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22% "자살 생각해 본 경험 있다"
류모(76)씨는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살기 싫다'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짐이 되기 싫어서' 따로 혼자 살고 있다. 아들들이 주는 용돈으로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얼마 없다. 류씨는 20일 "우울증 상담을 받아보라는데 그것도 여유 있는 사람들 얘기"라며 "아파도 병원비 아까워 참고 자식들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연락도 잘 안 한다"고 말했다.
류씨처럼 우리나라 노인 5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 건강하지 않다는 주관적인 생각, 병원에 못 가는 상황 등이 노인에게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국립서울병원 이현경 연구관 등은 201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응한 노인 1449명의 자료를 심층 분석해 최근 '생태체계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 생각 유발변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65세 이상 노인 중 21.6%는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자살 생각은 우울증에 큰 영향을 받았다. 우울증세(2주 연속 우울감을 느낀 경우)를 보이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 생각을 8.9배나 많이 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선 노인의 15.1%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가고 싶지만 못 가는 상황도 악영향을 미쳤다. '최근 1년 동안 병원(치과 제외)에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9.9%는 '그렇다'고 답했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간 노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9배 자살 생각을 많이 했다. 병원에 못 간 노인의 39.2%는 '경제적 부담'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자녀와 함께 사는 게 노인의 자살 생각에 오히려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은 함께 사는 노인보다 자살 생각을 적게 했다(0.7배). 반면 배우자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은 함께 사는 노인보다 자살 생각을 1.7배 많이 했다. 이 연구관은 "가족 기능이 약화되면서 노인이 자녀보다 배우자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노인 우울에 대한 적절한 관리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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