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연필도 '창렬'스러운 시대라니.. '과대 포장'에 맞선 '창렬 시리즈'

김민석 기자 입력 2014. 10. 21. 06:01 수정 2014. 10. 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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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하다' '창렬스럽다' '창렬화되다'가 무슨 말이냐고요? 최근 인터넷과 SNS에서 떠도는 유행어입니다. 주로 먹을거리에 이 표현이 붙습니다. 겉포장과 달리 내용물의 양이 크게 적거나 질이 형편없을 때 쓰는 말입니다.

여기서 '창렬'은 그룹 DJ DOC 출신 20년차 가수 김창렬과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게 된 걸까요. 유래는 이렇습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2009년부터 김창렬을 모델로 내세운 '김창렬의 포장마차'라는 PB상품을 선보였습니다. 이 상표는 분식집 콘셉트의 즉석식품을 주로 취급했습니다. 포장지에 김창렬의 얼굴이 그려진 순대볶음, 어묵, 족발 등이 등장했죠. 그런데 네티즌들 사이에서 "비싼 가격에 비해 맛이 없고 양도 적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한 네티즌이 '신림동 순대볶음'의 내용물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결정타를 날렸죠. 뒤를 이어 '곱창구이' '족발이랑 편육이랑' '마늘 닭 강정' 등도 '낮은 퀄리티'를 자랑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네티즌들은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며 분노했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로 만든 것 같다"라거나 "그냥 줘도 먹기 힘든 수준"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창렬하다'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물론 여기엔 조롱의 의미가 담겼죠. 이렇게 '창렬 시리즈'는 '과대 포장'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창렬 시리즈가 다시 언급된 건 지난 8월 '질소과자'가 이슈로 떠오르면서부터입니다. 질소과자로 소개되면 어김없이 "창렬하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양이 줄거나 질이 나빠진 과자에 대해선 "창렬화되다"라는 표현이 사용됐고요. 피자헛의 한 메뉴는 크기가 작아 '창렬 피자'로 불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점점 의미가 확장되더니 최근엔 먹을거리를 넘어서 연필, 칫솔, 화장품 등 과대 포장된 모든 상품에 '창렬'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죠. 한 다스(12자루) 크기에 5자루만 얌체 포장된 연필 사진엔 "창렬이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구나"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심지어 비싼 통신 요금과 막상 입주해보니 생각보다 면적이 넓지 않은 아파트까지 창렬 시리즈의 대상이 됐습니다.

반대말도 등장했습니다. 바로 '혜자푸드'입니다. 이 역시 탤런트 김혜자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즉석식품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GS25에서 내놓은 PB상품 '김혜자도시락'은 다른 상품들에 비해 내용물이 알차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입니다. 그래서 "창렬인 줄 알았는데 혜자였다"라거나 "마더 혜레사를 본받아야"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김창렬은 자신의 이름이 이러한 뜻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효과가 있긴 해도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유행어로 자리 잡기 전에 업체 쪽에 항의했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일각에서는 네티즌들의 이 같은 언어유희가 '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합니다. 혜자푸드에서 볼 수 있듯 양 많고 질 좋은 상품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제로 창렬 시리즈로 언급된 상품은 매출이 줄어든 반면 김혜자도시락의 매출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진수성찬도시락' '6찬도시락' '불고기&김치제육도시락' 등은 출시 이후 2012년엔 51.6%, 지난해에는 63.6% 매출 상승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과자 업체를 비롯해 모든 국내 업체들에게 감히 바랍니다. 과대 포장의 유혹에 빠지기 보단 소비자의 신뢰를 쌓는 쪽을 선택하는 게 어떨까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 하는 날이 오길 원합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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