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단속 앱 보고 피해 다녀 게릴라식 검문"

조혜경 입력 2014. 10. 21. 01:17 수정 2014. 10. 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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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서 교통경찰 24시 동행취재"의원 가족인데 .. 버티다 결국 걸려돈 찔러주면 바닥에 뿌리기로 대응"서울 1150명이 차량 수백만 대 담당"교통 아닌 고통경찰" 우스개도

"아이 XX! 아저씨, 내가 오늘 여자친구랑 엄청 싸웠거든요. 그래서 술 좀 마셨다고요. 나 대리기사 부를 돈 없으니까 여기 차 대놓고 잘래요."

 지난 17일 0시가 지났을 무렵 서울 남산 3호 터널 앞. 흰색 모닝 승용차를 운전하다 음주 단속에 걸린 30대 남성이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부었다. 음주 단속을 하던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안전계 우성일(60) 3팀장 등 경찰관 12명이 그와 20여 분간 씨름을 해야 했다. 결국 새벽 1시쯤 조서를 작성한 뒤 김보현 경사가 그를 순찰차에 태워 귀가시켰다. 우 팀장 등은 몰려드는 승용차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음주 단속을 이어갔다.

 제69주년 경찰의 날(21일)을 맞아 본지가 교통경찰의 24시간을 동행 취재했다. 우 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20년 '교통 베테랑'이다. 그는 '야근조'라 16일 오후 8시에 출근했다. 이어 자정쯤 팀원들을 이끌고 직접 음주 단속 현장에 나갔다. 밤새 단속을 한 뒤 다음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회현 사거리, 을지로 사거리 등 교통이 혼잡한 주요 교차로에 나가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했다. 사흘에 한 번씩 야근을 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은 어렵다. 우 팀장은 "외근과 야근이 많은 교통경찰의 특성상 생체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늘 피곤에 절어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 팀장은 "지난 20년간 교통량도 많아지고 나라도 발전했지만 안전에 대한 시민 의식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음주 운전 단속의 풍경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최근 음주 단속 지점을 미리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보편화되면서다.

 "단속 지점을 지나간 운전자들이 스마트폰 음주단속 앱을 통해 단속 사실을 알려주면 곧바로 지도에 해당 지역이 빨갛게 표시가 돼요. 이러니 음주 단속이 제대로 되겠어요. 요새는 게릴라식으로 재빠르게 음주 단속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고위층 인사가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2년 서울 회현동 인근에서 음주 단속에 걸린 현직 의원의 가족이 그랬다. "다짜고짜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국회의원 가족이야. 너 더러운 손으로 내 차 만질 생각 하지 마'라며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현행법에 걸리신 이상 법대로 해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인근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겠다고 우겼죠. 그분, 결국 음주로 걸리셨어요."

 최근 도로에 수입차들이 늘면서 거만하게 행동하는 운전자도 많아졌다고 한다.

 과거 교통경찰은 단속에 걸린 열 명 중 한 명이 봐달라며 돈을 찔러주는 통에 "용돈 벌러 음주 단속 나간다"는 말까지 들었다. 우 팀장은 "사회가 변했음에도 간혹 돈을 주려는 운전자가 있다"며 "그럴 땐 주먹을 쥐고 돈을 바닥에 뿌리는 식으로 대처한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 교통경찰의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교통경찰은 음주 단속 등 생활 질서에서부터 국빈 경호 등 국가적 행사까지 도맡고 있다. 교통경찰은 2005년부터 대규모 집회·시위에 방어 요원으로도 투입되기 시작했다. 우 팀장도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세종로에서 집단 구타를 당해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한 달 반가량 입원한 경험이 있다.

 업무 중 욕설을 듣거나 각종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6월 우 팀장에게도 "음주 단속 절차가 부당하다"며 한 40대 남성이 민사소송을 걸어 왔다. 우 팀장은 "송사에 휘말릴 때마다 시민들이 교통경찰을 감정 배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지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하루 평균 교통량은 361만 대. 서울 지역 교통경찰 1150명(외근 기준)이 교통 질서 유지를 떠맡고 있다. 경찰관 1인당 약 3200대 꼴이다. 업무 강도가 세지면서 최근 교통경찰을 지원하는 젊은 경찰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날 음주 단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찰차 안에서 우 팀장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일선 경찰서에 교통과 지원자가 매년 1~2명은 됐는데 이제는 한 명도 없을 때가 더 많아요. 요즘엔 '교통과'가 아닌 '고통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요."

글=조혜경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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