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규정 "KLPGA 신인왕부터 하고 미국에 갈 것"

김영성 기자 2014. 10. 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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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15일 생. 돼지띠. 만 19살을 갓 넘긴 백규정이 LPGA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버디 퍼팅을 성공시켰습니다.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입니다. 인천 스카이72골프장 오션코스 18번 홀 그린이 구름 관중의 함성으로 들썩였습니다. 수많은 갤러리의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백규정과 아주 비슷한 외모에 목소리까지 닮은 백규정의 어머니 김진숙(42세)씨 였습니다. 딸의 우승에 딸보다 더 벅찬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구면인 기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축하합니다. 좋으시겠어요~"

기자의 인삿말에 가벼운 목례와 함께 흥분한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암요, 좋지요. 와 이리 좋노? 하하. 마지막 퍼팅 들어갈 때 정말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요."

혹시 무슨 태몽을 꾸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대답이 돌아옵니다.

"새끼 돼지들이 우리 주유소로 떼를 지어 몰려왔어예. 돼지 숫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는데 그 돼지 꿈을 꾸고 첫 딸 규정이를 나은 깁니더."

백규정의 아버지는 당시 구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답니다.

"규정이 나을 때 산통이 엄청났어예. 몸무게가 4.35kg에 키가 67cm나 되는 '슈퍼 우량아'였으니 오죽 했겠능교? 태어날 때 지 엄마 고생시키더니 지금 이런 효녀 복덩이가 없네예. 하하하."

그 옆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두 남자는 백규정의 아버지와 남동생이었습니다.

아버지 백진우씨(50세)의 키는 182cm, 남동생 백민규(17세)군은 193cm, 120kg이 넘는 거구로, 수원 장안고 야구부의 투수로 활약중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도 학창 시절 구미 현일고의 씨름선수였다는데 백규정의 체격과 운동신경, 승부욕은 순전히 아버지 DNA를 타고 난 것이라고 합니다. 골프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1학때부터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서 늘 뒷번호였고 절대 남에게 지고는 못살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백규정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배짱이 두둑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달 경기도 안산의 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KLPGA선수권 최종라운드에서 7타 차의 열세를 뒤집고 대선배 홍란을 연장전으로 끌고가 연장 첫 홀 버디로 대역전쇼의 대미를 장식했던 배짱이 이번 LPGA대회에서도 통한겁니다.

LPGA투어 데뷔무대에서 박인비, 브리태니 린시컴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우승 경쟁을 벌였고 연장 첫 홀 가슴 떨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천금같은 버디를 잡아 우승을 확정짓는 모습에서 한국여자 골프의 밝은 미래를 봤습니다.

백규정은 우승 후 인터뷰도 달변으로 거침이 없었습니다.

"린시컴이 연장 첫 홀(파5,18번홀)에서 먼저 세번째 샷을 핀 1.5미터에 붙였을 때 정말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그 순간 저는 그런 긴잠감이 아주 짜릿하고 재미있는 거예요. '나는 홀에 바로 넣어보자'그런 기분으로 세번째 샷을 날렸어요. 핀까지 65미터. 58도 웨지로 쳤는데 핀 1미터에 붙더라구요. 린시컴은 1.5미터 버디 퍼팅을 놓쳤고 제 차례가 왔을 때 '무조건 가운데 보고 지르자' 생각했죠. 홀하고 공 밖에 안보였어요. 공이 홀에 떨어지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더라구요."

백규정은 허리 디스크 증세로 이번 대회 내내 물리치료를 하면서 허리에 복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받은 우승 상금의 일부로 칠순 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효도 여행을 시켜드리겠다고 합니다.

우승 후 스케쥴도 바쁘네요. 미국 진출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연세대학교 1학년 신분으로 돌아가 20일 기말고사를 보러 학교에 갔다가 여기저기 언론 인터뷰에 방송 출연으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1일부터는 이번주 목요일 남촌CC에서 개막하는 KLPGA투어 메이저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곧바로 연습 라운드에 돌입합니다. 백규정은 현재 동갑내기 친구인 고진영과 올시즌 KLPGA투어 신인상 포인트에서 나란히 1912점으로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효주가 1년 먼저 KLPGA투어에 진출한 뒤 동갑내기 절친인 김민선, 고진영과 '이제는 우리가 신인왕 경쟁하자'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 갈 때 가더라도 일단 인생에 딱 한번 뿐인 KLPGA 신인상은 타고 가야죠."

백규정은 이번 우승으로 LPGA 투어 올시즌 남은 대회와 내년 시즌 모든 경기의 출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당장 영어부터 배워야한다며 걱정이 앞서면서도 지난달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먼저 LPGA 투어 멤버가 된 김효주를 의식하면서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 참 그리고 내년에 효주랑 같이 미국 가면 이번엔 효주랑 LPGA 신인상 놓고 세게 붙겠네요?"

평소 친구끼리도 내기를 좋아한다는 백규정.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승부사였습니다.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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