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주는 반면교사

문정인 2014. 10. 1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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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마비되었던 정국이 여야 합의로 간신히 파국을 면했지만 시민사회의 반응은 탐탁지 않아 보인다. 가족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되지 않은 세월호 특별법으로는 진상 규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정부와 입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 정서의 반영이 아닌가 한다. 왜 이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천안함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2010년 3월26일 우리 영해 안에서 46명의 젊은이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천안함 침몰 사건. 이명박 정부는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의 발표를 믿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수많은 국민은 아직도 이러한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조작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조사 과정과 절차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부적절한 조사 주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들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일차적인 조사 대상은 군이다. 그러나 피고의 처지에 있어야 할 군이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진 민주국가라면 천안함 사건의 조사 주체는 마땅히 입법부가 되었어야 한다. 입법부가 초당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국회는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여당의 비협조 때문에 별다른 성과 없이 단 두 번 열리고 두 달간의 활동을 끝냈다. 이러한 입법부의 직무유기와 조사 주체의 문제는 국민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부의 조사 속도도 문제시된다. 사건 발생 후 채 두 달도 안 된 5월20일 정부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발견됐다 하더라도 그렇게 서둘러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서두르다 보니 조사 결과에서 구멍이 발견되고 의혹이 가라앉지 않은 것이다. 미국 9·11 사태의 경우 의회가 초당적으로 조사하는 데만도 2년이 걸렸다. 2000년 8월12일 북해 바렌츠 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데도 1년2개월이 걸렸다. 성급한 발표가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

조사 결과 발표 이후의 정부 태도 또한 혼란을 더했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합동조사단 발표 뒤 "더 이상 의혹 제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증거가 나왔다"라고 자신했지만, 그 이후 국내외 과학자들이 숱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의혹에 국방부는 공개 토론을 피한 채 취사선택된 의혹에 대해서만 우호적인 매체들을 통해 일방적으로 해명하곤 했다. 게다가 합조단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던 과학자들과 이에 동조하던 일반 시민들을 배척하고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 한다면 그 구실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이런 국가를 어찌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천안함 침몰에 대해 함장에서 대통령까지 책임진 사람 있나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북한은 이를 부인하며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한 조사단을 보낼 터이니 공동조사를 하자고 제의해왔다. 정부는 이를 단칼에 거부했다. '범인이 어디 감히 공동조사 운운하느냐'는 이유에서다. 북한 소행이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왜 이들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따지고, 묻고,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범인도 변론의 권한이 있는 것 아닌가.

또한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영국·스웨덴 등이 참여한 객관적 조사를 세계 주요국들이 인정했다. 진실이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고 논란은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라고 강변했다. 국제적 여론 조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주객전도의 접근법 또한 국민의 의구심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라면 천안함 침몰은 경계 실패이자 초동대응의 난맥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당연히 관련자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문책하고 처벌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천안함 함장, 해군 관계자,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진 사람이 없고 처벌을 받은 자 또한 없다.

이쯤 되면 국민들이 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아직도 의구심을 품고 있는지 이해할 법하다. 세월호 유족들, 그리고 일부 시민이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이유도 천안함 사건이 주는 반면교사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세월호 비극의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 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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