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jury Time-슈틸리케 감독의 '과거', 한국 축구의 '미래'

조회수 2014. 9. 30. 16:27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베스트 일레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만났다. 새 선장의 이름은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60). 독일에서 나고 자라 독일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선수로 뛰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새로운 선장이 왔으니 당연히 그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의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을 더듬어 그의 축구를 살필 참이다. 아울러 새 선장과 함께 바뀔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해서도 가늠했다. 오는 10월 6일 공식 출범할 '슈틸리케 1기'에 대한 좋은 예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축구, 슈틸리케와 만나다

지난 9월 5일 오전 9시, 대한축구협회(KFA)가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흔한 보도 자료이겠거니 했던 문자에는 놀라운 소식이 들어 있었다. 차기 A대표팀 사령탑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문자 속 이름은 슈틸리케.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나 치로 페라라에 비하면 생소했고 낯선 이름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은 그렇게 갑작스레 알려졌다.

추석 연휴 시작 직전에 터진 A대표팀 사령탑 선임 소식에 축구계가 술렁거렸다. 더군다나 같은 날 저녁엔 한국-베네수엘라 평가전이 예정돼 있었다. 감독 없이 신태용 코치가 중심이 돼 평가전을 치르는 날 신임 감독이 결정됐으니 시점도 묘했다. 베네수엘라전이 열리기 직전 이용수 KFA 기술위원장이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감독 선임 배경과 추후 일정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A매치 때엔 기자들이 많은데 이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두 달 가까이 공석이던 새 A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는 방증이다. 이 기술위원장은 큰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밝은 얼굴로 취재진 앞에 앉았다. 기술위원장을 맡자마자 A대표팀 감독 선임을 해야 해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였다. 이 기술위원장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려 버린 듯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슈틸리케 감독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기술위원장이 새로운 A대표팀 수장을 소개하고 사흘이 지난 9월 8일,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2002 FIFA(국제축구연맹)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축구협회(DFB) 기술 분석관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후 12년 만의 방한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곧장 고양시로 향했다. 이날 저녁 고양에서는 그의 공식 기자 회견과 한국-우루과이 평가전이 열릴 예정이었다. 오후 5시 30분, 슈틸리케 감독이 기자 회견장에 등장했다. 독일인 특유의 정갈한 기운이 느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모든 경기에서 이기겠다고 약속할 순 없다. 그러나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기자 회견 후 우루과이전을 관전한 슈틸리케 감독은 9일 KFA와 코칭스태프 구성 문제를 논의하고, 10일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가 격돌했던 K리그 클래식 경기를 본 뒤 11일 출국했다. 3박 4일의 짧은 방한이었지만 믿음직스러운 행보였다. 한국 축구는 그렇게 슈틸리케 감독과 만났다.

성공했던 '선수 슈틸리케'

이제 본격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인물 탐구를 시작한다. 그가 갖고 있는 축구 철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선수 슈틸리케'부터 알아야 한다. 선수 시절 드러난 성향이 지도자가 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 철학이란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기조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선수 시절 그가 어떤 플레이어였는가를 살피면 '감독 슈틸리케'가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은 1972년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맡았던 포지션은 스위퍼다. 그가 선수 생활을 할 때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는 포 백이 아닌 스리 백을 주로 사용했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스리 백 중에서도 가장 뒤에서 활동하는 스위퍼 역을 맡았다. 스위퍼는 수비수들 중 기량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이 주로 맡는다. 두 명의 스토퍼 아래 위치해 최종 수비수 역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수비수들까지 리드해야 하기에 다방면에서 빼어나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도 기량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수비수였다. 게다가 영리했다. 선수 시절 동영상을 보면 상대 패스 줄기를 차단하는 데 능했고, 공격 시 시발점이 되는 역을 주로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몸으로 하는 기술 외 머리로 하는 지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그는 피지컬 플레이와 두뇌 플레이에 두루 능한 선수였다.

만능 수비수였던 만큼 이력도 화려하다.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리그 3연패(1975~1977년)를 이끈 주역이었고, 1977년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또 한 번 3연패를 달성했고, 1975년과 1985년에는 지금의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인 UEFA컵 정상도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세 차례나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도 수상했다. 그의 포지션이 도드라지기가 쉽지 않은 센터백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클럽 팀에서 남긴 화려한 족적은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찍혔다. 1975년부터 '전차 군단'의 일원이 돼 42차례의 A매치에 나서 3골을 넣었다. 당시 독일은 게르트 뮐러·프란츠 베켄바워 등이 포진한 역대 최강 팀 중 하나였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그 속에서도 특유의 영리함을 발휘하며 한 자리를 차지했다. 유로 1980 우승과 1982 FIFA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은 그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성공하지 못했던 '감독 슈틸리케'

이번에는 감독 슈틸리케에 대해 살핀다. 선수 시절이 화려하고 대단했으나 감독으로서는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물론 성공의 기준을 메이저 대회 참가나 빅 클럽 지도 경력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감독 역량을 평가하는 데 가장 보편적 잣대라는 점은 맞다. 그런 측면에서 판단햇을 때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자 시절은 선수 때보단 좋지 않았다.

1988년, 스위스 뇌샤텔 크사막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슈틸리케 감독은 1년 후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선수 시절 워낙 대단한 플레이를 보였기에 그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1991년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지도자 경력이 없어 생긴 시행착오라 여긴 이들이 많았다. 이후 선수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크사막스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1992년의 일이었는데 이때도 별다름을 보이지 못했다. 1996년에는 포르투갈로 넘어가 UD 알메리아를 맡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지도자로서 그나마 족적을 남긴 건 1998년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들어가면서다. 비록 에리히 리베크 감독과 의견 불일치로 사임했으나 독일 축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등 지도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제시한 방향성에 동감했던 DFB는 2000년 그에게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할 것을 권유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오늘보단 내일을 준비하는 데 적합하다고 느낀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게 된 슈틸리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를 중시하며 오늘날 독일 축구가 닿은 황금기의 초석을 닦았다. 특히 터키 태생이던 메수트 외질을 설득해 독일 국적을 갖게 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진취적이고 외고집이었던 그의 지도 방식은 또다시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2006년 독일을 떠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감독으로 옮겨야 했다. 이후엔 다시 '지도자 방랑' 생활이 시작됐다. 2008년 FC 시옹(스위스), 2010년 알 사일리아 SC, 2013년 알 아라비 SC(이상 카타르) 등을 어지럽게 옮겨 다니며 감독직을 수행했다. 잦은 이동에서 알 수 있듯 슈틸리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축구에 동감하는 팀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한 곳에 오래 몸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지도자로서 족적을 남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왜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었을까?

지금까지 선수 슈틸리케와 감독 슈틸리케에 대해 살폈다. 선수 슈틸리케는 성공적 삶을 살았지만 감독 슈틸리케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훌륭한 선수였던 그는 왜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 못했을까? 그가 밟은 길을 살피면 이유가 '환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래 지향적 기질을 갖고 있는 그에게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환경이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슈틸리케 감독이 유일하게 오랜 시간 재직했던 곳이 독일 연령별 대표팀이라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팀에서는 모두 실패했지만, 오늘보다 내일을 중시하는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오랜 기간 직위를 보장받았다. 그는 독일 U-19대표팀을 시작으로 U-20대표팀과 U-21대표팀을 잇달아 맡았는데, 눈앞의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발전상을 중히 여겼던 DFB의 계획과 맞아떨어졌기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만약 DFB가 10년이란 장기 계획 없이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일정 수준의 성적을 거두려 했다면, 슈틸리케 감독은 앞서 지휘봉을 잡았던 팀들에서처럼 오래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 성향이 현재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당장 결실을 맺는 데에는 약하지만 시간을 갖고 천천히 팀을 만들어 가는 데에는 꽤 능숙하다는 얘기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능한 만큼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재능도 빼어나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연령별 대표팀을 맡는 동안 많은 선수를 발굴해 성장시켰다. 오늘날 독일 축구의 황금 세대가 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마누엘 노이어·토니 크로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본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점이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전한 이흥실 경남 FC 수석 코치는 "독일의 가장 큰 장점은 탄탄한 기본기"라고 말했다. 볼을 잡아 놓는 기본 동작, 동료의 움직임에 맞출 줄 아는 패스의 방향, 볼이 없을 때 가장 적절한 포지셔닝 등 착실하게 다져진 기본기가 우승의 원동력이라는 얘기였다. 따라서 슈틸리케 감독은 화려하거나 이상이 높은 축구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실리 축구를 하는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팀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없는 팀에서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했던 것이다.

교차하는 기대와 걱정

선수로는 성공했으나 감독으로서는 그렇지 못했던 슈틸리케. 이제 우리는 축구 인생에서 절반의 성공만 거둔 그와 4년 동안 함께 걸어야 한다. 4년을 항해해야 할 슈틸리케호 출범을 보며 한 가지 기대와 한 가지 걱정이 교차한다. 한 가지 기대는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이다. 그리고 한 가지 걱정은 그에게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느냐다.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이 가장 기대되는 이유는 한국 축구의 체질이 개선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맛본 커다란 성공 후 긴 정체기를 맞았다.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한 번 더 도약했다고는 하지만, 도약이란 표현을 쓰기엔 민망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었다. 여전히 세계 축구와 격차는 벌어져 있으며, 세계적 선수 배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한국 축구가 도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높이 뛰기 위해서는 과거를 벗고 새로움을 입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한 감독이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빼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그가 독일 축구의 1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오랜 정체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 동력을 얻기엔 대단히 적합한 인물이란 얘기다. 슈틸리케 감독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넉넉한 시간을 줄 수 있는가는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 시절보다 훌륭하지 않은 지도자 삶을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부족'이었다.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 환경에서는 몫을 해냈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엔 목표에 닿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는 분명하다. 넉넉한 시간이다. 그간 A대표팀 성적에 따른 일희일비로 희생된 지도자가 많았다. 언제나 처음엔 "느긋하게 기다리자"라고 다짐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안 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빼앗고서 어떤 성과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바뀌길 바란다면 그에게 맡긴 4년은 건들지 말아야 한다. 이 4년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투자다. 그 투자의 끝이 성공이라고 장담할 순 없으나, 지금은 성공적 투자가 될 수 있도록 모두 합심해 노력할 때다. 그러면 실패하더라도 얻는 게 있을 것이다.

▲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 감독 프로필

- 국적: 독일- 출생: 1954년 11월 15일(60세)- 선수 시절 포지션: 스위퍼·중앙 수비수

- 주요 선수 경력·1972~1977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독일)리그 우승 3회(1975·1976·1977), UEFA컵 우승 1회(1975)·1977~1985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리그 우승 3회(1978·1979·1980), UEFA컵 우승 1회(1985)·1985~1988 뇌샤텔 크사막스 (스위스)리그 우승 2회(1987·88)·1975~1984 독일 국가대표팀(42경기·3득점)유로 1980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 주요 지도자 경력·1989~1991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1992~1994 뇌샤텔 크사막스(스위스) 감독·1994~1996 SV 발트호프 만하임(독일) 감독·1996 UD 알메리아(스페인) 감독·1998~2000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2000~2006 독일 유소년대표팀 감독·2006~2008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감독·2008 FC 시옹(스위스) 감독·2008~2010 알 아라비 SC(카타르) 감독·2010~2012 알 사일리아 SC(카타르) 감독·2013~2014 알 아라비 SC(카타르) 감독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 ⓒgettyImages멀티비츠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일레븐닷컴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