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과 커피, 그리고 여자

입력 2014. 9. 15. 09:12 수정 2014. 9. 1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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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카페가 전쟁터 같은 패션쇼장이라니? 매일 수십 명의 여자들을 위해 커피를 뽑는 바리스타 루크 바커가 분석한 스타일과 커피, 그리고 여자!

1커피를 손에 든 채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배우 매기 질렌할.2, 3정신 없는 아침이 연상되는 오전 7시 그룹의 현실적인 모습.

나는 커피를 판다. 갓 내린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내 카페를 찾는다. 하루에도 100여 명 남짓한 단골손님과 몇몇 뉴 페이스를 마주한다. 누군가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카페에서의 아침은 내게는 마치 패션위크의 시작과도 같다. 그 오묘한 이론이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길! 매일 카운터에 앉아 패션쇼의 프런트로에 온 것처럼 커피를 사러 온 여자들의 패션을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평가한다. 한참 지켜보면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버라이어티한 스타일이 난무한다. 지극히 세련된 오피스 룩부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철 지난 패션, 완벽하게 세팅한 철벽녀, 이와는 반대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우중충한 스타일까지. 그렇다고 그녀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어떤 스타일이든 나는 여자들의 각기 다른 매력을 전부 찬양한다. 왜냐고? 매일 커피를 사러 오는 새로운 스타일의 여자를 보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쇼의 시작은 정확하게 오전 7시, 상사를 위해 커피를 픽업해 가는 20대의 열혈 사회초년생들과 함께 시작된다(아마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슬리 같은 상사를 둔 안드레아 삭스와 같은 부류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른 시간엔 친절한 대화는 언감생심이다. 물론 그녀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사악한(?) 시간대의 쇼는 성공과 실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데 잠에서 덜 깬 여성들이 대다수라 스타일에 일관성이 없고 기복도 심하다. 어떤 여성은 머리가 흠뻑 젖었는가 하면(절대 비가 온 게 아니다) 다른 여성은 지하철에서 마구잡이로 메이크업을 한 듯 스타일에 빈틈이 보인다. 그럼에도 이 그룹의 쇼를 성공적이라 칭찬하고 싶은 건 멋진 디자이너 아이템으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리얼 웨이를 세련되게 업그레이드한 능력 때문이다. 그 아이템들은 마크 제이콥스의 토트백이나 카르벵의 러블리한 코트 또는 크리스털로 장식된 블링블링한 스마트폰 등이다. 카운터에서는 슈즈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슈즈까지 평가할 순 없지만 이른 출근 시간대에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들으면 섹시한 지미 추 힐을 상상하게 된다.

4멋지게 드레스업한 커리어 우먼의 표본. 5, 6단 한 시간 차이로 루크 바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두 그룹.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쇼는 한 단계 진화한다. 스타일은 일관적이고 말끔한 비즈니스 룩을 만날 수 있다. 20대 직장 여성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한층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며 주문에 있어서도 대범한 여성들이 카페에 들어온다. 그녀들이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높은 연봉을 예상하게 만드는 클래식한 샤넬 수트와 프라다 핸드백을 보라고 답하겠다. 헤어스타일 역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세팅했을 뿐 아니라 내가 건넨 라테를 낚아채는 손끝에서 완벽하게 다듬어진 네일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하고 심플한 액세서리(특히 진주를 애용한다)를 좋아하며 수다스럽지 않고 매너도 흠잡을 데 없다. 그러니 부드러운 라테를 들고 차분하게 직장으로 향하는 그들은 갓 대학을 졸업한 티가 팍팍 나는 오전 7시의 첫 번째 그룹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나는 우아한 모습의 이 그룹을 존경한다).

미리 귀띔하면 오전의 중반부는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시간대다. 쇼가 방향을 잃는다고 해야 할까. 마치 무대 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옷을 허둥지둥 챙겨 입고 나온 듯 절망적인 차림의 여성들이 대다수다. 이 여성들을 보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패션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오전 11시경, 카페에 들이닥치는 세 번째 그룹은 대부분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스타일도 독창적(?)이다. 무지개 색으로 '깔맞춤'을 한 여성들도 종종 마주친다. 레인보 컬러를 한꺼번에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있는 걸까? 누구나 개성 있는 패션을 선보일 권리가 있지만 이 그룹의 여성들은 늘 패션쇼의 쓴맛을 보여준다. 특히 액세서리는 혀를 내두를 정도. 퍼가 장식된 힙색을 두르질 않나, 리모컨만 한 장식의 벨트를 하질 않나…. 이럴 땐 슈즈가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일 정도! 신기하게도 그녀들은 늘 두유를 넣은 '소이 라테'를 주문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나는 두유가 너무 싫다. 이유인즉슨 냄새도 지독한 데다 유당 냄새를 풍기며 바람 피우기를 일삼았던 옛 남자친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쇼는 점심 때면 점점 기분 좋은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매장은 귀여운 꼬마들을 대동한 스타일리시한 엄마들로 가득찬다. 쇼핑과 브런치, 필라테스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그녀들은 여왕벌처럼 카페를 장악한다. 수다스럽고 활력 넘치며, 친절하게도 팁도 넉넉하게 준다. 스타일 역시 똑부러진다. 루이 비통 백과 디올 선글라스, 편하지만 럭셔리한 슈즈, 탱글거리는 머릿결을 유지한 채 자녀들과 귀여운 커플 룩을 즐긴다(그들에겐 카페 로고가 찍힌 테이크아웃 커피잔마저 스타일의 일부 같다). "디카페인에 설탕은 넣지 말고, 저지방 우유를 넣은 라테로 주세요." 커피 주문 한번 길고 복잡하다. 까다로운 주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완벽한 스타일을 즐기며 난 기분 좋게 응대한다. 그런 내 스타일은 어떠냐고?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운이 좋다면 퇴근 후 앞치마를 풀고 다른 카페에서 스타일을 뽐내는 나와 마주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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