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는 가라" 홍콩 도심 메운 분노의 물결

2014. 9. 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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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르포 홍콩 '우산 혁명' 시위현장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 요구

주말 강경진압에 분노 확산

"우르릉 쾅", "펑펑".

30일 저녁 7시20분께 5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빽빽이 들어찬 홍콩 중심가 센트럴의 공민광장에 갑자기 굉음이 울려퍼졌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가 시작됐구나, 생각하는 찰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 소리였다. 잠시 술렁이던 광장에서는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수만의 우산들이 일제히 펼쳐졌다. '우산 혁명'이었다. 경찰이 뿌리는 최루액을 젊은이들이 우산으로 막아서는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는 이번 시위의 상징적 풍경이 됐다. 5만여명이 일제히 "렁춘잉 행정장관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 완전 자유직선제를 요구하는 도심 점거 시위 사흘째인 이날 밤 홍콩 금융중심가 센트럴은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렁춘잉 행정장관의 집무실이 있는 홍콩 행정청과 금융기관들의 마천루로 둘러싸인 8차선 도로의 5㎞ 넘는 구간은 퇴근하고 나온 시민들과 항의의 표시로 검은 셔츠를 입은 중·고·대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공민광장과 통하는 애드미럴티 역은 밤늦게까지 꾸역꾸역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냈다. 중국 건국기념일인 10월1일 국경절 연휴를 하루 앞두고 경찰이 다시 최루탄 등을 쏘며 강경진압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모은 것 같았다. 밤까지 32도를 넘나드는 열대야와 습기 속에서도 시민과 학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장 한편에선 교수와 학생들이 즉석에서 '움직이는(流動) 민주학당'을 열기도 했다.

중학생인 프랜시스 쳉(15)과 클레멘트 청(16)은 티셔츠에 노란 리본을 달고 우산을 든 채 시위에 나왔다. 이들은 "우리는 많은 이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쳉은 "생각해 봐요. 만일 결혼을 하려는데, 부모가 성격 나쁜 사람, 지저분한 사람 등 미리 3명을 정해놓고 이 중에서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2017년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첫 직선제 선거 후보자를 친중국계 인사로 제한하겠다는 8월 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결정에 대한 비판이다. 청은 "애초 시위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틀 전 일요일에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내가 참가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다치고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위에 나왔다"고 말했다. 많은 시위대가 세월호 노란 리본과 똑같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센트럴 거리 곳곳에는 "평화, 이성, 공민 보통선거 쟁취" "학생들은 폭도가 아니다" "렁춘잉(현 홍콩 행정장관) 물러나라" "우리는 완전한 보통선거를 요구한다" "우리는 가짜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쓰인 펼침막들이 걸려 있다. 일부에선 "공산당은 파시스트", "중국인민은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 "공산당을 해체해야 박해가 끝난다"는 중국 공산당을 향한 격한 펼침막도 눈에 띄었다. 한 집회 참가자는 "국경절 연휴를 맞아 홍콩을 찾은 일부 중국인들도 '대륙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응원한다'고 격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가 안싸우면 후세가 고통"…서로 격려하며 "쟈여우!"

금융중심가 센트럴 수만명 빼곡"평화·이성·공민 보통선거 쟁취"거리 곳곳 플래카드 걸려시민들 음식·텐트 등 가져다 줘"내일까지 개혁안 받아들여라" 통첩

집회와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힘내라" 하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중국 당국의 비민주적 통치 정책에 대한 분노와 함께, 홍콩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 축제 같은 연대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89년 봄 민주와 정의를 요구하던 시위대로 가득했던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연상시킨다.

시위대에는 특히 지난 일요일 경찰의 최루탄 발사 등 강경 진압에 자극받아 참가한 이들도 많았다. 회사원이라는 렉시 쩡은 "애초 집회에 소극적이었지만 지난 일요일 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한 것을 보고 분노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시위대한테 최루액을 뿌리고 최루탄을 쏜 경찰이 여론을 악화시키자, 홍콩 당국은 29일 경찰을 철수시킨 상태다. 무장한 경찰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거리 곳곳에는 시위대가 경찰 진입에 대비하려고 세워놓은 바리케이드들이 줄지어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쌓아둔 물병과 과일, 비옷, 수건, 마스크, 텐트 등을 서로에게 건넨다. 시위대한테 '해산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당국에 맞서 시위대도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센트럴 공민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학생들에게 물과 휴지, 수건 등을 건네는 한 자원봉사자는 "이 물품들은 모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들이다. 시민들이 찾아와서 '뭐 더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묻고 필요한 것을 직접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는 크게 4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 금융가인 센트럴, 쇼핑가인 코즈웨이베이, 그리고 인구밀집지역인 주룽(카우룬)반도의 몽콕 등이다. 시위를 이끄는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와 홍콩학생연맹은 이날 중국과 홍콩 당국에 10월2일까지 행정장관 선거제도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점거 시위를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한테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시위를 더 확대하는 것, 둘째, 파업을 시작하는 것, 셋째, 정부 빌딩을 점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렁춘잉 현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렁춘잉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적인 행동이 중앙정부의 결정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도심 점거 시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홍콩 과기대에 다니는 왕아무개(21)는 "우리는 완전한 자유 보통선거를 원한다. 우리가 지금 싸우지 않으면 우리 후배 세대들이 고통을 물려받는다. 이런 일이 나중에 되풀이돼선 안 된다. 공권력이 두렵지만 함께라서 견뎌낸다. 힘내자"라고 말했다. 시위 참가 학생들은 검은 봉투를 들고 다니면서 밤샘 시위 때 발생한 쓰레기를 직접 치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번 시위대를 "가장 예의바른 시위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위대 속에선 불안감도 읽힌다. 한 홍콩 시민은 "중국 정부가 끄덕도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위 지도부는 국경절인 10월1일에도 흩어지지 말고 점거 시위를 계속 이어가자고 촉구하고 있다.

홍콩/글·사진 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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