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속눈썹 긴 이유 찾았습니다

인터넷뉴스본부 천선휴 기자 2014. 9. 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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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논문 "알레르기 질환 있으면 소아·청소년 속눈썹 길이 길어져"권오상 교수 "속눈썹 길이 그대로지만 체형 서구화돼 길게 보일수도"

요새 아이들의 속눈썹이 왜 길어졌는지를 캐는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인의 외사촌 오빠네 자녀들의 속눈썹이 하나같이 길다는 얘기를 듣고 든 궁금증에서 시작한 취재가 이토록 막막할지 몰랐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속눈썹 길이에 딱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20명이 넘는 의사와 교수를 상대로 취재했지만 하나같이 "잘 모르겠다" "관심없다" "왜 그런 걸 취재하려고 하느냐"라고 답했습니다. 다만 유명 대학의 생명과학과 교수로부터 "요즘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져 속눈썹 길이가 길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교수 역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가정'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들은 답 중에서 유일하게 구체적인 추측이었습니다.

지난 12일 속눈썹이 길어지는 이유를 추적(?)하는 고군분투기에 가까운 기사 <길어진 속눈썹, 정말 환경오염 때문일까> 를 내보냈습니다. 독자들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해 찜찜한 데다 기자 역시 속눈썹이 길어지는 이유를 미치도록 알고 싶었기에 기사 말미에 '이 글을 읽은 전문가 중 속눈썹이 길어진 이유를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제 이메일로 연락 주기 바랍니다. 후속 취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문구를 곁들였습니다.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내보낸 기사에 대한 반응은 예상과 달리 폭발적이었습니다. 정확한 해답을 들을 순 없었지만 흥미로웠다는 내용의 댓글과 이메일이 많았습니다. 상당수 독자는 "꼭 후속 취재를 해서 속눈썹이 길어지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왜 독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냐"는 힐난 섞인 댓글도 있었습니다. 기자의 역량이 부족해 미숙한 기사를 내보낸 데 대해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함께 민망함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얼마 뒤 독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전문가의 이메일이 제게 도착했습니다. 이메일을 보낸 이는 김태흥 화이트라인 피부과 원장이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한 시간 동안 따로 찾아봤다"면서 요새 아이들의 속눈썹이 길어지는 이유를 분석한 외국 논문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김 원장이 소개한 논문에 따르면 뜻밖에도 속눈썹의 길이는 알레르기 질환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2004년 발표된 '소아ㆍ청소년의 속눈썹 길이와 알레르기 질환의 연관성(Eyelash length in children and adolescents with allergic diseases)'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아토피 및 이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이 소아ㆍ청소년의 속눈썹 길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기술합니다. 소아피부과학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은 특히 아토피와 연관된 결ㆍ각막염이 있는 경우나 비염과 피부염을 함께 앓을 경우 아이들의 속눈썹 길이가 길다고 말합니다.

논문을 쓴 이들(Segal N, Levy Y, Ben-Amitai D, Danon Y.L)은 왜 아토피성 결막염이나 피부염 등이 속눈썹 길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을까요? 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결막염이 있으면 눈이 가려우니 긁기 마련이죠. 눈을 긁으면 눈 부위의 혈류량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속눈썹의 길이기 길어진다는 겁니다. 김 원장은 해당 논문에 대해 "피부를 긁는 습관에 따른 혈류량 증가 등의 자극으로 속눈썹이 길어질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라고 설명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요즘엔 아토피로 인한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가 많습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에게 알레르기를 앓는 소아ㆍ청소년이 얼마나 늘고 있는지 물었더니 안강모 성균관대 의대 교수(소아과학교실) 등이 저자로 참여한 논문('2010년 한국 어린이ㆍ청소년의 천식, 알레르기 비결막염, 아토피피부염 증상 유병률 조사: 복합표본설계를 이용한 전국 서베이')을 보내줬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알레르기비결막염과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소아ㆍ청소년의 수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1995~2010년 동안 알레르기 비염을 어린이와 청소년은 각각 1.3배, 1.4배 늘고 알레르기 비결막염 어린이와 청소년은 각각 1.9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해당 논문을 자세하게 설명한 뒤 기자에게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이니 혹시 속눈썹 길이 연구에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다"며 권오상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 교수를 소개했습니다. 권 교수는 지난 4월 서울특별시의사회가 선정하는 유한의학상(제47회) 대상을 받은 의사입니다. 그는 지난해 탈모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물질을 미국 연구진과 함께 발견하기도 한 피부과학의 권위자입니다. 몇 차례 통화 시도 끝에 겨우 그와 전화가 닿았습니다. 권 교수에게 아토피성 결막염이나 피부염 등이 속눈썹 길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문을 소개하고 신빙성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속눈썹 길이에 관심이 있는 이가 많다는 사실에 잠시 놀란 권 교수는 "논문을 검토해보겠다"더니 하루 뒤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권 교수는 "한 논문을 가지고 (속눈썹이 길어졌다는 주장을) 일반화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알레르기는 시골보다 도시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도시와 시골의 아이들이 속눈썹 길이에 차이를 보일까요? 직접 비교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알레르기가 속눈썹 길이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일반화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화장품회사의 의뢰를 받아 20대 한국여성 속눈썹 3,000개와 백인여성 속눈썹 1,700개를 비교했더니 속눈썹 길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면서 "한국여성 속눈썹은 백인 여성보다 1.15배 굵고 이 때문에 10∼40%가량 위로 덜 휘어져 짧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눈 모양이 다르다면서 서양인의 경우 안구가 함몰해 있기 때문에 속눈썹 각도가 바깥쪽으로 뻗쳐 있는 것처럼 보여 길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권 교수의 설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안구가 함몰하면 속눈썹 길이가 길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속눈썹이 긴 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소아나 어린이는 얼굴에 비해 눈이 크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속눈썹이 길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권 교수는 "안과 교수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예전보다 속눈썹이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은 받는다'고 말하더라"라면서 "영양상태가 좋아짐에 따라 요즘 아이들의 체형이 갈수록 서구화하면서 눈모양에 변화가 생기고 이에 따라 속눈썹 길이가 길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속눈썹 하나를 놓고 이렇게 주장이 다를 수 있다니…. 이번에야말로 '속눈썹 미스터리'를 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에 권 교수 말을 듣고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 건졌습니다. 속눈썹 길이가 길어졌든 길어지지 않았든 간에 과거에 비해 속눈썹이 길어 보일 수는 있다는 거죠.

참고로 김 원장이 소개한 또 다른 외국 연구에는 올리브오일, 오메가-3 지방산, 녹차 및 기타 항산화제, 야채, 레몬의 섭취가 속눈썹 길이를 길어지게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특히 해당 논문은 올리브오일의 경우 먹는 건 물론 발라도 속눈썹 길이를 길어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자의 '속눈썹 미스터리' 추적기는 일단락됐습니다. 후련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쓴 기사 중 취재 기간이 가장 오래 걸렸지만 막상 써놓고 보니 썩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해 부끄럽습니다. 대책 없는 호기심과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 때문에 속눈썹 하나를 놓고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 작은 기사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풀어주거나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영향을 미치길 바랍니다. 궁금한 점이나 색다른 기사 소재가 있는 분은 언제든 제 이메일(ssunhue@hankooki.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또 다른 호기심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취재에 도움을 준 김태흥 원장과 권오상 교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터넷뉴스본부 천선휴 기자 ssunhu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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