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놓치면 기회 없다" 10조 직접 부른 정몽구 회장

김영훈 2014. 9. 1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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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땅 감정가 3배 넘는 낙찰 안팎정 회장, 실무진 5조 입찰안 일축최고 100층짜리 빌딩 두동 지을 듯세금·기부채납·개발비까지 15조주가 9% 빠져 '승자의 저주' 우려도

"돈 문제가 아니다."

 정몽구(76)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액수를 내놓은 실무진에게 손을 저었다. 실무진은 하한 4조4000억원, 상한 5조1000억원으로 세 가지 종류의 카드를 제시했다. 삼성그룹 동향에 대한 보고도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 '누가 얼마를 쓸까'에 촉각을 세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정 회장은 직접 금액을 불렀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부지 입찰가 10조5500억원은 이렇게 정해졌다. 그의 기준점은 투자 이익이 아닌 그룹의 미래였다. 모두 놀란 입찰가는 그래서 가능했다. 그는 "지금 이 땅을 놓치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이 그리는 미래는 그룹의 얼굴을 '울산 공장'에서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바꾸는 것이다. 그저 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신뢰받는 브랜드로서 현대차를 만드는 일은 현대차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한국전력공사는 18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컨소시엄에 서울 삼성동 부지(7만9342㎡)가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낙찰가는 10조5500억원, 3.3㎡(1평)당 4억3880만원이다. 기부채납(40%)과 세금, 개발비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3.3㎡당 가격은 6억원이 넘는다.

 삼성그룹과 벌인 재계 1, 2위의 인수전은 싱거웠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5조원 안팎을 써낸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입찰 전 "5조원을 써내도 아깝지 않은 땅"이라고 말했다. 많이 써낼 경우를 가정하고 말한 상징적 숫자가 5조였던 셈이다. 현대차가 실제로 적어낸 가격의 절반이다.

 승부는 전술이 아니라 의지의 차이에서 갈렸다. 삼성은 서초동에 이미 삼성타운을 구축했다. 반면 삼성동에 들어설 현대차 GBC는 정몽구 회장 꿈의 마무리다. 그는 입버릇처럼 4대 사업을 강조해왔다. 세계 5위 달성, 현대가의 적통을 잇기 위한 현대건설 인수, 자동차 강판을 만들 고로제철소 준공은 이미 2010년 이뤘다. 마지막 남은 것이 GBC다. 필요성은 두 가지다. 현대차의 해외 생산 비중은 60%가 넘고, 연간 1000만 대 생산이 멀지 않았다.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글로벌 체계를 어떻게 총괄하느냐가 중요해졌다. 현대차가 삼성동을 "100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현대차가 뒤처져 있는 전기차 등 미래차에 대한 연구개발 확대도 삼성동 부지가 필요한 이유다. 현대차는 현재의 양재동 사옥 전체를 미래 연구개발센터로 쓸 예정이다. 경기도 화성에 남양연구소가 있지만 초특급 인력을 유치하는 데는 '서울 연구소'가 필수다.

네 번째 꿈을 향한 도전은 2006년 뚝섬 110층 사옥 추진으로 가시화했으나 지난해 말 사실상 좌절됐다. 이때부터 정 회장은 삼성동 부지를 무조건 산다고 작심했다고 한다.

 의지의 10조원이 현실의 10조원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땅 주인의 성격도 작용했다. 이 땅은 공기업인 한전 소유다. 나라 땅이다. "그 돈을 개인이 챙겨 가는 게 아니지 않으냐"는 정 회장의 언급도 있었다. 한전의 부채는 58조원이다. 못 갚으면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한전 관계자는 "매각대금을 부채 감축에 우선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복지 재정을 늘릴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서울시에 취득세 등으로 약 5000억원의 세금을 내고, 땅의 40%는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 땅이 아닌 돈으로 내면 약 1조3000억원이다. 기부채납액은 낙찰가가 아닌 감정가(약 3조3000억원)로 산정한다.

 삼성동 부지 주변은 기대감에 들떠 있다. 현대차는 이곳에 GBC 외에 자동차 체험관 등을 지어 자동차 타운으로 만들 계획이다. 70~100층짜리 빌딩 두 동을 짓는 방안이 추진된다. 연간 250만 명이 찾는 폴크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가 공장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타운이라면, 이곳은 도심형 랜드마크 성격이 강하다. 최근 2년간 주변 땅값은 50% 이상 올랐다. 중소형 빌딩이 3.3㎡당 8000만~1억원 수준이다. 행운공인 김성일 사장은 "현대차 관련 업체가 몰릴 것이라는 기대에 중소형 건물 공사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장 달라지기는 어렵다. 서울시 인허가에만 3년, 건물 건립에 4~5년은 필요하다. 합쳐서 8년, 입주는 2023년께 가능할 전망이다.

 의지의 10조원과 현실의 10조원이 낳은 엇박자도 있다. 땅값에 세금, 기부채납, 개발비(2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15조원 이상이 든다. 증시에선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9.17% 하락한 19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계열사 주가도 동반 하락해 현대차그룹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8조4000억원이 줄었다. 김형민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적에 영향은 없겠지만 배당 감소 등으로 주가에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원은 "현대차·기아차·모비스가 보유한 현금이 24조원이어서 재무적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며 "장기적으로는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사 관계에는 부담이다. 이번 투자액은 현대차의 한 해 인건비(6조원)보다 많다. 진행 중인 임단협에서 온건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결정적 한 방 없이는 질적 도약을 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도전에 따르는 위험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훈·이태경·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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