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타운? 교도소?.. 인구 6만 居昌(거창), 두쪽 나다

거창 2014. 9.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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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은 요즘 선거철보다 더 많은 현수막이 거리에 나붙고 있다. '거창 법조 타운, 50년 가축 분뇨 악취 문제를 해결합니다' '학교 앞 교도소 OUT'이라는 두 종류의 현수막 수십 개가 읍내 곳곳에 경쟁하듯 내걸려 있다.

교육 도시로 유명한 인구 6만의 거창군이 구치소 유치 문제로 둘로 쪼개졌다. 한쪽은 그걸 법조 타운이라며 찬성하고, 다른 편은 교도소라며 절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한 주민은 "이웃끼리, 동창끼리, 심지어 친척들 사이도 이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일이 생기고 있다"면서 "거창 인심이 지금처럼 흉흉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역 고교 동문 모임에선 "법조 타운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 "어느 누가 미쳤다고 교도소를 환영하느냐"는 고성이 오가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이 문제로 말다툼하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찬성 쪽 사람 옷가게에는 가지 말자"며 불매운동을 벌이고 "공사장 포클레인 앞에 드러눕겠다"고 한다. 유치 반대 입장인 군의원에게는 "핑크 옷(유치 반대 모임을 상징) 입은 사람들 차로 갈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거창경찰서 관계자는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목요일마다 군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반복되는 상황인 데다 고소·고발전도 심해지고 있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창 읍내 한센병 환자촌(村) 부지를 개발하는 사업이 갈등의 발단이다. 2017년까지 이곳 19만8000㎡(약 6만평) 땅에 읍내 중심지에 있는 현 거창지원, 거창지청을 옮기고 재소자 400명·교도관 200명 규모의 '거창구치소'를 짓는다는 내용이다. 4개 동 규모인 구치소는 3개 동이 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기결수(旣決囚)용이어서 사실상 교도소 성격이다.

거창은 전북 남원, 충북 영동과 함께 지원·지청이 있는데도 구치소가 없었던 3곳 중 하나다.

반대 주민들은 "교도소는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혐오 시설이지만 지금 우리가 반대하는 건 보통의 '님비 현상'과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현 군수가 명백히 교도소인 이 시설을 법조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주민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주민들과 거창군에 따르면 거창군은 한센병 환자 71명이 사는 거창읍 북서쪽 땅에 지원·지청을 이전하고 교정 시설을 신설한다는 '법조 타운 조성' 계획을 2011년 내놓았다. 거창이라는 지자체가 생겨난 이래 가장 큰 규모(1725억원)의 사업이다. 거창군은 "한센 환자촌 양돈·양계장으로 인한 악취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지원·지청이 떠난 읍내 빈터엔 아카데미 파크를 만들어 교육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거창군은 주민 3만명의 서명을 받아 법무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법조 타운이 알고 보니 교도소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 6·4지방선거 때였다. "교도소 반경 1㎞ 안에 11개 초·중·고가 있고,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는 교도소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75m"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지역 학부모들이 들끓었다. 교도소유치반대거창학부모모임 임영태 간사는 "법조 타운이라면 변호사 사무실, 법원·검찰청을 떠올리지 누가 교도소를 상상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주민 서명도 날림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70명 정도의 추진위원이 전체 주민의 절반인 3만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3주에 불과했다. 서명부에는 수십 명의 주소와 이름이 같은 필체로 한꺼번에 적힌 부분이 발견됐다. 중복 서명, 대리 서명에 "도장을 찍은 적이 없는 데도 동의한 것으로 돼 있다"는 주민들도 나왔다. 서명했던 주민 상당수는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한 법조 타운을 생각하고 찬성 도장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교도관과 부양가족 1000여명이 유입되고, 면회객들이 오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찬성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 중에는 지역 건설사 대표, 레미콘 업주, 주유소 대표 등 지역 유지가 많다는 점에서 "개발 이익을 끈으로 군수와 지역 유지들이 유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있다.

이홍기 거창군수는 "주민들이 양분돼 갈등을 겪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만 주민들을 속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당시 '교정 시설'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는데 법조 타운 삽을 뜨기 직전에 반대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사업 추진이 불가피한 만큼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소통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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