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상실의 시대.. '호모 조롱투스'의 탄생

박소연 기자 2014. 9. 1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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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조롱투스'의 시대①]'금기 도전' 넘어 '패륜'에 이르기까지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편집자주] '조롱하는 인간'들의 시대다. 금기를 향해 도전한다는 '조롱'의 긍정적 에너지는 이미 한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방향성을 잃은 '말의 폭력'은 사회적 약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사회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적 비효율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머니투데이는 4회에 걸쳐 조롱하는 인간 '호모 조롱투스'의 기원과 발전상을 돌이켜보고 이들이 가져온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살펴본다.

[['호모 조롱투스'의 시대①]'금기 도전' 넘어 '패륜'에 이르기까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회원 등이 13일 오후 광화문 단식농성장 인근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는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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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지난 6일 낮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회원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유가족들 앞에서 보란 듯 '폭식 투쟁'을 벌였다. 피자 100판과 맥주, 치킨, 육개장을 먹어치웠다. 일부 참가자들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13일엔 '2차 광화문 대첩'이 이어졌다. 이들은 "유가족들이 초코바를 먹으면서 단식을 진행했다", "'자유시간' 먹고 자유 되찾자"며 시민들에게 초코바를 나눠주고 유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바야흐로 '조롱'의 시대다. 남을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호모 조롱투스' 인간형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권력자를 향해 자행되던 '조롱'은 마침내 오프라인 공간에서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등 약자를 향한 '정신적 테러', '증오범죄'로 발현되기에 이르렀다. 비단 일베뿐 아니라 온라인 토론장 댓글부터 저명한 논객들의 토론까지 인격비하적 '조롱'이 횡행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용인돼온 '조롱' 행위가 비인간적 패륜으로까지 나아가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기중심적' 인터넷이 길러낸 조롱 문화

'남을 비웃거나 놀린다'는 뜻의 '조롱'은 역사가 오랜 행위 방식이다. 주로 약자들이 권력자들의 부정하고 폭압적인 권력 행사에 맞서는 도구였던 '조롱'은 최근 들어 무차별적인 양상을 띠게 됐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조롱행위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며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제에서 권력에 직접 도전하기 어려울 때 병신춤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 것은 건전하고 건강한 행태지만, 일베의 폭식처럼 무차별적으로 힘없는 약자까지 대상으로 삼고 아무 생각 없이 돌팔매질하는 행위는 건전하지 못한 의사표현이며 전혀 다른 정치적 의미를 띤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은 '조롱문화'의 산파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중심으로 같은 관심사를 지닌 이들이 결집해 소통할 토대가 마련됐다. 표현의 자유가 확장됐지만 '익명성'과 '집단'의 가면 뒤에 숨어 상대방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행태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조롱'은 손쉽게 주목을 끌고 판세를 뒤집는 도구로 애용되게 됐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선 자기가 느끼는 것을 훨씬 더 분출할 수 있고 내 의견이 주목받기 위해 더욱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며 "토론문화가 정착돼있지 않으니 내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도 쉽고 단순하고 강력하게 상대방을 규정하는 '조롱'을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공간은 상호 다른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점을 찾기보다 각 '집단'이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방향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이라는 보편 가치기준이 힘을 잃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일부 조직은 반인륜적인 언어와 행위를 보이게 됐다.

전 교수는 "SNS가 없었을 때는 자기 의견이 소수의견인 줄 알았다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닌 지지자들을 접하면서 옳지 않은 자기 의견도 타당할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며 "가장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매력적이고 단호한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지지세력에게 자신의 그룹에서 최전선에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조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롱', 가치 파괴 사회에서 패륜이 되다

전문가들은 조롱이 난무하고 약자를 향한 '패륜'까지 벌어진 현 사태는 도덕가치가 상실된 사회,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상실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라고 평가했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일베가 출현하게 된 물적 토대인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자기중심성, 자기계발인데, 이처럼 자기 발전이 자기 책임으로 이뤄지는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지켜왔던 공통의 가치가 더 이상 지킬 필요 없는 것으로 폄하되고 돈과 성공이 중심이 된다"며 "타인, 약자에 대한 배려, 사랑, 예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은 필요 없게 되고 선과 악, 나쁘고 잘못된 것에 대해 합의했던 최소한의 기준이 사라진다. 나 혼자 먹고 살기 바빠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흥사단 투명사회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지난해 청소년 1만17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고교생의 47%가 '10억원이 생기면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14일 질병관리본부가 발표는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성인 8명 중 1명(12.9%)이 최근 1년간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발표했다.

미성숙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반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사회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면 이런 돌출된 목소리를 눌러줘야 하는데 정치권은 폭식투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간을 열어주고도 반성 없이 오히려 유가족들 공세에 나서고 편승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윤리적인 자각심과 경계심을 옅게 해준다. 민주주의라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자정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꼭 악마적인 실체가 없어도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행위가 악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내 언어에 갇혀서 다른 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무능성, 내 사유에서 타자의 영향을 차단해버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성이 악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패륜적 조롱을 일삼는 이들도 자기 '생각'이 있다고 하겠지만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고 내 의견을 남과 견줘보고 가늠해보고 종합하는 능력이 없다는 측면에서 제대로 된 사유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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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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