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 못뗀 '공무원연금 개혁'

조의준 기자 2014.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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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금학회 주최로 22일 국회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 노조의 거센 반발로 인해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취소됐다. 공무원 노조원들에게 점거당한 토론회장은 욕설과 야유로 난장판이 됐다. 이에 따라 여권이 추진해 온 공무원연금 개혁이 상당 기간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는 이날 토론회를 기초로 당 차원의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었다. 현재 낸 돈의 약 2.4배를 받아가는 공무원연금의 지급 구조를 국민연금과 비슷한 수준(1.5배)으로 낮추는 내용이다. 그러나 토론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는 공무원 노조 관계자 등 300여명이 몰려와 "공적연금 개악 저지" "새누리당 해체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공무원 노조 관계자들이 토론회장 앞 복도까지 막자 이한구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위원장과 토론자들은 국회 방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뒷문으로 행사장에 들어갔다. 그러자 노조원들은 집단 야유를 보냈고, 일부는 토론자들에게 "얼굴 좀 보자, ××야"라고 욕설을 했다. 결국 토론회는 열리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공무원 노조는 "단결된 힘으로 토론회를 무산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공무원연금은 이미 응급환자 수준"이라며 "공무원 노조가 해야 할 일은 토론회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22일 공무원연금 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은 대부분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소속이다. 공투본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50여개 단체로 구성돼 지난 5월 출범했다.

당초 공투본 측에서는 "토론회에 참석하되 행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새누리당과 연금학회는 이 때문에 노조 관계자들의 토론회장 참석을 막지 않았다. 연금학회는 공무원의 연금 부담을 향후 10년간 현재보다 43% 올리고 수령액을 34% 깎는 개편안을 준비했다. 이럴 경우 2016년 이후 신규 임용되는 공무원의 연금은 국민연금과 거의 차이가 없어진다. 또 기존 공무원연금 수급자도 받는 돈이 약 3% 깎인다.

◇강경파 득세에 토론회 난장판

그러나 이날 토론회가 시작되자 강경파 노조원들의 야유와 욕설에 행사장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공투본 지도부 측이 "우리가 통일된 모습을 못 보여주면 (연금 개편 싸움에서) 우리가 진다"며 "토론자들 얘기나 들어보자"고 했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강경파 노조원들은 "네가 뭔데, 집어치워라!"며 오히려 지도부를 공격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이 "여러분의 입장을 이해한다. 오늘 토론회에서 나오는 안은 (아직) 새누리당 안이 아니다"고 했지만, 강경파 노조원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새누리당과 연금학회는 30분도 안 돼 "더 이상 행사 진행이 어렵다"며 토론회를 취소했다.

이후 공투본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실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을 주도해 온 새누리당이 (사설 연금보험을 팔고 있는) 재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연금 개악 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새누리 "10월까지 개편안 완성"

새누리당은 이날 "매년 3조원에 이르는 공무원연금 적자를 생각하면 개혁을 더 늦출 수는 없다"고 했다. 토론회 무산 이후 발제자와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공개로 만나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구 위원장은 "공무원들의 반발을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의견 수렴을 통해 10월 중 개혁안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 내부적으로도 "개편안이 나올 때까지 공무원들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도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무원들의 입장을 반영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공무원연금 비판도 커져

공투본은 오는 11월 1일 50여개 단체가 전부 모이는 결의 대회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합법 공무원 노조인 공노총은 오는 27일 서울역에서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고, 교총도 50만 교원 서명운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공투본은 "공무원 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더 많은 것은 퇴직금이 없는 공무원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고, 공무원 연금 부실은 외환 위기 당시 연금을 끌어쓴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공무원 연금을 깎지 말고 국민연금을 올려 공무원 수준에 맞추라"고 했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 내부에서 강온 목소리가 엇갈리고 노조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커지고 있어 투쟁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날 "작년 공무원연금 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30년간 공무원을 한 퇴직자가 낸 돈은 평균 1억4000만원인데, 받는 돈은 5억이 넘는다"며 "4억원가량은 국민의 부담"이라고 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공무원연금 평균 지급액이 180여만원인데, 한국 공무원은 210만원이 넘는다"며 "공무원 연금을 지속하려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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