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금메달이 아닌 행복한 질주를 응원한다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입력 2014. 9. 22. 06:05 수정 2014. 9. 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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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아쉽다는 말을 전하는 박태환(25)에게 미안하다. 힘든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박태환에게 더욱 미안하다. 오히려 미안하다는 뜻을 밝혀오는 그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미안하다.

박태환은 21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3연패 대업을 이루는데 실패했다.

아니, 위의 표현을 다시 정정하겠다. 박태환은 21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50m 구간까지 24초57로 가장 앞서나갔으나 뒷심에서 아쉬움을 노출하며 결국 하기노 고스케(1분45초23)와 쑨양(1분45초28)에게 뒤진 3위에 그쳤다.

이 같은 표현 역시 정정하고자 한다. 박태환은 한국이라는 안방, 그 중에서도 본인의 이름을 건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3연패를 이뤄내야 한다는 주변의 높은 기대치, 그에 따른 사명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전진했다. 하지만 올시즌 최고의 '인생 경기'를 선보인 하기노와 만만치 않은 저력을 드러낸 쑨양이 치열한 경합 끝에 그보다 좀 더 일찍 터치패드를 찍었다.

믹스드존에 도착한 박태환은 가장 먼저 "아쉬운 점이 많다"는 언급을 남겼고, "홈에서 경기가 열려 부담스러운 점이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이어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나 보다"면서 자조했고, "금메달을 딴 듯 질문해주셔서 죄송하다.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며 경기를 지켜본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할 법도 하다. 결선 무대에 모든 힘을 쥐어짜내면서 몸까지 지친 듯 그는 인터뷰 중간마다 "왜 이렇게 숨이 찬지 모르겠다"며 호흡에 어려움까지 호소했다. 그런 몸상태, 마음상태에서도 미소만큼은 절대 잃지 않았다. 물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을 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박태환의 금메달 사냥을 '이뤄주길 바라는 소망'이 아닌 기필코 '이뤄야만 하는 사명'과도 같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소치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진짜 감동'이 메달 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이제 겨우 반 년 지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 수많은 언론들은 박태환의 3연패 여부에 여전히 가장 높은 관심을 기울였다. 팬들 또한 박태환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그가 받고 있을 금메달에 대한 남모를 압박감이 얼마나 클 지에 대해서는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미 양창훈(양궁), 서정균(승마)과 함께 한국인으로는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6개)을 목에 걸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준 선수가 바로 박태환이다. 이러한 전설적인 스포츠 영웅에게 "아직 끝이 아니다. 400m에서 3연패에 재도전"과 같은 문구로 다시 한 번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박태환을 비롯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수많은 선수들에게 '금메달의 실패'가 마치 '목매달 일'처럼 미안한 일로 받아들여지게 만든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잘못일 수 있다.

박태환이 동메달을 손에 거머쥔 날 남자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이광종 감독은 라오스전에서 두 골밖에 넣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구 대표팀 사령탑 류중일 감독도 "물론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금메달을 반드시 따도록 노력하겠지만 아시아인의 '축제'라는 관점에서도 아시안게임을 지켜봐주시면 더욱 감사하겠다"며 내심 금메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을 은연중에 드러낸 적이 있다.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에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는 금메달을 목에 건 김청용을 두고 "새로운 영웅 탄생을 축하해달라"는 부탁을 남긴 바 있다. 후배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지만 영원한 영웅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말처럼 느껴져 다소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새 영웅의 탄생은 분명 축하해야만 할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영웅이 정점에서 내려오는 그 순간 우리는 눈높이를 충족시켜줄 새로운 영웅만을 찾아나서기보다 기존의 영웅이 이뤄낸 위대함을 떠올리고 이들이 팬들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박태환의 경우 그의 모든 것을 대체할 새로운 수영 영웅이 나타날지 조차 의문스럽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박태환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수많은 행복을 안겨다준 진정한 영웅이다. 이제는 반대로 그가 부담감 대신 행복만을 짊어지고 물살을 가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도와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yuksamo@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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