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만 찾는 기업들.. 취업률 0인 인문계 학과 전국 402곳

전혼잎 2014. 10.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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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홀대받는 인문계

삼성·LG·현대차 일부 계열사들 올 하반기 공채 인문계 아예 안 뽑아

인문계 선호하던 금융계도 "IT 중시" 이공계 우대 경향

인문계 학생들의 취업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울 능동로 건국대학교 도서관에서 취업시즌을 맞아 대학생들이 인적성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금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서울 한 사립대 경영학과 졸업생 박모(26)씨는 한 은행 입사지원 서류에 헌혈횟수를 기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최근 부랴부랴 헌혈을 하고 있다. 흔히 '취업을 위해선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피까지 뽑게 된 것. 박씨는 "상경계 전공자도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소한 부분에도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시장의 인문계 홀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나마 인문계 중에서는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경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20일 교육 각 대학 정보를 공시하는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국 10개 국ㆍ사립대학 중 인문계의 취업률이 이공계보다 높은 대학은 이공계 학부 졸업생들의 대학원 진학율이 높은 서울대와 고려대 단 두 곳이었다.

나머지 대학들은 이공계 취업률이 인문계보다 평균 10%포인트 이상 높았고, 지방대 인문계 졸업생은 10명 중 3명이 겨우 취업을 했다. 지방명문으로 손꼽히는 부산대의 경우도 인문계 취업률은 29.1%에 불과했다. 연세대를 빼면 상경계를 포함시킨 인문계 전체 취업률 역시 이공계 취업률에 미치지 못했다.

학과별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 지방대 사학과는 졸업생 36명 중 단 한명도 취업을 못했다. 이렇게 전국 대학 인문계 학과 중 취업률이 0인 곳은 무려 402곳이나 된다. 이공계 학과는 절반 수준인 211곳이었다.

인문계가 홀대받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탓이 크다. 발전동력이 여전히 중화학공업과 제조업 중심이고, 첨단산업도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강점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공계열에 소양을 지닌 전문 기술자를 선호한다.

올해 하반기 공채에서 총 1만여명을 채용하는 삼성과 LG, 현대자동차그룹의 일부 계열사들은 인문계를 아예 뽑지 않는다. 전공에 상관없이 채용해 인문계가 지원 가능한 신세계, 롯데, CJ의 채용규모는 2,000여명에 그친다. 올 상반기에 쏟아져 나온 대학 졸업생 수는 오히려 인문계가 15만여명으로 이공계(13만여명)보다 많지만 일자리는 훨씬 적은 것이다. 애초에 취업할 곳이 없으니 취업률이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인문계를 선호했던 금융계도 이공계 우대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상반기 채용에서 KB국민카드는 약 40%를 이공계 출신으로 채웠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슈 때문에 내부적으로 관련인력을 늘리자는 논의가 있었다"며 "금융계에서도 정보보안이나 정보통신(IT) 분야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 전했다.

인문학적 소양은 입사 후 교육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산업계 전반에 퍼지며 인문계 출신이 주로 자리를 잡던 영업과 기획, 경영지원 분야 등도 '이왕이면 이공계'로 돌아섰다. 팔아야 하는 상품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공계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영업과 마케팅에 이공계를 우대한다고 밝혔고 기아자동차도 영업과 경영지원에 기계나 전기ㆍ전자 우대를 명시했다. 취업포털 사람인 관계자는 "경영이 어려우면 일반 관리직부터 해고하는 것처럼, 어두운 경기 전망을 감안해 전문적 기능을 갖춘 사람 위주로 채용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문계 홀대는 '여성차별'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남학생이 다수인 이공계에 비해 인문계 출신은 여학생이 많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문과 여학생이 취업하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것 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정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직원 간 소통이나 효율성 등을 고려했을 때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까지는 남자를 뽑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인문계 취업난은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천정부지로 높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민모(27ㆍ여)씨 역시 "사회학과를 나와 기업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며 "공무원 취업학원에 가면 수강생들의 나이는 20대 초반부터 많게는 30대 후반까지 다양하지만 전공은 인문계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4년제 대학 졸업 후 전문대학에 재입학 하는 이른바 '전문대 유턴입학'도 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4년제 대학 졸업생 중 전문대로 재입학하고 등록한 학생은 3,638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간호학과나 유아교육과, 물리치료과, 치기공과 등 취업에 유리한 과를 선택했다. 유 의원 측은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문계 취업난 해결책으로는 '융합교육'이 오래 전부터 제시되고 있지만 정책적 뒷받침은 여전히 없다. 유성호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원장은 "인문계는 특정한 기능을 가르치지 않아 기업에서 당장은 쓸모가 없게 느껴질지라도 결국 사회를 비롯한 산업의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라며 "인문계와 이공계의 학문 간 융합을 통해 보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를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박나연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대4)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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