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307년 기다린 '운명의 날'이 온다

입력 2014. 9. 15. 10:17 수정 2014. 9. 1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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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현 기자]

스코틀랜드 항쟁 영웅 윌리엄 월레스를 그린 <브레이브 하트>의 한 장면.

ⓒ 파라마운트픽처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스코틀랜드는 오는 18일 영국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치른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연합체로 이루어진 '대영 제국'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 국가로 나서겠다는 스코틀랜드의 오랜 희망이 드디어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질긴 역사적 인연은 물론이고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영국과 유럽을 넘어 세계 경제에 닥칠 파장을 앞두고 모두가 투표 결과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주민투표는 간단하다. 스코틀랜드 유권자 428만 명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분리 독립하기를 원하는가"라는 단일 문항에 "예" 또는 "아니오"의 찬반을 선택하면 끝난다.

높아지는 분리독립 열기... 불안한 '대영 제국'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와 켈트족의 스코틀랜드는 1500년대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혈통과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오히려 피 흘리는 전투로 얼룩진 '원수 관계'가 더 어울렸다.

스코틀랜드 역사는 곧 잉글랜드의 끊임없는 침략에 맞서야 했던 항쟁의 역사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제 주인공이자 1298년 잉글랜드와의 폴커크 전투에서 적군에 잡혀 처형당하는 순간 "프리덤(자유)"을 외치며 눈을 감은 윌리엄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눈을 감자 잉글랜드는 고민 끝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제임스 6세는 영국의 제임스 1세로 새롭게 즉위했고, 100년이 넘는 치열한 논란 끝에 결국 1707년 완전히 통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올해로 통합 307년째가 되었지만 수천 년간 쌓여온 민족성과 깊은 반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축구 종가'의 자부심이 강한 영국이지만 월드컵에서는 단일팀 구성을 격렬히 반대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따로 참가한다. 만약 영국과 프랑스가 축구 경기를 하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프랑스를 응원할 정도다.

여기에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영국 집권당 보수당은 스코틀랜드에 강력한 긴축 재정을 요구했다. 이에 성난 스코틀랜드의 민심은 2011년 총선에서 '분리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스코틀랜드국민당(SNP)에게 압도적인 의석을 안겨줬다.

마침내 지난해 3월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투표가 최종 확정되고 1년 6개월의 유세 기간이 주어졌지만 영국은 느긋했다. 스코틀랜드 유권자를 상대로 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영국 연방으로 남고 싶다는 목소리가 분리독립을 원하는 쪽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NP의 적극적인 유세 활동 속에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표심이 꾸준히 높아졌고, 결국 지난 7일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발표한 조사 결과 분리독립 찬성 응답( 51%)이 반대한다는 응답(49%)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더구나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있는 이날까지도 각종 여론조사마다 오차 범위 내에서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치열한 혼전이 계속되면서 누구도 투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추격을 당한 영국은 다급해졌다. 영국 BBC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최근 스코틀랜드 주도 에든버러에서 연설회를 열고 "보수당이 밉다고 해서 분리독립 투표가 심판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투표는 (총선처럼) 5년짜리 결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머런 총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영국이라는 특별한 나라를 사랑한다"며 "그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눴던 스코틀랜드가 분리된다면 엄청난 괴로움에 빠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와 유럽의 3대 경제대국을 이루고 있는 영국은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스코틀랜드가 빠져나가면 경제규모가 스페인 수준으로 내려앉게 된다. 엄청난 재정 수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자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왕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영국 왕실의 엄격한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신념"이라며 "이번 주민투표는 스코틀랜드 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확실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영국은 여야가 합세해 스코틀랜드 자치권을 대폭 확대하겠다며 뒤늦게 '당근' 작전을 들고 나왔다. 캐머런 총리를 비롯해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 닉 클레그 자유민주당 당수는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으로 남게 되면 재정, 법률, 치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는 유럽연합(EU)도 영국마저 재정위기에 빠지면 더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하고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EU 가입이 어려울 것이라며 영국 연방에 남을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EU는 스코틀랜드의 유로화 사용을 거부할 수 있고, 영국도 파운드화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장은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면 영국 정부에서 빌린 230억 파운드(약 40조 원)의 채무를 즉시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북해유전' 믿는 스코틀랜드... 비관론도 만만치 않아

분리독립을 위한 유세 활동을 펼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알렉스 새먼드 당수.

ⓒ 스코틀랜드국민당

SNP가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가장 큰 자신감의 배경은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동쪽의 북해 유전이다. 영국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막으려는 가장 큰 이유도 북해 유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북해산 브렌트유'로 유명한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수입을 앞세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영국보다 높은 2만6000파운드(약 4300만 원)로 상승해 세계 8번째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분리독립 지지층이 내세운 장밋빛 미래다.

하지만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영국이라는 거대 수출시장을 잃으면 스코틀랜드 인구 540만 명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 스코틀랜드의 영국 수출액은 전체 수출액의 70%에 달한다.

또한 국가 수립 비용으로만 당장 15억 파운드(약 2조5000억 원)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국방, 치안, 복지 등을 위한 재원 마련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며 경제 규모가 작아져 외국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경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금융그룹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와 로이드뱅크 등은 벌써 분리독립에 대비해 스코틀랜드에 있는 본사를 영국 런던으로 옳기는 비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자칫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코틀랜드가 걱정하는 것은 북해 유전의 매장량을 둘러싼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스코틀랜드가 북해 유전의 매장량을 너무 낙관적으로 높게 추산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을 비롯한 세계적인 메이저 석유 회사들은 북해 유전의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져 오는 2050년이면 고갈될 것이라며 영국 연방으로 남아있는 것이 에너지 산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2의 스코틀랜드' 꿈꾸는 스페인 카탈루냐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스페인 카탈루냐, 이탈리아 베네치아, 미국 텍사스 등도 '제2의 스코틀랜드'를 꿈꾸며 독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카탈루냐는 오는 11월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시행하기로 예고하면서 스페인을 위협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의회에 주민투표 권한을 부여한 영국과 달리 스페인은 헌법상 중앙 정부만이 주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다며 카탈루냐의 투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스페인 북부 대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는 1714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의 탄압에 굴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유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독립을 주장해 스페인 정부와 끊임없이 정치적 마찰을 겪어 왔다.

탄탄한 관광산업과 상공업을 앞세운 카탈루냐는 중앙 정부에 많은 세금을 내고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높다. 하지만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스페인은 750만 명의 인구와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코틀랜드나 카탈루냐만큼 절박하지 않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미국 텍사스도 독립을 원하는 여론이 많다. 베네치아 공국을 1천 년 이상 유지했던 유명 관광도시 베네치아와 인근 지역은 지난 3월 인터넷 투표에서 89% 이상이 분리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 역시 백악관 청원사이트에 올라온 독립 청원서에 12만 명이 넘는 서명이 쏟아졌다. 텍사스는 지난 대선에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15%포인트 이상 높았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공화당의 텃밭이다.

물론 텍사스의 독립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10만 명 이상 서명하면 반드시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하는 백악관 청원사이트의 규정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열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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