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2] 매팅리에게 커쇼의 교체란?

스페셜 2014. 9. 1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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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그의 팀이 치른 올해 148번째 경기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이었을 거다. 3게임차로 벌어지느냐, 1게임차로 좁혀지느냐. 지면 1위 자리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8회 자이언츠의 첫 타자 조 패닉을 투수땅볼로 잡아낸 뒤 돈 매팅리 감독이 릭 허니컷 코치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마운드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투수 교체라는 걸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선발의 투구수는 이미 105개였다. 게다가 다음에 상대할 타자는 3번과 4번, 오른손 잡이 중심 타선이었다.

그런데 마운드 미팅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투수가 계속 뭔가를 얘기하며 공을 넘겨주지 않고 있었다. 한참 얘기를 듣던 매팅리 감독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때 <…구라다>는 아주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터벅터벅 마운드를 내려와 덕아웃으로 향하던 매팅리 감독이 고개를 숙인채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었다. 저건 뭘까. 처음 보는 장면이다. 그 중요한 경기에서, 후반의 중요한 고비에서, 감독이 저런 모습을? 왜 그랬을까.

경기 후 인터뷰와, 각 미디어들의 보도를 토대로 그 전후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물론 이게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독자는 없으리라. 당연히 재연을 가장한 '구라'다. 뭐라 마시라. 그건 <…구라다>만이 갖는 고유의 영역이다.

8회초 공격이 끝난 때 쯤 매팅리 감독, 허니컷 코치, 커쇼가 덕아웃에서 짤막한 미팅을 가졌다. 아마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매팅리 : 어디까지 갈래? 투구수가 꽤 되는데…. (이때까지 104개)

커쇼 : 8회 첫 타자가 패닉이죠. 그 친구만 잡으면 되겠어요.

매팅리 : 그래? 괜찮겠어? 힘들어 보이던데….

커쇼 : 예, 괜찮아요. 첫 타자만 잡으면 돼요….

매팅리는 이 대화를 첫 타자만 잡고 내려오겠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8회말 첫 타자 패닉을 투수 땅볼로 처리한 뒤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커쇼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마운드에서는 주로 커쇼가 얘기하고 매팅리는 듣는 입장이었다.

커쇼 : 아직 괜찮아요. 더 던질 수 있어요.

매팅리 : 아까는 첫 타자 잡고 바꿔달라고 했잖아.

커쇼 : 제가요? 언제요?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첫 타자만 잡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말이었죠. 여기(8회)까지만 제가 할게요. 할 수 있어요.

너무도 단호하고, 의욕적이었다. 결국 매팅리는 그 의지 앞에 "NO"라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7회 무렵 매팅리는 교체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 조심스러운 경기였다. 앞서고는 있지만 7회 수비때 1점을 내줘 4-2로 쫓기는 상황이 됐다. 매팅리는 "이 때 커쇼의 힘이 좀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아마 대타 맷 더피의 빗맞은 중전 적시타가 마음에 걸렸으리라. 평소와 같은 커쇼의 볼끝이라면 내야 플라이나 파울볼이 됐어야 할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됐으니 말이다.

반면에 커쇼는 그때까지도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왜? 이 게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2점이나(?) 주고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자이언츠 타자들이 오늘 타석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유인구를 골라내면서 투구수를 늘려갔다. 그들은 내가 경쟁하고 싶게 만들었다. 많은 안타도 쳐냈다." 강력하게 저항하는 상대를 맞아 투쟁심이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투구수가 많아지더라도, 무조건 8회까지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8회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흐름상 2,3,4번 중심타선에 걸리는 8회가 이 경기의 최대 고비였다. 마침 선발 투수는 100개가 넘어가면서 볼의 힘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불과 2점차. 누가 감독이라도 위험을 느낄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갔다. 아마 냉철한 감독이었다면 공을 뺏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승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 순간 너무나 절실한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은 이제까지 누구보다 팀에 헌신적이었던 선수의 것이었다. 누구보다 신뢰를 주는 투수의 것이었다. 그게 설사 그릇된 결정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판단을 해야 했던 이유다. 만약 잘못되는 경우 투수교체의 실패는 모두 자신의 잘못과 허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정석대로 불펜에 있던 브라이언 윌슨을 올렸다가 잘못되면, 팬들은 윌슨을 욕한다. 감독은 어쩔 수 없는 교체였다며 면책이 된다. 반면에 바꾸지 않고 그냥 커쇼를 놔뒀다가 승부가 바뀌면 감독이 모든 비판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만큼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장면은 그런 번민의 표현인듯 했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 가장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그냥 마운드를 내려오는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누가 그를 비판할 수 있으랴.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그의 번민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건 매팅리와 커쇼, 둘만이 갖고 있는 단단한 소통의 구조와 신뢰일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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