에 탈출한 성 매매 여성을 살해하는 영화 '추격자'의 결말과 달리 밴은 재판을 통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박병일 기자 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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