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뉴스 페퍼민트 2014. 9. 20. 12: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떠올려보자. 페덱스 직원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화물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위를 날아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추락한다. 홀로 무인도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그는 배구공에 직접 그려넣은 가상의 인물 '윌슨'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견뎌낸다. 윌슨이란 이름은 배구공 제조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척 놀랜드와 달리 현대인의 삶은 얼핏 수많은 사람과의 조우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때로 우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낯선 사람의 바로 옆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옆자리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진화한 동물 중 하나인 인간은 이 순간 가장 고독을 좋아하는 비사회적인 동물로 행동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미국 시카고 대학의 니컬러스 에플리와 줄리아나 슈레더는 이 문제를 연구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런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았다.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고독을 찾는 실수(Mistakenly Seeking Solitude)'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실험심리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General)>에 발표되었다.

ⓒ<캐스트 어웨이> 화면 갈무리

<캐스트 어웨이>(위)의 척 놀랜드와 달리 현대인은 수많은 사람과 조우한다.

먼저 이들은 일리노이 홈우드의 메트라 역 등지에서 홀로 기차를 타는 사람들을 섭외했다. 기차 탑승자 118명이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현장에서 밝혔다. 참가자들은 △대화 △고독 △평상시와 같은 행동 중 한 가지 임무를 부여받았다. 각각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라. 이야기를 길게 할수록 좋다. 오늘 아침 당신의 목표는 당신의 이웃을 아는 것이다." "오늘은 당신만의 시간을 가져보아라. 좌석에 홀로 앉아 생각을 즐겨라. 오늘 아침 당신의 목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이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라. 오늘 아침 당신의 목표는 그저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기차 탑승자 118명 중 97명이 지시 사항을 따른 뒤 자신의 경험을 연구진에게 우편으로 보내왔다. 여기까지가 실험 1a이다(오른쪽 <표> 참조).

연구진은 역에서 찾은 또 다른 참가자 105명에게도 위의 세 가지 임무를 상상하고 그 경험이 어떨지를 연구진에게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들 중 66명이 그 결과를 보내왔다. 이것이 실험 1b이다.

한편 이들은 좀 더 일반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버스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은 실험실 자원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 중 버스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이들은 87명에게 기차에서와 같은 세 가지 임무를 부여했고(실험 2a), 이 가운데 75명이 실험실로 찾아와 그 경험을 보고했다. 그리고 61명에게는 역시 버스에서 이 같은 임무를 받은 걸로 상상하기를 주문하고 그 결과를 받았다(실험 2b).

실험 결과, 놀라운 점은 실제 사람들이 임무대로 행동한 후 보고한 경험의 내용(실험 1a, 실험 2a)이 사람들의 상상(실험 1b, 실험 2b)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험 1a와 실험 2a 참가자들은 '대화'를 가장 즐거운 경험으로, 그리고 '고독'을 가장 즐겁지 않은 경험으로 꼽았다. 반면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사람들(실험 1b, 실험 2b)은 '고독'을 가장 즐거울 것으로, 그리고 낯선 이와의 '대화'를 가장 즐겁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오른쪽 <표> 참조).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일까

이 결과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즉,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어떤 오해에 의해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오해를 하게 됐을까. 분명히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라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배우지 못했을까.

연구진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의 가설을 생각했다. 그것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는 어떤 장벽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즐거움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 가장 명백한 장벽은 '낯선 사람과는 말을 하지 말 것'이라는 사회적 관습일 것이다. 혹은 사람들이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예의 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대화를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막상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실험 1, 실험 2를 통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이는 사람들이 타인의 선호를 잘못 예측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효용이 낮아지는 '다원적 무지'의 좋은 예이다. 즉, 타인의 침묵을 무관심으로 해석함으로써 누구도 대화를 먼저 시작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그 순간에 두 사람의 삶의 질을 낮출 뿐 아니라, 다른 이와의 대화가 즐겁다는 사실을 배울 기회마저 차단해버린다.

연구진은 이어진 실험을 통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싫어할 것'이라는 예측이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말을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들은 실제 기차역에서 이뤄진 앞서의 실험을 좀 더 통제된 환경에서 다시 수행했다. 사실 실험 1, 실험 2는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라는 것을 밝혔을 뿐, 낯선 사람으로부터 대화를 요청'당하는' 것이 즐거운 경험일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또 실험 1, 실험 2에서 참가자들은 실험자의 지시를 따랐다. 이 점이 참가자들로 하여금 어떤 장벽을 쉽게 무시하게 만들어 그들의 즐거움을 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연구진은 가상의 치과 대기실을 만들고 참가자들에게 앞서의 실험들과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대화를 요청한 쪽이나 요청당한 쪽 모두 '낯선 이와의 대화가 즐거웠다'고 응답했다.

물론 한국과는 다른 사회 문화적 환경을 가진 나라의 실험 결과를 우리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 지하철과 버스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에는 너무 번잡하고 불편한 공간일 수 있다. 또 실제로 상대방이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거나 대화를 하기에는 피곤한 상태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 말 붙이는 것을 이상한 행동으로 생각하지나 않을지 두려워 서로 삶의 질을 높여줄 기회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스쳐보내는 그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면 타인에 대한 공감을 키우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혹시 아는가. 오늘 당신이 말을 건 그 사람이 당신과의 대화에서 삶의 기쁨을 얻을지, 그리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전달할지.

뉴스 페퍼민트 (newspeppermint.com) / webmaste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