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20년 프로야구 인생 '제2 봄날' 연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

대구 2014. 9. 1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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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제 그만 해라' 할 때.. 난, 오늘을 준비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꾸라'고 했던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전부 바꿨다. 타격자세뿐 아니라 방망이와 글러브, 배팅 장갑, 스파이크, 언더셔츠까지. 야구 하면서 쓰던 것은 모조리 벗어던졌다. 운명을 건 대모험이었다. 수술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시즌 개막을 기다렸다. 천하를 호령했던 그였지만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도박에 가까운 변신이 과연 통할까 하는 초조감이 매일 밤 엄습했다. '올해도 안 되면 끝'이라는 절박감에 잠을 설쳤다. 드디어 개막전. 잘 맞은 타구가 상대 수비에 걸리며 3타수 무안타. '올해도 안 되는 건가.' 이튿날 3안타를 쳤지만 그래도 믿음이 없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연타석 홈런을 뿜어냈다. 비로소 대수술을 단행한 타격폼에 자신감이 생겼다. 거칠 것 없었던 예전의 '라이언 킹'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국민타자' 이승엽(38·삼성 라이온즈) 얘기다.

일본 무대를 마무리하고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맞은 2012년은 그 명성 그대로였다. 타율 3할7리에 홈런 21개, 85타점에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까지 화려한 복귀였다. 2013년은 달랐다. 자만한 결과였다. 타율 2할5푼3리에 홈런은 13개에 불과했고 한국시리즈 성적도 형편없었다. 하지만 올해 성적은 눈부시다. 지난 10일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시즌 30홈런을 달성한 데 이어 최고령 '30홈런(30개)-3할(3할4리)-100타점(94타점)'도 눈앞에 두고 있다. 홈런과 타점은 팀 내 1위다. 프로야구가 인천아시안게임 휴식기(15∼30일)에 접어든 가운데 새로운 야구인생을 즐기고 있는 그를 11일 대구구장에서 만났다. 반갑게 기자를 맞은 그는 1시간여 동안 막힘없는 말솜씨로 자신의 야구 인생관 등을 술술 풀어냈다. 대선수다웠다.

-우선 어제(10일) 최고령 시즌 30홈런을 쳤는데 축하한다. 최고령이라는 말을 들을 때 느낌이 어떤가.

"나이 든 느낌이 들어 그렇게 듣기 좋지는 않다. 나쁘다기보다 미묘하다. 나에게는 귀에 와 닿지 않는다. 최고령 30호 홈런 기록이 의미는 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스무 살이나 마흔 살이나 똑같은 선수다. 기록이 쌓여간다는 점은 좋지만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에 첫 30홈런이었으면 굉장히 기억에 남았겠지만 한국에서만 여덟 차례 30홈런을 쳐 봤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이승엽은 이날 NC 다이노스전에서 만 38세23일의 나이로 시즌 30번째 홈런을 터뜨려 지난 2001년 롯데의 펠릭스 호세가 갖고 있던 종전 기록(만 36세3개월17일)을 경신했다.

-어제 경기가 중요했던 것 같다. 최근 팀 분위기는 어떤가.

"만약 경기에 졌다면 침체기로 들어갈 수 있었다(삼성은 이날 경기에서 졌으면 2위 넥센에 1.5게임차로 추격을 당해 정규리그 1위 자리가 위태로웠다). 다행히 이겨서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이번 승리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참 잘나갈 당시 9연승했을 때나, 10연승했을 때나, 최근 5연패 당할 때나 우리 팀 분위기는 똑같다. 이기고 지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승리하고 어떻게 잘못하면 패하는지 배우고 있다."

-가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어제 30홈런을 친 뒤 첫째 아들 은혁이에게 전화했다. '은혁아 아빠 봤냐. 어때 멋있지.' 뭐 이렇게 얘기한다."

이승엽은 큰아들 은혁(9)과 막내 은준(4) 2남을 두고 있다. 좋은 활약을 보일 때면 아들의 소감을 꼭 듣는다고 한다. 아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에 진출하기 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이 어떻게 달라졌나.

"내가 일본으로 가기 전 삼성은 개개인은 뛰어났으나 전체는 강하지 못했다. 지금은 개개인은 예전보다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선수 전체의 힘은 강해지고 팀은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3연패도 이뤘고 올해 4연패에 도전하는 있는 것이다."

-한국시리즈 4연패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되는 숙명이다. 4연패를 위해 지난겨울 열심히 훈련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모든 선수가 말은 안 하지만 아무도 못한 4연패를 해야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팀 내 최고참으로 후배들에게 주로 무슨 얘기를 해주나.

"별다른 것은 없고 그냥 '해보자, 해보자, 최선을 다하자!' 뭐 그 정도다. 한발 더 뛰고 한마디 더해주고 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이승엽은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야간경기(오후 6시30분)를 앞두고 선수들은 보통 당일 오후 3시에 집합해 훈련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낮 12시30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태해지지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란다. 솔선수범하는 이런 고참의 모습을 보고 어떤 후배가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해 얘기를 해보자. 극도로 부진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많이 들었나.

"'이제 그만 해라. 무엇 때문에 하냐. 이제까지 이루었던 모든 것을 다 잃지 말고 이제 끝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위에서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끝낸다면 나 자신이 납득을 못하겠더라.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부진했던 이유를 찾아내고 분명히 개선한다면 '예전의 이승엽'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은퇴하라는 얘기를 쳐다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부진 극복을 위해 어떻게 시즌을 준비했나.

"타격 자세를 바꾼 것이 주효했다. 예전에는 내 고집대로 했지만 올해는 타격코치 등의 조언을 받아들여 좋은 방향으로 만들었다. 방망이를 세우던 것을 눕히고 타격 시 발을 드는 대신 땅을 스치듯 옮기는 자세로 변화를 줬다. 야구 선수에게 배트를 세웠다가 눕히는 것은 대수술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망이가 나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파워를 좀 줄이는 대신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작년에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지만 올해는 중심에 정확히 맞히고 있다. 야구에 대한 재미가 다시 생겼다."

-언제부터 자신감을 갖게 됐나.

"5월 21일 포항에서 열린 롯데전이었다. 상대 왼손 에이스 장원준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그 경기에서 4회 홈런을 기록했는데 5회 자존심이 좀 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내 바로 앞 타자인 (박)석민이를 고의사구로 내보낸 것이다. 내가 바로 전 타석에서 홈런을 쳤는데 말이다. 정말 속으로 기분이 안 좋았고 흥분됐다. 예전 이승엽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오기가 났다. 보기 좋게 연타석 홈런이자 스리런 홈런을 쳤다. 그때부터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자신감도 생겼고 비거리도 늘어났다. 내 스윙이 되니 공이 멀리 날아갔다. 군더더기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그날 5, 6호 홈런을 날린 이승엽은 6월 17일 문학 SK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6월에만 홈런 9개를 몰아쳤다.

-올 시즌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나.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고 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올해도 잘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불안감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경기를 할수록 멘털적으로 편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좋아졌다. 100% 만족이라는 것은 없지만 현재는 시즌 전 목표를 넘어섰다. (목표보다) 조금 더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되도록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욕심을 부리면 지난해처럼 부진해지기 때문이다. 아직 몇 경기 남았지만 이대로 시즌을 끝내도 후회는 없다."

-넥센 박병호(48개)가 50홈런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대단한 선수다. 내가 두 차례(1999년 54개, 2003년 56개) 50홈런을 칠 때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몇 년 안에 내 기록도 넘을 것 같다."

-선수로서 개인 목표는.

"국내 통산 400홈런-2000안타 기록을 세우고 싶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반드시 하고 싶다. 홈런(현재 통산 388개)은 12개 남아 400홈런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통산 2000안타(현재 1686개)가 문제다. 300여개가 남았는데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00안타를 칠 때까지는 그만두지 않겠다. 대기록을 이룬 뒤 미련이 없다고 생각될 때 떳떳하게 은퇴하고 싶다."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은 이승엽이 갖고 있으나 최다 안타 기록은 은퇴한 양준혁(2318개)이 보유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현재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100% 분명한 것은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대구=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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