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조롱'에 빠져들었나..그 출발과 성장, 타락

이원광 기자 입력 2014. 9. 17. 05:06 수정 2014. 9. 17. 09: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호모 조롱투스'의 시대②]딴지일보에서 나꼼수, 일베까지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편집자주] '조롱하는 인간'들의 시대다. 금기를 향해 도전한다는 '조롱'의 긍정적 에너지는 이미 한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방향성을 잃은 '말의 폭력'은 사회적 약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사회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적 비효율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머니투데이는 4회에 걸쳐 조롱하는 인간 '호모 조롱투스'의 기원과 발전상을 돌이켜보고 이들이 가져온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살펴본다.

[['호모 조롱투스'의 시대②]딴지일보에서 나꼼수, 일베까지]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회원들이 지난 13일 오후 광화문 단식농성장 인근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는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사진=뉴스1

'일간베스트 회원님들 식사하는 곳.'

지난 6일 낮 서울 광화문 광장. 이같은 문구와 함께 4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크기의 평상과 밥상이 마련됐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측이 일부 누리꾼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것.

앞서 일부 누리꾼들이 온라인 상에서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식사를 하는 폭식투쟁을 하자"고 제안한 데 따른 조치였다.

'일베충'이라는 표현에 빗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유족충'이라는 일부 누리꾼들에게 유가족 스스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양손에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쥔 조직화된 '호모 조롱투스'가 어두운 온라인 공간에서 벗어나 거리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 "脫엄숙주의의 문화적 코드 '조롱'"

문화적 코드로써 '조롱'은 강자나 권력을 향해 그 힘을 발휘해 왔다. 풍자나 해학 등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돼 왔다. 제도권 언론이 지향해온 엄숙주의의 틈새를 비집고 인터넷 지지기반을 만들어낸 '딴지일보'가 대표적이다.

그 대상이 강자와 권력자이기에 조롱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조롱하고 풍자하고 비틀어도 어차피 그들은 강자와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시대를 연 '나꼼수' 역시 이같은 조롱의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가벼운 놀이 차원으로 시작된 조롱문화는 최근에는 인격살인을 넘나드는 수준으로까지 변질됐다. 극단적 정치 갈등이 여과없이 인터넷에도 반영이 되며 정치적 반대편이면 약자와 유족, 고인을 가리지 않고 조롱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황미구 전문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원장은 "돈, 권력, 웃어른 등 사회 기득권에 대한 조크나 풍자가 허용되지 않는 문화에서 은폐된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건강하지 못한 조롱문화가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 작가는 "일베는 유가족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절대화하는 것이 맘에 안 드는 것"이라며 "고인이나 유가족을 모욕해선 안된다는 금기를 위반하면서 생기는 '카니발적' 즐거움을 추구하다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했다.

◇ 인터넷·SNS를 통한 확증 편향과 전략적 공조

비슷한 가치관과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과 SNS는 이같은 '조롱의 타락'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됐다. 유사한 성향을 지닌 호모 조롱투스끼리 모이며 조롱의 정도를 조절하는 자정작용을 상실한다는 것.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 없었을 때는 내 의견이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내 의견이 타당할 수도 있다'고 지지받는다고 느끼게 된다"며 "그런 조롱문화에서는 세력이 집단화돼 반드시 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롱은 일베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상징 코드라고 설명한다. 임 교수는 "일베들은 조롱을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해외 극우파들의 스킨헤드나 가죽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보수적 규범이 허락하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숨어서 언어유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롱하는 과정에서는 적을 명확히 해놓고 부풀려 놔야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된다"며 "'유가족들은 보상만을 원한다', '유가족들이 시체장사를 한다' 는 루머를 온라인의 확장성을 이용, 퍼트리면서 실체보다 이를 과대포장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사회적 금기를 조롱 문화가 확산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사라지고 상대를 향한 비방만 남는다는 점이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웹에서의 의사표현이 참여 민주주의를 북돋는 툴로 주목받았고 심지어 '웨보크라시'라는 말도 나왔으나 오늘날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반응을 주고 받는다"며 "많은 사람의 의견과 내 의견을 견주어보고 종합적으로 사유하는 방향으로 SNS를 활용할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도덕상실의 시대… '호모 조롱투스'의 탄생

女선수들, 이걸 입고 '사이클' 탄다고?

대졸초임 4500만원 중기, "직원 행복이 중요"

이지애 '아나운서 성희롱' 강용석에 "화해 정식 요청"

美 LA 타임스 "다저스, 류현진 잃으면 우승 어려워"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 demia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