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뚝심 경영' 이번에도 빛날까

2014. 9. 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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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한전부지 거액 배팅 국가 경제에도 기여 판단해고비 때마다 승부사 기질 발휘

현대·기아차가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인수전에서 써낸 입찰금액 10조5500억원.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보다 무려 2조원이 많다. 2014년형 쏘나타 2.4 GDI 최고급형 35만2843대 가격과 맞먹고 국내 5개 완성차업체의 3년치 연구·개발비 예산과도 비슷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같은 '초강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신의 한 수'냐 '승자의 저주'냐를 놓고 평가가 엇갈리지만 정 회장은 일찌감치 '통 큰 베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현대차가 입찰 방침을 밝힐 때 정 회장은 "경쟁사를 의식하지 말고 반드시 부지를 따내라"고 지시했다. 현대차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니만큼 한전 부지 인수금액은 가장 먼저 고려할 사안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 정 회장은 19일 한전 부지 인수에 대해 "100년을 내다보고 결정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입찰에 참여한 직원을 불러 노고를 치하한 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인 만큼 차질 없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베팅 금액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더러 금액이 너무 과하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러나 사기업이나 외국기업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사는 것이어서 금액을 결정하는 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고 말했다. 인수대금이 공기업인 한전에 들어가는 것인 만큼 국가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고액 베팅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의 이 같은 과감한 결단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정 회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위기 때마다 특유의 승부사 기질은 빛을 발했다. 현대차그룹이 명실상부한 재계 2위에 오르기까지 그는 주위의 우려를 무릅쓰고 여러 차례 조 단위가 넘는 대형투자를 강행해 보란듯이 성공시키며 주변의 크고작은 소리를 잠재웠다.

1998년 정세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 등 회사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 중인 기아차를 7조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기아차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지금은 미국 시장 점유율 9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을 공략하는 방법도 파격 그 자체였다. 1984년 캐나다 브루몽 공장 실패 경험이 있던 현대차로서는 2000년대 초반 미 앨라배마 공장 건설은 안팎의 반대여론이 거셌다. 하지만 정 회장은 환율과 경제블록, 물류비용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관철했다. 당시 11억달러가 투자돼 2005년 완공된 현대차 앨래배마 공장은 쏘나타와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등 미국 핵심 차종을 생산하며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1999년 미국 시장 진출 때도 정 회장은 '10년·10만마일 무상(無償) 보증'이라는 파격 마케팅을 내놓았다. 경쟁사보다 보증기간이 3배 이상 길어 '과도한 무상보증 때문에 현대차가 망할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현대차의 품질을 각인시키는 전환점이 됐고 타 경쟁사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나설 정도다.

현대차그룹이 총 9조8845억원을 들여 완성한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사업도 주변의 우려를 불식한 또 다른 반전이었다. 2006년 현대제철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일관제철소 건설에 나서자 당시 포스코라는 세계적 철강기업을 갖춘 국내 업계에서는 철강산업의 공급 과잉, 과도한 투자비에 따른 재무부담 우려 등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그룹 차원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기 위해 7년간 줄기차게 투자한 끝에 지난해 9월 현대제철 고로 3기를 완공하고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어려울 때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뚝심을 앞세워 통 큰 투자와 과감한 결단을 내려왔고, 그것이 현대차 그룹을 한층 성장시키는 계기가 돼 왔다"고 말했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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