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고개 든 김부선

2014. 9. 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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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시작은 1983년이었다. 대입 재수를 하겠다며 상경했다가 패션모델로 활동하게 된 스물한살의 제주도 아가씨는, “모델 역할이니 연기를 못해도 된다”는 감독의 말에 속아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가 된다. 여기까지도 이미 스펙터클한데, 같은 해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평범했던 처녀는 졸지에 대중의 관심사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고개를 푹 숙이거나 옷깃을 잔뜩 세워 얼굴을 감추는 여느 연예인들과는 달리, 그는 경찰서 앞에서 자신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들이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이상하리만치 고개를 든 여배우 김부선의 행보는 그렇게 시작됐다.

<대마를 위한 변명>의 저자 유현은 2004년 김부선을 옹호하는 글에서 그를 ‘불굴의 대마적 여배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참 얄궂게도, 벌금형으로 풀려난 이 ‘대마적 배우’의 다음 작품은 ‘말을 사랑하는(愛馬) 여인’이라는 뜻의 제목으론 심의를 통과할 수 없자 한 자만 살짝 비틀어 ‘대마를 사랑하는(愛麻) 여인’으로 심의를 통과한 <애마부인> 3편(1985)이었다. 김부선은 안소영과 오수비의 뒤를 이으며 뭇 남성들의 꿈의 여인인 ‘애마’가 되었고, 몇 편의 성인멜로물에 더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렸다. 허나 그도 오래가진 않았다. 1986년 여름, 청와대 파티에 초대받은 김부선은 “내가 기생이냐”며 초대를 거절했고, 얼마 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 본인은 “재벌가의 파티에는 몇 차례 갔는데 청와대를 안 갔다는 이유로 권력자들에게 밉보인 탓에 보복성 밀고를 당한 것이라 생각한다”지만, 세상은 이른바 ‘벗는’ 여배우의 상습적인 마약 복용을 향해 조소를 날렸다. 심지어 신문조차 ‘육체를 앞세운 여배우’, ‘무절제한 사생활’ 운운하며 비아냥에 일조했다.

“소위 벗기는 영화 붐에 편승, 84년 데뷔한 김부선양은 그동안의 출연작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여자가 남자를 쏘았다>, <애마부인3>, <토요일은 밤이 없다>를 보더라도 정통 연기자라기보다 육체를 앞세운 여배우. (중략) 결국 ‘김양은 무절제한 사생활과 함께 뜬구름을 쫓는 쾌락에 몸을 내던진 결과’라고 연예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1986년 10월23일, <경향신문> 김양삼 기자. ‘연예계 또 독버섯 쇼크 마약 왜 상습 복용하나’ 중)

본인은 “어처구니없이 외로웠다. 섹시한 건 연기일 뿐인데 그걸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으나, 세상은 작품의 이미지로만 그를 판단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말 타는 것 외에는 뭐 하나 연기다운 연기를 하지 못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성인영화만 찍던 그였고, 밤에는 <애마부인> 심야 상영을 즐기다가도 낮에는 도덕과 윤리를 이야기하며 밤에 봤던 여배우들을 멸시하던 시대였으니까. ‘마약 하고 집단 혼음이라도 한 것 아니냐’는 비웃음을 들으며, 김부선은 1986년 처음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꿀 이들을 만난다. 건대 사태로 구속된 운동권 학생들과 같은 교도소를 쓰게 된 것이다.

학생들 앞에서 김부선은 부끄러웠다고 한다. 자신은 재벌가의 파티에서 필로폰을 투약하는 동안, 누군가는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에겐 생경했던 것이다. 첫 경찰 출두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청와대의 부름에 기분이 나쁘다며 ‘등청’을 거부했다는 일화만 봐도 김부선은 원래도 쉽게 수그리는 이는 아니었다. 여기에 사회를 비판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시야가 더해지면서, 자신이 옳다 믿는 사안에 있어선 좀처럼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오늘날의 김부선이 완성됐다. 과장 같은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단칸방에 살던 시절 수배 중이던 학생을 3개월간 숨겨주었다거나, 여성주의 운동권 영화에 무료로 출연했던 일화는 훗날 보여지는 ‘액티비스트’ 김부선의 면모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이른바 ‘벗는 여배우’의
마약 복용에 조소를 날렸지만
그는 옳다 믿는 일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대마초 비범죄화’ 투쟁에 나서고
‘최진실법’ 등에도 목소리를 냈다
‘난방비 비리’로 대중이 보낸 지지는
치열하게 싸워온 사람에게 보내는
조금 늦은 감사인사일지 모른다

연기 서적을 읽고 독학해가며 견딘 오랜 단역 생활 끝에, 김부선은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로 다시 대중의 시야로 들어왔다. 그의 팬을 자처한 유하 감독이, 주인공 현수(권상우)의 첫 경험을 앗아가다시피 하는 떡볶이집 여주인 역할에 김부선을 캐스팅한 것이다. 감독은 김부선이 몸풀기 차원으로 임한 첫 테이크에 오케이 사인을 냈고, 배우 본인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그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은 전율했다. 인터뷰가 쇄도했고, 점차 과거의 성인영화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역할들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위선덩어리 상류층 귀부인을 연기한 문화방송(MBC) <불새>(2004), 전도연의 우체국 동료 직원을 연기한 <인어공주>(2004), 정우성의 철없는 엄마 역할로 출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까지, 배우로의 재기는 순탄해 보였다. 같은 해 다시 대마초 투약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랜 무명 끝에 간신히 은막으로 복귀하려다 이런 상황에 처한 여배우라면 보통 어떤 선택을 내릴까? 어떻게든 기회를 다시 잡아보기 위해 납작 엎드리지 않을까? 놀랍게도 김부선은 선처를 요구하는 대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제기하는 쪽을 택한다. 이미 세계보건기구와 수많은 학자들이 ‘대마보다 담배나 술이 더 위험하다’고 증언해 왔지만, 아무도 김부선처럼 소리 높여 대마초 비범죄화를 주장하진 않았던 시절이었다. ‘죄를 지었으니 네 죄를 알라’는 세상에 대고 ‘이건 죄가 아니다’라고 맞받아치는 초유의 여배우. 그의 투쟁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한국마약범죄학회 학술이사 문성호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대마관리법이 제정된 1976년 이후 근 30년 만에 처음으로 공론화의 포문을 연 것이 김부선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수많은 대중문화 인사들의 지지 속에 시작한 대마초 비범죄화 투쟁은 결국 위헌법률심판 기각과 헌법소원 기각으로 끝나고 만다. 이쯤 되면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김부선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와 한-미 자유무역 협정 체결 반대 투쟁에 동참했고, 혼자 딸을 키우면서도 호적엔 양모로 올라가 있어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되새기며 ‘최진실법’ 제정 촉구 투쟁에 나섰다. 제주 4·3 사건 때 첫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는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며 4·3 위원회 폐지 반대에 앞장섰으며, 고 장자연씨 사건으로 연예계 성상납이 이슈가 되었을 때는 자신이 겪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배우를 선뜻 쓰기는 어려웠던 걸까. 2007년 <황진이>를 마지막으로 그의 장편 상업영화 출연작은 7년 가까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늘 입버릇처럼 자신은 투사가 아니라 연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김부선은, 그럼에도 자신이 보기에 정의롭지 못하다 싶은 사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싶은 사안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왜 그렇게 싸움을 멈추지 않느냐며 자신을 비난하는 세상에는 “약자의 편에 서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을 내 일처럼 도왔을 뿐인데, 그런 내가 생업인 연기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로 사회의 암적인 존재냐”고 반문하면서.(문화방송 <놀러와>, 2011)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신념과 생활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잠시 고민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곤 한다. 그리고 그게 세상 사는 법이라며, 남들에게도 그렇게 살 것을 요구하곤 한다.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나라고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허지웅의 지적처럼, 한국의 현대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은 건 많은 경우 “꼴사납게 자기 면 깎아가며” 시민의 권리를 지켜준 “드센 사람들”이다. 그러니 최근 아파트 난방비 비리 문제를 밝히려다 동네 주민과 시비가 붙어 뉴스에 오르내린 김부선에게 대중이 보내는 지지는, 어쩌면 온통 ‘가만히 있을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 질린 사람들이 보내는 조금 늦은 감사 인사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는 배우의 삶을 위해서라면 한번쯤 눈을 감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꾸준히 치열하게 싸워온 사람에게 보내는 인사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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