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전10패' 충주성심을 '패배자'라 부르지 않는 이유

김형준 2014. 9. 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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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또 졌다. 청각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가 8월 30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제 42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주고에 6회까지 11점을 내주고 콜드패했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스토리는 이번 대회에도 뜨거운 감동을 낳았다.

● 공식대회 1승 보다 '오늘도 무사히'

충주성심학교와 맞붙은 경주고는 지난해 재창단해 14명의 선수만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약체 중 약체였기에 '혹시나' 충주성심학교의 첫 승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충주성심학교 박상수 감독은 '공식대회 1승'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속에 품은 최우선은 '오늘도 무사히'였다. 야구공이든 배트든 한 번 제대로 맞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기 특성상 청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에게는 그 위험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충주성심학교의 올해 총 출전 선수는 12명, 64개 참가 팀 중 가장 적다. 엄밀히 말하면 이 12명마저도 '선발' 된 선수는 아니다. 고교생 중 여학생을 제외하니 30명 정도였고, 이 중 중복 장애를 가지지 않은 '운동을 할 수 있는 남학생'들만 추려보니 12명이었다.

● '어차피 질 싸움' 알고도 또 부딪힌다

인원 자체가 적으니 '용병술'은 꿈도 못 꿨고,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대회를 치를 수 없을 정도다. 야구는 투수 놀음인데, 투수는 2학년생인 고득원 단 한 명 뿐이다.

경주고 전에서 6이닝 동안 37명의 타자를 홀로 상대한 고득원의 투구수는 120개였다. 이번 대회부터 적용된 투수 1인당 상한 투구수는 130개. 콜드패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다음 이닝에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투수가 없어 어차피 질 싸움이었다.

사실 매번 그랬다. 더러 이길 뻔 한 경기도 있었지만, 언제나 '뒷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지고 또 져도 그들은 계속 부딪혔다. 모든 팀에게 참가 기회가 열린 봉황대기는 그들에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2003년 처음으로 봉황대기에 도전장을 내민 충주 성심학교의 출전은 올해로 10번째.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에도 그들에게 단 한번의 승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풀이 죽거나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이미 세상과 부딪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 야구, 세상에 맞서는 힘을 주다

야구부 창단 때만 해도 그들의 목표는 '도전 의식 고취'와 '추억 만들기'정도였다. 야구부 운영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효과까지 더해졌다.

충주성심학교 선배들은 어느덧 사회인이 되어 '나누는 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35회 봉황대기에 참가한 충주성심학교 선수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부분 졸업 후 취업의 길을 걷는 충주성심학교 선수들은 직장 내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가 출중한 실력으로 회사 동료와 선배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자연히 회사 적응도 수월했다. 이런 선배들의 모습은 사회 진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던 충주성심학교 후배들에게 큰 용기가 됐다.

하나 더.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 받는 게 익숙한 삶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의 몫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야구부 출신 선배들은 취업 후 야구부 후원회를 꾸려 월급 일정액을 떼어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창단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박 감독은 "이런 모습을 보면 '공식대회 1승' 목표보다 더 큰 목표를 이룬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의 꿈인'공식대회 1승'목표가 언제 현실화 될 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야구를 통해 세상과 부딪힐 수 있는 강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릎 꿇지 않기에, 어느 누구도 12년 간'10전 10패'성적을 거둔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패배자'라 부르지 않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충주성심학교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글러브'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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