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일한 50만 원전노동자, 산재 인정은 단 13건"

2014. 9. 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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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서울 한복판에서 낯선 일본어가 울려 퍼졌다. 마이크를 잡은 일본 청년은 한 차례 숨을 고르곤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얻은 교훈은 인간이 만든 물건은 100% 안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전은 사고발생시 대처법, 폐기물 처리, 지역 주민의 거주와 보증 등 겹겹의 대책을 세워두지 않는다면, 아예 가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사고가 일어나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사려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

니이쯔마 히데아키(32)씨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근무한 경력의 노동자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경험한 뒤 "원전은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게 사라지게 한다"고 말했다.

ⓒ 정대희

"원전, 사고발생하면 모든 게 사라져"

일본 후쿠시마 제 1발전소에서 근무한 경력의 니이쯔마 히데아키(32)씨의 말이다. 그는 동경전력의 하청업체에 소속돼 핵발전소에서 냉각재 재순환 펌프의 분해점검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의 폐제어봉을 절단하는 일, 용접기계를 점검하는 업무 등 정기점검에 따른 관리업무를 맡았다.

23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에서 '포스트 후쿠시마, 한일 핵발전 노동자의 삶'을 주제로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이 열렸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주관하고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으로 열린 이날 워크숍은 한일 양측의 핵발전소 노동자들에 대한 정보교류와 대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워크샵에서 첫 번째로 발제에 나선 니이쯔마씨는 '3.11(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바뀐 삶'이란 주제로 핵발전소 노동자에서 방사능위험 경계지역의 해설사로 직업이 달라진 자신의 일상을 소개했다.

사고 당시 기억을 꺼내 놓으며 입을 연 그는 "3.11 지진(후쿠시마 폭발사고) 당시 구외 사무실에서 정기검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후 3시 40분경 일제히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 건물이 뒤틀리는 것 같은 지진이 발생했다"며 "회사에서 귀가해도 좋다는 소리를 듣고 거리로 나오니 다리와 도로가 함몰돼 있었으며,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집까지도 3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집에 도착했으나 그는 불안감에 차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이튿날 피난길에 올랐다. 일터였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선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게 다였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사고가 발생한 핵발전소는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는 "숙련된 근로자가 감소하고 고선량의 방사능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노동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사고발생 지역에 대해 안전선언을 했으나 폐로작업과 오염수 문제는 진척돼 보이지 않았고 방사능 유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런 효과도 없는 제염작업을 서둘러 하려고만 했다"며 "후에는 배상금 문제까지 불거져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 핵발전소 노동자의 삶이란?

일본의 핵발전소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세 명의 일본인. 왼쪽부터 히구치 켄지(보도사진작가), 나스비(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 니이쯔마 히데아키(전 후쿠시마 제1발전소 노동자)

ⓒ 정대희

"피폭노동자 150명 취재했는데 모두 병에 걸려 있어"

핵발전소 근로자들의 노동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됐다. 이어 발제에 나선 일본인 나스비씨는 보고서를 통해 이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1986년부터 일용직 노동자와 노숙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후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창립해 지난 2012년부터 원전사고 수습작업 노동자와 제염 노동자의 노동상담 및 노동쟁의에 관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나스비씨는 "일반적으로 원전에서 방사능을 포함한 냉각수가 흐르거나 오염된 기기를 다루는 현장 작업을 할 때 피폭을 입게 되는데, 하청 노동자의 96%가 이런 일을 맡고 있다"며 "굉장히 가혹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임금착취와 고용계약서 없는 노동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방사선 교육과 건강진단, 피폭선량 관리는 대충 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습과정에서 발생한 노동문제와 관련해서는 "제염과 잔해물 철거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노동자가 하청업체의 임금체불과 노동착취를 경험하고 오염수 누출이 심각한 곳에서 일하던 용접공은 '노예취급을 당했다'고 말할 정도로 위법적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위험수당을 하청업체가 '가로채기'하고 있다며 "도쿄전력이 1일 1만엔이던 위험수당을 2만엔으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이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은 하청노동자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전 방사능피폭으로 인한 산업재해에 대해 "일본에서 1966년에 상업원자로 가동이 시작되어 50만 명 가까운 노동자가 이미 원전에서 일해왔는데 원전 피폭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은 것 딱 13건 밖에 없다"며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상세히 소개했다.

핵발전소 하청노동자의 방사능 피폭 실태를 취재해 온 보도사진 작가가 직접 발제에 나서기도 했다. 핵발전소 피폭자와 관련한 저서와 사진집을 펴낸 히구치 켄지는 "지금까지 150명의 피폭 노동자를 취재해 왔는데, 이들 모두가 병에 걸려 있었다"며 "핵발전소의 하청노동자는 인권무시와 임금착취, 노동착취 등 이외에도 원전이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피폭소송재판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 돈을 주고 재판을 무마시키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류석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은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처한 피폭의 위험이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곧 위험사회를 의미한다"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런 일상적인 위험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할 뿐,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에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삶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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