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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들숨날숨] 손흥민과 함께 영그는 '우리도 한명쯤은'

조회수 2014. 10. 20. 12: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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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쿠젠의 손흥민이 또 터졌다. 이번에는 거의 원맨쇼급 활약이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이가 대한민국 선수라는 것이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우리도 한명쯤은 이런 선수가 있었으면'하고 막연히 바랐던 꿈이 점점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믿기지 않지만, 이미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손흥민이 18일(한국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4-15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8라운드 슈투트가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경기 시작 후 10분 만에 2골을 터뜨리면서 리그 3, 4호골을 동시에 기록했다. 그리고 마수걸이 도움도 신고했다. 포인트 모두 매력적이었다. 공격수라면 꼭 갖춰야할, 하나라도 갖췄으면 싶은 미덕들이 아름답게 발휘됐다.

경기 4분 만에 나온 선제골은 '침착함'을 칭찬할 수 있는 장면이다. 박스 안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가면서 뒤에 있는 키슬링을 보고 살짝 내주던 패스부터 감각적이었다. 그냥 흘린 것이 아니다. 분명 터치가 있었다. 이후 장면은 집중력이 빛났다. 좁은 공간에서 오른발로 방향을 접으면서 골키퍼와 수비를 모두 제친 뒤 왼발로 마무리하던 동작은 공격수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얼음 같은 침착함'의 좋은 예였다. 두 번째 골은 '대범함' 혹은 '과감함'과 관련이 있다.

전반 9분 상대 수문장이 찬 킥이 마침 손흥민 앞으로 떨어졌다.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 대각선 밖이었는데, 손흥민은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두 번째 골이자 자신의 시즌 4호골을 만들어냈다. 지체 없었다. '골잡이는 찬스 앞에서 생각이 복잡하면 안된다'는 충고가 그대로 구현된 장면이었다.

불과 1분 뒤에 나왔던, 골대를 맞아 아쉽게 해트트릭을 놓쳤던 슈팅은 손흥민이라는 공격수의 '스피드'와 '센스'를 짐작케 했다. 동료의 스루패스를 받으러 쇄도하던 손흥민은 상대 수비가 무의식적으로 골키퍼에게 백패스하려는 것을 끊어낸 뒤 곧바로 칩샷을 시도했다. 아쉽게 크로스바를 맞기는 했으나 그 찰나에 수비수의 생각과 골키퍼의 위치를 파악하고 적절한 슈팅을 구사하던 모습은 '이성적 계산'이 아닌 '세포의 반응'에 가까웠다.

보면서 '자랑스럽다'는 감정을 느낀 축구 팬들이 적잖을 것이다. 한국 축구계 풍토에서는 어렵다던,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나오기가 쉽지 않다던 그 '유형'이 넓은 바다에서 펄쩍펄쩍 살아 움직이던 모습은 짜릿한 쾌감이 아닐 수 없다. 그 쾌감의 뿌리에는 '과연 한국 축구선수가 맞는가' 싶은 믿기지 않음이 깔려 있다.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수준이 한순간에 독일이나 브라질, 네덜란드나 아르헨티나에 근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보이지 않는 벽'뿐 아니라 '보이는 벽'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한 누군가'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그리 허황된 꿈이 아니다. 전혀 없던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리 먼 기억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유럽 빅 리그를 누볐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분명 '특별한 선수'였다. 두 선수 덕분에 한국의 축구 팬들은 언젠가부터 유럽 리그를 K리그보다 손쉽게 접하게 됐다. 이전까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박지성)나 토트넘, 도르트문트(이상 이영표)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상상키 힘들었다. 넘볼 수 없을 것 같던 유럽 본토에 한국 선수들이 깃발을 꽂은 것이다. 그렇게 수년 간 행복했다. 그런데 욕심은 참 끝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것을 바라게 됐다. 앞서 언급한 '유형'과 맞물린 바람이다.

박지성이나 이영표는 모두 '성실함'을 무기로 삼는 플레이어였다. 열심히 뛰고, 많이 뛰고, 꾸준하게 악착같이 뛰면서 자신보다는 팀을 빛나게 하는 '이타적인' 선수였다. 자랑스럽지만 이것이 또 한국 선수의 한계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았다. 다시 말해 후천적 노력 이상으로 선천적인 감각이 중요한 공격수는, 골잡이는 유럽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그 벽을 손흥민이라는 22살 청년이 멋지게 부숴주고 있다.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넣지 못했을 때의 괴로움을 생각하고, 골을 넣고 승리의 주인공이 된 뒤에 받는 조명보다는 골을 넣지 못했을 때 쏟아질 비난이 먼저 두려워 점점 작아졌던 한국 공격수들의 모습을 볼 때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손흥민의 '건강한 이기주의'는 긴 시간 체증을 뚫어내는 후련함까지 선사한다.

세계적인 공격수들의 천부적인 감각과 호쾌한 드리블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슈팅을 보면서 '우리도 한명쯤은 저런 공격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에 품었던 축구 팬들이 적잖았을 것이다. 그 꿈이 손흥민과 함께 영글고 있다. 불과 작년 만해도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호들갑'이라 경계했었는데, 이제는 같이 흥분될 만큼 또 달라졌다.

안 된다는 절망이 많았다. 수비수 한 명을 쉽게 따돌리지 못하는 스트라이커, 한 시즌에 10골도 넣지 못하는 골잡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축구인과 축구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꽤 괜찮은 공격수를 보유한 느낌이다. 손흥민은 자체로 열매이자 다시 뿌리가 되어야한다. 그래야 보고 따르는 백승호라는 열매와 이승우라는 열매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체육팀장/lastuncle@daum.net]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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